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는 라이벌… 돈은 피보다 진하다
  • 송응철 기자 (sec@sisapress.com)
  • 승인 2015.08.05 17:20
  • 호수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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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현대·두산·금호·한화 등 경영권 분쟁으로 몸살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왼쪽)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롯데판 ‘왕자의 난’이 벌어지면서 다른 재벌가의 ‘골육상쟁사’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재벌가에서 경영권이나 유산 다툼은 흔한 일이다. 재계의 내로라하는 집안 중에서 가족 간 분쟁이 벌어지지 않은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돈이 물보다 진하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오는 이유다.

치열했던 현대가 ‘왕자의 난’

현대가는 재벌가 가족 분쟁 사건이 터질 때마다 회자되곤 한다. 식구가 많은 만큼 다툼도 많았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슬하에 몽필(전 인천제철 회장·작고)·몽구(현대차그룹 회장)·몽근(현대백화점그룹 명예회장)·경희(장녀)·몽우(전 현대알루미늄 회장·작고)·몽헌(전 현대그룹 회장·작고)·몽준(현대중공업 최대주주)·몽윤(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몽일(전 현대기업금융 회장) 등 8남 1녀를 뒀다. 현대가 2세들은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빈번하게 다퉜다. 2000년 ‘왕자의 난’부터 3년 간격으로 ‘시숙의 난’과 ‘시동생의 난’이 벌어졌다.

‘왕자의 난’ 당시엔 정몽구 회장과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이 그룹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격돌했다. 형제간 갈등은 정몽구 회장이 정주영 창업주 와병 중에 정몽헌 회장 측근을 배제하는 인사를 단행하면서 극에 달했다. 결국 현대차그룹·현대그룹·현대중공업그룹으로 나뉘면서 분쟁이 봉합됐다.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2003년 ‘시숙의 난’이 터졌다. 정몽헌 회장의 사망으로 부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경영권을 넘겨받은 직후다. 당시 정주영 창업주의 동생 정상영 KCC 명예회장은 현대그룹 지주사 격인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매집에 나섰다. 외국인 지분율 급등에 맞서 현대그룹을 보호한다는 명분에서였다. 분쟁은 2004년 현정은 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 주주총회에서 승리하면서 마무리됐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2006년엔 정몽준 전 새누리당 대표가 최대주주인 현대중공업이 현대상선의 지분을 매입해 최대주주에 오르면서 이른바 ‘시동생의 난’이 촉발됐다. 현대상선이 현대그룹 소유 지배구조의 한 축을 담당하던 회사여서 현대그룹은 충격에 빠졌다. 사태는 형수의 회사를 빼앗으려 한다는 비난에 정몽준 전 대표가 한 발짝 물어나면서 수습됐다.

재계 맏형인 삼성에선 비교적 최근인 2012년 형제간 갈등이 있었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 이맹희씨는 삼남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삼성생명 주식을 비롯한 선대의 차명 재산을 돌려달라며 재산상속분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맹희씨가 이건희 회장에게 화해를 제안하면서 공방은 종결됐다.

이들 형제간 갈등은 1970년대 삼성가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시작됐다. 이병철 창업주가 이건희 회장을 후계자로 지목하면서 이맹희씨와 차남 고 이창희 전 새한미디어 회장이 반기를 들었지만 실패했다. 이런 갈등은 이맹희씨의 아들인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숙질간 갈등’으로 번졌다. 이병철 창업주가 삼성가 장손인 이재현 회장 앞으로 남겨놓은 제일제당의 계열 분리를 놓고 줄다리기를 했다.

재계 최장수 기업인 두산 역시 집안 분란으로 시끄러웠다. 2005년 가족회의를 통해 그룹 회장을 차남 고 박용오 전 성지건설 회장에서 삼남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으로 교체한 게 단초가 됐다. 앙심을 품은 박용오 전 회장은 박용성·용만 형제가 1700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내용의 투서를 검찰에 넣었다. 수사 결과 제보 내용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이들 형제에게 실형이 내려졌다.

이 일로 박용오 전 회장에겐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그룹은 물론 가문에서도 제명됐다. 박용오 전 회장의 두 아들도 경영 활동에서 배제됐다. 박용오 전 회장은 2008년 성지건설을 인수하며 재기를 노렸지만 여의치 않았다. 이후 경영난에 시달리다 2009년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쓸쓸한 최후를 맞았다.

한진가에서도 싸움이 있었다. 2002년 고 조중훈 창업주 타계 이후 유산 배분을 놓고 형제간에 다툼이 벌어졌다. 치열하게 다퉜다. 차남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과 사남 조정호 메리츠금융그룹 회장이 장남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을 상대로 ‘정석기업의 주식 일부를 넘기고 3억4000만원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하면서 막이 올랐다.

이후 법원의 강제조정에 따라 주식을 나눠 가지며 소송은 끝이 났지만 이후에도 한진가 형제들은 유언장 진위와 정석기업 주식 양도, 면세점 납품권, 선친 기념관 건립, 김포공항 주유소 등을 놓고 지루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현재 소송은 모두 마무리된 상태다. 하지만 형제간에 화해를 했다는 얘기는 아직까지 들려오지 않고 있다.

한화그룹도 형제간 경영권 분쟁을 피해가지 못했다. 1992년 김호연 빙그레 회장이 형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을 상대로 재산권 분할 소송을 제기하면서 형제가 맞섰다. 하지만 1995년 모친의 칠순 잔치를 계기로 극적인 화해를 했다고 전해진다.

금호·대성·효성가 현재진행형

경영권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곳도 있다. 금호가 ‘형제의 난’이 대표적이다. 한때 금호가는 골육상쟁이 난무하던 재벌가에서 모범사례로 꼽혔다. 특히 금호가는 ‘형제 경영’으로 유명했다. 장남 고 박성용 명예회장을 시작으로 고 박정구 명예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차례로 키를 잡았다.

아름다운 전통에 파열음이 들려오기 시작한 건 사남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차례에서다. 2006년 무리한 대우건설 인수로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몰린 책임을 놓고 박삼구 회장과 불화가 시작됐다. 2009년 지분 다툼이 벌어지면서 형제는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너게 됐다. 형제는 이후 계열을 분리해 분쟁이 마무리되는 듯했지만 잠시뿐이었다.지금까지도 형제는 싸움을 멈추지 않고 있다.

대성가도 상황은 비슷하다. 고 김수근 창업주의 장남 김영대 대성산업 회장과 차남 김영민 서울도시가스 회장, 삼남 김영훈 대구도시가스 회장은 2001년 지분 다툼 이후 등을 돌렸다. 이후에도 앙금은 여전했다. 이들은 2006년 모친인 고 여귀옥 여사가 타계하자 유산 상속을 두고 갈등을 빚었고, 최근엔 사명을 놓고 법적 공방을 벌였다.

효성가에서도 ‘형제의 난’이 한창이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차남 조현문 변호사는 최근 아버지와 형 조현준 효성 사장, 동생 조현상 효성 부사장의 비리 사실을 검찰에 고발했다. 조현문 변호사는 경영에서 배제되자 아버지 및 형제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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