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유와 박은주 '법당'에서 무슨 일 있었나
  • 이승욱 기자·유지민 인턴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5.08.04 17:38
  • 호수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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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 파문' 진실 공방 추적… 돈·종교 얽히고설킨 진흙탕 싸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 산2-××번지. 성인 키 높이보다 훌쩍 큰 웅장한 철문이 눈길을 끌었다. 기둥 한쪽에는 ‘백성농장’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양쪽으로 활짝 열린 정문을 통과하니, 높이 20m쯤으로 줄지어 서 있는 삼나무 사이에 길이 나 있었다. 삼나무 뒤로 사람들의 손길이 묻어 있는 경작지와 각종 수목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며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방금 전까지 내리던 비가 그치고 햇살이 드문드문 비추자, 선명한 초록빛 풍경이 더욱 신비롭게 다가왔다. 삼나무 사이 길을 따라 150m 정도 걸어가자 3층짜리 현대식 벽돌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2013년 4월 개업한 이탈리안 음식점이 입점한 건물이다. 기자가 이곳을 찾은 날은 7월29일 수요일, 평일이었지만 음식점은 손님들로 빼곡했다. 식사를 마친 손님들은 일행과 함께 주변을 거닐고, 주위 풍경을 배경 삼아 사진을 연신 찍었다.

경영 분쟁에서 종교 활동 논란으로

하지만 외부인에게 공개된 농장의 내부 풍경은 여기까지가 전부였다. 음식점 뒤편 농장의 깊숙한 곳은 외부와 단절돼 있었다. 음식점 앞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더 올라가면 이내 발걸음을 멈춰야 했다. 또 하나의 철문이 길을 가로막고 있어서다. 굳게 잠겨 있는 철문에는 인터폰이나 초인종도 달려 있지 않았다. 철문 건너 20~30m 거리에 단층 양옥집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누구 안 계십니까.” 기자가 외쳤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철문 건너에서 인기척을 느낀 몸집 커다란 개 차우차우가 우렁차게 짖었다. 한참을 기다렸을까. 철문 너머 멀리에서 농장 관리자로 보이는 직원들의 움직임이 드문드문 보였다. 기자가 다시 “안녕하세요. 김 회장님 만나러 왔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몇 번을 외치고 나서야 한 직원이 잠시 가는 길을 멈춘 채  “여긴 아무도 없어요”라고 무뚝뚝하게 답하고 이내 자리를 떴다. 철문 너머 농장의 더 깊숙한 곳은 다시 정적 속으로 빠져들었다.

ⓒ 시사저널 포토

국내 최대 출판사 중 하나인 김영사가 전·현직 대표의 갈등으로 파문에 휩싸였다. 지난해 5월 말 김영사 대표이사직을 사임한 박은주 전 사장(58)이 7월23일 김영사의 창업주이자 현 대표이사인 김강유(68·김정섭에서 개명) 회장을 358억여 원에 달하는 업무상 횡령 및 배임, 그리고 사기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에 대해 김영사 측은 박 전 사장의 주장은 본인의 200억원대 횡령 및 배임 혐의를 감추기 위한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박 전 사장은 1989년부터 25년간 김 회장을 대신해 김영사의 경영을 맡아왔다. 그동안 김영사가 창업주와 전문 CEO의 소유·경영 분리라는 아름다운 스토리를 배경으로 성공 신화를 그려왔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법적 분쟁은 세간에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김영사 파문의 진원지 ‘백송농장’

김영사 파문은 전·현 경영진의 경영권 다툼이라는 측면 외에도 눈길을 끄는 부분이 많다. 두 사람의 갈등 이면에 종교 활동과 관련한 문제가 개입돼 있는 것이다. <금강경> 공부 모임을 통해 오랜 기간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맺어온 김 회장과 박 전 사장은 엇갈린 주장을 하고 있다. 박 전 사장 측은 김 회장이 <금강경> 공부 모임을 악용해 자신과 모임 회원들을 착취하면서 이권을 챙겨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김 회장 측은 박 전 사장 측이 자극적인 소재를 악용해 언론 플레이를 하면서 창업주를 파렴치범으로 몰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시사저널은 양측의 법적 분쟁 이면에 가려진 진실 공방을 짚어보기 위해 김 회장의 법당이 자리 잡은 경기 용인의 농장과 인근 주민, 그리고 다른 <금강경> 공부 모임 관계자 등을 다각도로 취재했다. 또 박 전 사장 측의 ‘검찰 제출 자료’를 단독으로 입수해 김 회장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봤다.

