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와 접하면 발동되는 우리 몸의 자기보호 시스템
  • 김형자│과학칼럼니스트 ()
  • 승인 2015.07.29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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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씩 웃을 때 왜 간담이 서늘하죠?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천둥이 치는 음산한 밤에 한 여인이 무덤을 파헤친다. 눈을 질끈 감은 채 자른 시체의 다리를 들고 황급히 도망치자 시체가 깨금발로 쫓아오며 그 유명한 대사를 내뱉는다. “내 다리 내놔?.”

아직까지 납량 특집 드라마의 명장면으로 회자되는 <전설의 고향: 덕대골> 편의 일부다. 병에 걸린 남편을 살리기 위해 시체의 다리를 들고 도망치는 여자, 그리고 그를 쫓는 시체를 보는 시청자는 오금이 저릴 수밖에 없다. 주인공이 뒤를 돌아보는 순간 흉측한 몰골의 귀신이 씩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저도 모르게 “으악~” 비명이 튀어나오면서 간담이 서늘해진다. 왜 공포영화를 보면 유독 서늘함을 느끼게 되는 걸까.

ⓒ 시사저널 임준선

공포물 보면 모골이 송연해지는 까닭

돈 안 들이고 더위를 쫓기에 가장 좋은 것이 납량 특집 드라마나 공포영화다. 납량의 뜻이 ‘여름에 더위를 피해 서늘한 바람을 쐬는 것’이고 우리말로는 ‘서늘맞이’라고 하니, 두려움과 공포로 무더위를 날리고 서늘한 기운을 느껴보라는 것이 공포물의 목적인 셈이다. 정말 우리는 공포 속에서 더위를 잊을 수 있을까.

사람마다 공포에 대한 반응은 제각각이다. 이는 공포를 관장하는 뇌 속의 편도체(amygdala)의 차이 때문이다. 편도체가 유전적으로 강한지 약한지에 따라 공포에 대한 반응이 다르게 나타난다. 가령 대형 사고가 난 후 극심한 공포를 겪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자’의 경우 이성적 판단을 하는 전두엽 기능이 떨어지는 반면 감정을 조절하는 편도체의 반응은 강하게 나타난다.

편도체는 아몬드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표적인 기능이 공포 자극을 받았을 때 그에 반응하게 하는 것이다. 어떤 자극이 전달됐을 때, 편도체가 위협적인 것으로 평가해야만 공포를 경험할 수 있다. 편도체가 손상되면 공포영화를 봐도 겁을 먹지 않는다. 편도체는 위협적인 대상에 대해 신속한 공포 경험을 만들어낸다. 한 발짝 느리지만 나중에 좀 더 정확한 정보가 대뇌피질로부터 전달되었을 때, 현재의 경험(공포)을 유지하거나 반대로 억제하는 반응을 일으킨다.

이때 편도체는 시상하부를 자극한다. 시상하부에는 체온 감지시스템이 있어 근육·혈관·피부 등에서 온도 변화의 정보를 수집해 체온이 변할 때마다 수시로 대응책을 마련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공포감을 느꼈을 때, 시상하부는 자율신경계의 교감신경을 활성화시켜 피부 혈관을 수축하게 만들어 에너지 방출을 줄인다. 공포감에 질렸을 때 얼굴이 핏기가 가시며 창백해지는 이유다. 또 몸을 보온하기 위해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데, 털을 세우는 근육이 수축되면서 소름이 돋고 으스스한 느낌이 나며 땀샘이 자극돼 식은땀이 난다. 식은땀이 증발하면 몸은 더욱 서늘함을 느낀다. 그야말로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이다.

