“우리는 ‘몸통’ 위해 희생해야 하는 ‘꼬리’”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5.07.29 14: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정기관 IO들, 큰 사건 ‘개인적 일탈’로 모는 데 불만

“개인적인 일탈 행위였다.”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진 굵직한 권력형 사건에 ‘배후’란 없다. 국정원과 사이버사령부의 대선 개입 사건,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인적사항 불법 열람 의혹, 청와대 문건 유출 파동 등 대형 사건이 연이어 터졌지만 “정부기관의 조직적 개입은 없었다”는 것이 현 정부의 한결같은 입장이다. 이런 구도에서 모든 책임은 한 개인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고, 당사자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선택하고 있다. 청와대 문건 유출 파동 당시 서울경찰청 최 아무개 경위가 그랬고, 이번 국정원 해킹 사건에선 국정원 임 아무개 과장이 그랬다. 사정·정보기관 실무 담당자들의 자괴감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특히 민감한 정보를 다루는 IO(Intelligence Officer·정보관)들 사이에는 자신이 속한 조직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무능력자로 평가받는 게 차라리 나아”

각종 정보를 수집해 보고하는 것이 IO의 고유 업무다. 정계·재계·언론계 등의 다양한 사람과 접촉해 민감한 정보를 다루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조직을 위해 일했음에도 책임이 개인에게 귀결되는 분위기 탓에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검찰 IO로 활동하는 A씨는 “지난해 청와대 문건 유출 파동 이후 IO들 사이에서는 정보 수집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생겨났다”면서 “특히 (박근혜) 정권과 관련된 정보는 들어도 보고하지 않고, 입 밖에 내지도 않는다. 윗선에 보고를 했다간 ‘네가 왜 이런 정보를 모으고 다니느냐. 출처가 어디냐’는 추궁이 이어진다”며 손사래를 쳤다.

7월20일 국정원 직원 임 아무개씨의 빈소 앞에 조화가 줄지어 놓여 있다. ⓒ 연합뉴스

경찰 분위기는 더하다. 지난해 말 청와대 문건 유출 파동으로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은 사상 처음으로 검찰의 압수수색까지 당했다. 서울청의 IO인 B씨는 “(청와대 문건 유출 파동 이후) 정보보고가 까다롭고 엄격해졌다. 정보의 신뢰도를 체크해야 하고, 정보 출처를 밝혀야 할 때도 있다”며 “정보라는 것이 출처 보호가 생명인데, 이런 식이라면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IO들 사이에선 조직이 상시 감찰하고 있다는 공포도 팽배하다. A씨는 “청와대 문건 유출 파동 후 2G 대포폰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 조직이 (나의) 휴대전화 통화목록을 들여다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라며 “민감한 정보는 대포폰으로 주고받는다. 이 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고 밝혔다. B씨는 “메신저와 이메일도 외국계로 옮겼다. 흔적이 남을 수 있는 통신 수단은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언제 누가 내 뒤를 캘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며 “특히 기자와의 접촉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기자를 만날 때는 가명으로 (식당) 예약을 하기도 한다. 일선 경찰서의 경우 정보계에 기자 출입이 금지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IO들 사이에선 ‘납작 엎드려 숨만 쉬자’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조직으로부터 언제 추궁당할지 모르는데, 실적을 올리려고 굳이 모험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A씨는 “우리는 ‘꼬리’다. ‘몸통’을 보호하기 위해 언제든 잘려나갈 수 있다”며 “이런 상황에선 ‘무능력자’로 평가받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