박은주 전 김영사 사장 ⓒ 뉴스뱅크 이미지

김영사 파문이 촉발되면서 관심은 김 회장 쪽으로 쏠렸다. 김 회장이 김영사의 창업주로 알려졌지만 1989년 공식적으로 경영 일선에서 퇴진하면서 그의 행적이나 배경에 대해 출판계 내에서도 아는 이가 드물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1990년대 초반 경기도 용인에 백성농장을 조성한 후, 법당을 짓고 <금강경> 공부 모임에만 몰두했다는 것 외에는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 있다. 기자가 백성농장 현지 취재에서 만난 일부 주민들도 백성농장 내부나 김 회장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백성농장 인근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주인은 “2년 전쯤 백성농장 안에 카페(이탈리안 음식점)를 개업하기 전까지는 외부인과 교류하기가 어려운 곳이었다”며 “마을 주민과는 별다른 교분을 쌓고 지내지 않았다”고 밝혔다. 마북동 내 한 불교 사찰의 포교당 관계자도 “백성농장 내부 사정은 우리도 모른다. 왕래가 잘 안 되는 곳”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 회장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는 다른 주민의 말은 다소 다르다. 그는 “(김 회장과 백성농장 측이) 마을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직접 나서 도와주기도 했다”며 “마을 진입로 보수 공사를 위해 기부금을 내기도 하고 법당 건물 상량식을 할 때는 일했던 동네 주민들을 불러 막걸리 잔치를 열기도 했다”고 말했다. 백성농장 내에 있는 법당을 둘러보기도 했다는 그는 “법당에서 사람들이 둘러앉아 조용히 경전을 읽는 모습을 봤다”며 “특별한 종교 의식을 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교주로 삼배 강요” vs “교주라 한적 없어”

박 전 사장 측은 김 회장을 “무소불위의 살아 있는 부처님 행세를 한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박 전 사장은 언론 인터뷰와 자신의 입장을 밝힌 보도자료 등을 통해 김 회장을 ‘교주(敎主)’, <금강경> 공부 모임과 관련된 사람들을 ‘신도’라고 지칭했다. 박 전 사장 측은 김 회장과 초기 <금강경> 공부 모임을 주도한 이 아무개씨(여)가 공동 교주로 떠받들도록 강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 전 사장은 “김 회장과 공동 교주인 여성이 ‘이곳은 몸과 마음과 재산 모든 것을 바치는 곳’이라고 해 그대로 따랐다”고 주장했다. 박 전 사장 측은 또 “여성 교주인 이씨가 ‘(김 회장은) 살아 있는 미륵불로서 그분 앞에서 삼배해야 한다’고 직원들에게 삼배를 강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영사 관계자는 “교주라고 부른 적도 없고, 살아 있는 미륵불이라고 본인 스스로 말한 적도 없다. (<금강경> 공부 모임 회원들을) 신도라고 칭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세 번 절하는 것은 <금강경>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하는 <금강경> 공부 모임의 오랜 전통으로 알고 있다”고 반박했다. 

기자는 박 전 사장이 지목한 이씨에게 관련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연락을 취했다. 현재 이씨는 김 회장의 <금강경> 공부 모임에서 떨어져 나와 용인에서 다른 법당을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노모를 모시고 병원에 와 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취재 결과, <금강경> 공부 모임은 김 회장이 주도한 모임 외에도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형태로 독립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보통 ‘금강경 독송회’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모임은 승려 출신이자 내무부장관과 동국대 총장을 지낸 고 백성욱 박사(1897~1981년)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일반인에게는 생소하지만 이미 오랜 기간 불교 경전을 공부하는 단체로 자리 잡아온 것이다. 김 회장 주도로 조성된 경기도 용인의 백성농장은 백 박사가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에 수련을 목적으로 조성한 동명의 농장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상자 기사 참조).

하지만 서울에서 운영 중인 ‘금강경 독송회’ 관계자는 “김 회장이나 용인 모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고 언론을 통해 (<금강경> 공부 모임 이야기가 나오면서) 찾아본 것이 전부”라면서 “개별 모임이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운영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의 사정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금강경 독송회는 종교단체라기보다는 공부하는 모임이고 <금강경> 공부를 통해 스스로를 수련하는 곳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7월29일 기자가 찾은 김강유 김영사 회장의 법당이 있는 경기도 용인 백성농장 정문. ⓒ 시사저널 박은숙

