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은 당당한 ‘프로 정보기관’ 돼라
  • 이준한 |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 승인 2015.07.29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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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사찰 논란…아마추어 행태론 신뢰 못 얻어

참으로 고난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 같다. 이전 정부부터 경제가 바닥을 친 후 좀처럼 회복 기미가 안 보인다. 게다가 이번 정부는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공방과 수사 및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구속으로 첫해를 보냈는데, 세월호 사고와 진상조사로 둘째 해를 보낸 뒤, 이제 뭔가 해보려던 차에 메르스 방역 실패로 셋째 해를 보내고 있다. 이제 그것도 모자라 국정원의 불법 해킹 의혹이, 큰 선거가 없어서 경제 살리기의 이른바 골든타임인 금쪽같은 시간을 다 잡아먹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집권이 반환점을 도는 시점에 국정원을 포함한 권력기관과 국가기강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무명의 헌신’ 추구한다면서 집단성명서 내

물론 국정원이 국민의 기대와 법률에 반해 정치에 관여하고 선거에 개입했던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드러나지 않은 것은 차치하고라도 민주화 이후인 1998년에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는 대선에 개입하기 위해 이른바 ‘북풍(北風)’을 일으켰다는 공작에 대해 수사를 받았다. 그때 안기부의 수장 권영해는 수사를 받던 도중 자해를 시도하기도 했다. 2005년에는 이른바 ‘안기부 X파일’ 사건으로 안기부는 불법 도청 및 감청 의혹에 대해 수사를 받았다. 당시 수사를 받던 안기부 2차장은 상관에 대해 불리한 진술을 한 뒤 자살했고, 실제로 도청팀을 이끈 직원도 자해를 시도했다. 2014년에도 간첩 증거 조작 의혹으로 조사를 받던 국정원 대공수사국 과장이 승용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 자살을 시도했다.

국정원은 정치적으로 가장 중립적이어야 하고 국가의 안위에 조직의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국정원이 선거와 국내 정치, 또는 증거를 조작하는 일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받는 것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아무리 국정원이 해킹 대상을 대공 용의자들에게 한정했고 일반 민간인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왜 2012년 양대 선거 직전에 해킹에 대한 주문이 몰렸는지 국민들이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조직에서 능력도 인정받았고 신망도 높은 직원이었지만 승용차 안에서 번개탄과 함께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뒤에는, 왜 갑자기 실수를 했고 시키는 것만 했던 단순한 기술자였노라고 말이 바뀌는 것인지, 그 또한 납득하기 어렵다. 그렇다 보니 국민은 “진짜 자살이 맞기는 한 것이냐”며 근본적인 부분에서부터 불신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국민의 믿음과 지지를 받아야 하는 조직인데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안 믿게 되어버렸다.

국정원의 원훈이 1961년 이후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였지만, 1998년에는 ‘정보는 국력이다’로, 2008년에는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으로 다시 바뀐 것을 상기하고 싶을 뿐이다. ‘자유와 진리를 향한다’면 국정원이 이번에 “35개국 97개 기관이 이 프로그램을 구입했는데, 우리나라처럼 시끄러운 나라가 없다”고 해킹 프로그램 구입과 관련된 입장을 밝힐 수는 없다. 35개국 가운데 한국만큼 정치적으로 민주화를 이룬 국가가 많지 않고, 그런 나라들도 선거를 앞두고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명의 헌신’을 추구한다면 ‘국가정보원 직원 일동’이라는 집단성명서 같은 것이 나올 수 없다. 정말로 조용히 테러도 막고 산업스파이도 잡아내며 안보도 지켜내는 프로가 되면 그뿐이다.

국민은 그래도 현재 제기되는 의혹들이 단순한 의혹으로 그치기를 바랄 것이다. 다시는 이러한 코미디 같은 일이 터지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에게 무한의 신뢰를 주고 국정원의 위상을 한껏 올릴 수 있도록 강력한 개혁을 추진했어야 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적어도 2011년 국정원 직원들이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이 머무르던 국내 한 호텔 숙소를 몰래 뒤지다가 현장에서 어설프게 발각된 후 도망친 웃지 못할 해프닝이 발생했을 때부터 국정원은 진정한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해 연구했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2012년 대선 개입 의혹 사건으로나 2013년 국정원장의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로 국정원이 정쟁의 중심에 섰던 것을 계기로라도 강도 높은 체질 개선과 경쟁력 강화를 추진했어야 했다.

이번에는 더는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일단 제기된 의혹이 국정원에서 주장하듯이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면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의 진상조사와 검찰 수사에 철저히 응해야 한다. 만약 불법이나 조작의 증거가 나온다면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동시에 국민과 국회가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대대적인 개혁이 담긴 청사진을 제시하고 철저하게 이행해야 한다. 여기에는 조직의 보안에 해가 되지 않는 절차를 강구해 국정원의 예산과 활동에 대한 국회의 적절한 통제가 이루어지게 하는 장치부터 포함시켜야 한다. 지금까지 국정원이 스스로 국민과 국회의 신뢰를 얻도록 개혁하는 노력에서 믿음을 못 주었기 때문이다.

국정원 사찰 의혹이 확산되는 가운데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왼쪽)이 7월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국정원 예산·활동, 국회의 통제 필요

또한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고 국가 이익과 안위를 최우선하는 원칙이 철저하게 지켜져야 한다. 인사도 독립적이고 비정치적으로 실시되어야 한다. 정권이 바뀌면 국정원의 수장부터 갈리는 일이 허다하다. 국정원이 정권 눈치를 보지 않으며 독립적이고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강구해야 한다. 전 세계 정보기관과 견줘서 뒤처지지 않는 전문성과 능력을 두루 갖춘 인재를 등용하고 그러한 인재로 가득한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러한 대원칙이 담긴 국정원 개혁의 청사진이 제시되어야 국민의 신뢰를 얻게 될 것이다.

현재 국정원장이 이병호 원장이라서 한껏 기대된다. 이 원장은 과거 한 기고문에서 국정원이 프로페셔널한 정보기관으로 위상을 확립해야 한다고 비전을 제시했다. 국정원이 국가 안위를 지키는 프로 정보기관이 아니라 대통령의 정치권력 기관으로 전락했던 것을 통탄하기도 했다. 이 원장이 지적했듯이 앞으로 국정원이 정보 전문성을 존중하고 정보 프로를 육성하고 우대하는 등의 정보 업무 본질에서 벗어나지 말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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