공포물을 볼 때의 이런 오싹함은 추위로 인해 체온이 떨어졌을 때 시상하부가 내리는 체온조절 명령과 같은 메커니즘이다. 공포를 통해 더위를 잊는다는 게 근거 없는 얘기가 아닌 것이다. 오싹한 공포영화가 유독 여름철에 많이 개봉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편도체로부터 자극을 받은 시상하부는 뇌하수체에 신호를 보내고, 뇌하수체는 각종 내분선에 명령해 호르몬 분비를 통제한다. 이때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오는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돼 우리 몸을 도망가거나 투쟁하기 위한 최적의 상태로 만든다. 코르티솔은 심장을 빨리 뛰게 해 팔·다리로 피를 많이 보내 잘 달릴 수 있게 하고, 대상을 정확히 알아볼 수 있도록 동공을 크게 해 빛이 많이 들어오게 한다. 땀이 나는 이유도 몸을 미끄럽게 해 공포의 대상에게 쉽게 붙잡히지 않게 하려는 진화의 산물이다.

공포를 느끼는 뇌의 회로는 우리의 생존 확률을 높여주는 진화의 산물인 셈이다. 만약 곰이 나타났을 때 곰에 대한 정보를 하나하나 생각해낸 다음 ‘앗, 위험해!’라고 느낀다면 도망을 가기도 전에 잡아먹힐 가능성이 크다. 공포영화를 볼 때의 몸서리도 같은 이유의 자기보호 본능으로 생긴다. 영화를 볼 때 관객은 피해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영화에서 귀신이 피해자에게 해코지를 할 때 관객은 자신이 해를 당하는 걸로 여겨 자기보호 시스템을 가동하게 된다.

공포 통해 짜릿한 쾌감 느껴

공포영화 흥행 요소의 또 다른 축은 소리다. 영화 제작자는 사람들의 긴장을 고조시키기 위해 심장 박동 수보다 약간 빠른 박자로 소리를 변화시킨다. 갑자기 소리를 줄였다가 끔찍한 장면에서는 ‘꽝’ 내보내 더욱 놀라게 한다. 이는 편도체가 눈에 보이는 시각 정보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청각 정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공포영화를 보면 항상 주인공은 폐공장, 폐교나 공동묘지, 깊은 숲속처럼 음산한 분위기가 흐르는 공간에 겁 없이 발을 내디딘다. 음산한 장소도 공포 조성에 한몫한다. 실제로 사람들이 귀신을 목격했다고 말하는 장소도 어두컴컴하고 으스스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곳이다. 귀신이 나온다고 소문난 곳을 조사하면 자기장이 센 곳이 많다. 영국의 심리학자 리처드 와이즈먼 박사의 연구 논문에 따르면, 자기장이 급변하는 장소나 환경을 접하게 되면 우리의 뇌가 전기적 자극을 받으면서 귀신이 존재하는 듯한 환시(幻視)에 빠져들기도 하고, 뇌파와 심장 박동 같은 인체의 생리적 리듬이 일시적으로 깨져 등골이 오싹함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공포영화의 매력이 단순하게 이런 오싹함에만 있는 걸까.

미국 밴더빌트 대학의 데이비드 잘드 심리학과 교수는 공포에 대한 뇌 반응을 연구하기 위해 자신의 집을 흉가(凶家)로 꾸며 ‘할로윈 공포 연구실’이라고 이름 붙였다. 나무에 해골을 걸어놓는가 하면 복도에 인공 안개를 뿌리는 등 공포를 느끼도록 집 안을 설계했다. 집을 방문한 이들의 반응을 조사해보니 공교롭게도 사람들은 흥분과 강렬한 감정에 이끌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는 사람이 공포를 느낄 때 어느 정도 우리 뇌에 물리·화학적 보상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신체적으로 위험하지 않은 선에서만 그렇다.

사람들이 공포를 통해 쾌감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감정이 항상 균형을 잡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공포가 생기면 공포가 일으킨 여러 가지 생리적인 반응들을 상쇄하기 위해 교감신경에서는 아드레날린이나 도파민 같은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한다. 이때 오싹하는 신체 변화와 함께 짜릿한 정신적인 쾌감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공포 자체를 즐긴다기보다 공포 반응의 일부로 나타나는 마약 성분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을 즐기는 것이다. 결국 공포영화는 시원함과 더불어 ‘속 시원함’도 느끼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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