‘폐쇄적 운영이 논란 야기했다’ 지적도
 
하지만 박은주 전 사장과 일부 전직 직원들은 합숙생활을 하며 수련을 하거나 출판사 직원들에게 육체노동을 강요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박은주 전 사장은 “(편집장 시절이던) 1984년 당시 법당은 서울 가회동과 수안보 두 군데에 있었는데 가회동 법당에서는 매주 일요일 30~40명이 찾아와 밥과 빨래를 하고 이후 용인 법당(백성농장)으로 확장되면서는 농장에서 파종에서 추수까지 중노동을 했다. 김영사 직원들을 동원해 염불을 시키고 농사일을 시키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1984년 6월부터 2003년 5월까지 20년간 자신의 월급과 주식 배당금 등 36억원을 ‘보시금’이라는 명목으로 갖다 바쳤다”며 “다른 신도들과 합숙을 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영사 측은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노동을 하고 공부를 하는 것은 <금강경> 공부 모임의 전통”이라며 “(박 전 사장이 기거했다는 백성농장의 경우) 법당 건물 이외에 방이 딸린 주택들도 있는데 이를 합숙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독특한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일각에서는 <금강경> 공부 모임을 둘러싼 김 회장과 박 전 사장의 공방이 소수 인원에 의해 폐쇄적으로 운영되면서 사유화된 측면이 강해 나타난 현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운영 중인 대표적인 <금강경> 공부 모임의 경우 법적 효력을 인정받는 사단법인화를 해서 운영 중이다. 특정인에게 쏠릴 수 있는 재정적인 문제를 사전 차단하기 위한 방안이라는 것이다. 일부 사단법인으로 등록된 금강경 독송회는 '재단 해산 시 재단이 소유한 재산을 모두 국고에 귀속한다는 것'을 내부 규정으로 정해두기도 했다. 하지만 김 회장과 박 전 사장이 참여했던 <금강경> 공부 모임은 사단법인으로 등록돼 있지 않다. 특히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회사의 일부 임직원들이 공부 모임에 참여하면서 갈등이 야기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 백성욱 박사의 제자이자 경기 부천에서 사단법인 금강경 독송회를 운영하는 김동규 이사장은 “평생 법당이라는 것을 (내 이름으로) 소유해본 적이 없다”며 “자기 마음을 밝히는 게 공부인데 (모임 내부의) 비밀을 숨기려 하다 보면 공부가 잘 안 된다”고 말했다.

 

“군 제대 후 백성욱 박사 찾아가 스승으로 모셔”
김강유 김영사 회장은 누구?

박은주 전 김영사 사장과 법적 분쟁에 휘말린 김강유 김영사 회장은 <금강경>의 대가이자 내무부장관과 동국대 총장을 지낸 고 백성욱 박사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김 회장은 성균관대 불문학과 출신이지만, 동국대 불교대학원에서 수학하면서 <금강경> 공부에 매진한 것으로 보인다. 백 박사의 제자이자 경기 부천에 있는 사단법인 금강경 독송회를 운영 중인 김동규 이사장은 “(김 회장이) 군 제대 후 백 박사를 찾아와 스승으로 모시며 <금강경> 공부를 시작한 것으로 기억한다”며 “당시 백 박사를 함께 찾아왔던 동료는 조계종 불교청년회 출신 여성인 이 아무개씨(75)였다”고 말했다.

이후 김 회장은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이씨와 함께 서울 가회동을 중심으로 <금강경> 공부 모임을 주도했다. 1989년 1월 박은주 당시 김영사 편집장을 대표이사로 기용한 후 경기 용인에서 지금의 백성농장을 조성하는 데 힘을 쏟았다. 현재 백성농장 부지 일대 상당수 소유자가 이씨라는 점을 감안해 입지를 선정한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이 조성한 백성농장은 임야와 경작지, 대지 등 부지 3만㎡ 규모다. 부지 내에는 건물 3개 동이 건립돼 있는데 순차적으로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정문에서부터 산비탈을 따라 이탈리안 음식점으로 활용되고 있는 가장 아래쪽 건물과 단층 양옥집, 그리고 <금강경> 공부를 하는 법당 순으로 자리 잡고 있다.

김 회장이 스승으로 모셨던 백 박사가 1962년부터 운영해온 경기 부천시 소사구에 위치한 동명의 농장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백 박사는 부천의 농장에서 제자들과 수련하고 도시로 나와서는 <금강경> 강연을 자주 했다. 당시 백 박사는 직접 일하고 남에게 베푸는 것이 수행임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의 백성농장이 조성되는 과정에서도 애를 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백성농장 부지는 애초 계단식 논 형태를 지니고 있었지만 아파트 건립 공사장에서 나온 흙을 실어다 일부 구역을 평평하게 다지는 복토 작업을 거듭해 현재의 모습이 됐다고 한다. 현재 백성농장 내 법당 건물 부지는 당초 등기부등본상 이씨가 소유주였지만, 법당이 건립될 무렵이던 1992년 11월 김 회장 이름으로 등기가 이전됐다. 이후 이씨는 김 회장과 결별했고, 재산 관계를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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