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무리하게 자원외교 돌진했다 ‘빈손’으로 퇴각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5.07.29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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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종 전 사장 구속영장 기각…자원외교 수사 사실상 마무리

자원외교 수사의 마지막 단계라고 할 수 있었던 김신종 전 한국광물자원공사 사장의 배임 혐의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됐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가 진행했던 자원외교 수사는 특수2부의 포스코 수사와 더불어 사실상 이명박 정권을 겨냥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전 정권 사정에는 언제나 정치적 부담이 따른다. 이번 수사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사정 대상이 야권이 아닌 이명박 정권이었던 데다, 전 정권 핵심 사업을 들춰본다는 점에서 검찰 입장에서는 부담이 더욱 컸다.

출발 단계에서 이미 동력 상실

사정 대상을 잘못 선택한 탓인지, 압박감 때문이었는지 출발부터 좋지 않았다. 수사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었던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삐거덕대기 시작한 것. 검찰의 원래 계획은 성 전 회장의 경남기업이 투자했던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 광산 사업을 통해 자원외교의 전반적 문제점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특히 경남기업과 함께 사업을 했던 곳이 한국광물자원공사였던 만큼 자원외교 비리를 들춰내는 데 두 회사가 안성맞춤이라는 것이 검찰 내부의 판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두 회사 간 지분 거래를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 특혜가 있었는지, 특혜가 있었다면 전 정권 인사들이 개입했는지 여부를 밝혀낼 계획이었다. 성 전 회장의 경우 마당발 인맥을 바탕으로 정치권에 진출했다는 점, 김 전 사장은 이명박 정권 시절 자원외교를 주도했던 대표적 MB맨이었다는 점에서 수사 대상에는 정·관계가 모두 포함될 것으로 보였다. 검찰이 자원외교 비리 건을 포스코 수사에 앞서 특수1부에 배당했다는 점도 수사에 상당히 신경 썼음을 보여준다.

7월23일 새벽 김신종 전 한국광물자원공사 사장이 영장실질심사에서 영장이 기각된 후 서초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성 전 회장이 목숨을 끊으면서 수사의 동력을 잃었고, 오히려 이완구 전 국무총리와 친박 인사들로 불똥이 튀면서 여권 내부에서도 검찰에 대한 불만이 튀어나왔다. 정치적 부담을 안고 수사를 시작한 검찰이 가장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간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사정을 기획한 것으로 알려진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볼멘소리가 나오면서 검찰도 입장을 정하기가 애매한 상황이었을 것”이라며 “자연스럽게 강영원 전 석유공사 사장과 김신종 전 광물공사 사장을 구속하는 것으로 출구전략을 세우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성 전 회장 자살 이후 수사는 자원외교 관련 공기업에 맞춰졌다. 검찰의 이러한 전략은 강 전 사장을 구속시키면서 어느 정도 들어맞는 것처럼 보였다. 검찰은 캐나다 석유회사인 하베스트를 고가에 인수해 석유공사에 5513억원의 손해를 입힌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의 배임)로 강 전 사장을 지난 6월30일 구속 기소했다. 검찰 입장에서는 강 전 사장보다는 지난 정권 자원외교와 관련해 가장 크게 주목 받았던 김신종 전 사장이 더 중요한 인물이었다. 앞서 언급했던 검찰 관계자는 “김 전 사장에 대한 수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성 전 회장 수사를 졸속으로 마무리했다는 비판 여론을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성 전 회장이 없는 마당에 김 전 사장에 대한 수사가 정상적으로 이뤄질 리 없었다. 특히 암바토비 니켈 사업과 관련해서는 시사저널(제1331호)에서 보도했던 대로 이미 2012년 특수2부에서 불기소로 마무리했던 것을 다시 들춰낸 것에 불과했다. 당시 검찰은 암바토비 사업을 한국광물자원공사와 경남기업 간 단독으로 진행한 것이 아니라 대우인터내셔널·STX 등이 함께 참여했고, 따라서 모든 의사결정이 컨소시엄 운영위원회 내에서 정해졌기 때문에 김 전 사장과 성 전 회장 사이에 특혜가 오갔을 만한 여지가 별로 없었다고 판단했다.

별건 수사와 측근 압박 수단으로

검찰은 표면적으로는 암바토비 사업을 수사하면서 한편으로는 김 전 사장 재직 시절 추진됐던 다른 사업들을 들여다봤다. 사실상의 별건 수사였다. 대표적인 것이 양양철광 재개발 사업이다. 김 전 사장이 재임 중이던 2010년 양양철광 재개발을 목적으로 한국전력 자회사였던 한전산업개발 등과 합작해 특수목적법인(SPC)인 대한광물을 설립했다. 당시 희토류가 다량 매장돼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주가가 폭등하기도 했으나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결론이 나면서 한전산업개발은 사업에서 철수했고, 대한광물은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갔다. 검찰은 이 사건을 추진했던 김 전 사장의 측근과 지인들을 불러 조사하면서 그를 압박해 들어갔다. 하지만 양양철광 희토류 사업의 경우 광물공사가 투자를 전후해 관계 장관 회의에 보고했고, 이를 통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도 보고된 것이었다. 특히 2010년은 중국 어선 나포 문제로 중국과 일본이 극한 대립을 하다가 중국에서 대일본 희토류 수출을 단절하자 일본이 백기투항한 사실이 화제가 될 정도로 희토류 확보의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던 때였다. 당연히 정부에서 희토류 확보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했고, 양양철광 재개발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즉 김 전 사장이 고의로 광물공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당시 사업에 밝은 인사들의 대체적 시각이었다. 검찰은 관련 인사들이 해외 자원 회사 방문 등을 이유로 스웨덴 출장길에 함께 갔을 당시 금품이 오갔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미국에 있는 당시 광물공사 담당자에게도 연락을 취하는 등 비리를 찾아내기 위해 애를 썼다.

이런 사전 정지 작업 끝에 검찰은 마지막 수순으로 김 전 사장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까지 끝내고 그를 한 차례 소환조사했다. 김 전 사장에 대한 구속 여부에 대해 검찰 내부에서도 갑론을박이 있었으나 결국 7월20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23일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서울중앙지법 조윤희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주된 범죄 사실인 경남기업 암바토비 사업 지분 매입과 관련된 배임 부분의 범죄 혐의 소명 정도 및 그에 대한 다툼의 여지, 나머지 범죄 사실에 대한 증거 자료 확보 정도, 지금까지의 수사 진행 경과 등에 비추어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검찰은 영장을 재청구하지 않고 불구속 기소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기소가 된다고 하더라도 김 전 사장의 배임 혐의는 법원에서도 다툼의 여지가 많다는 것이 법조계의 시각이다. 김 전 사장을 구속하는 것으로 출구전략을 모색했던 검찰은 영장 기각으로 인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자원외교 수사를 사실상 빈손으로 마무리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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