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 “이대로”, 새정연 “바꾸자”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5.08.05 17:39
  • 호수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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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도 둘러싼 논란 ‘후끈’…각자 유리한 주장 펼쳐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혁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7월26일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의원 정수 확대’ 등을 골자로 한 선거제도 개혁안을 제안하면서 정치권에 큰 파장이 일었다. 사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선거법 개정 문제는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이슈였다. 지난해 선거구 획정 인구 비례 기준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 따라 올해 안으로 선거구 조정을 포함한 대폭적인 선거제도 개정 논의가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우리가 현 선거제도 최대 수혜자”

이런 상황에서 야당 혁신위의 전격적인 제안을 계기로 정국이 급속도로 선거제도 개편 논의를 향해 빨려들어가는 형국이다. 새정치연합 혁신위 제안의 핵심은 ‘비례성 확대’다. 유권자들의 정당 득표율과 실제 의석 점유율이 비례하지 않는 것을 제도적으로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현행 제도하에서는 거대 양당이 실제 득표율보다 더 많은 의석을 가져가는 경향이 불가피하다. ‘소선거구 1위 대표제’인 탓에 군소 정당들을 향한 유권자 지지가 사표(死票)가 되기 때문이다. 영호남을 지역 기반으로 하는 양대 정당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쉬운 선거제도를 바꿔야 지역주의 타파 및 이념·정책 중심의 정당 체계 수립이 가능하다는 것이 혁신위의 논리다. 이를 위해 독일식 권역별 소선거구-비례대표 연동제를 도입하고,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기 위한 의원 정수 확대를 검토하자는 것이다.

갑자기 뚝 떨어진 얘기가 아니다. 지역주의 극복이 한국 정치 발전의 근본 과제라는 점에는 오랜 기간에 걸쳐 국민적 공감대가 쌓였다. 그동안 학계 및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선거제도 개선을 통한 ‘비례성 확대’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이미 중앙선관위가 지난 2월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에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가이드라인’으로 제안한 바 있다. 정당의 지역 편중 현상을 완화하고 유권자의 정치적 의사를 좀 더 충실히 반영할 수 있으려면 비례성을 확대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번에 나온 새정치연합 혁신위의 ‘권역별 소선거구-비례대표 연동제’ 제안 역시 선관위 안을 기초로 한 것이다.

다만 선관위는 ‘의원 정수 유지’를 전제로 개정안을 설계했다. 총 정수 300명을 전국 6개 권역별 인구 비례에 따라 배분하되, 지역구와 비례대표 비율을 2 대 1 범위(±5%)에서 정한다. 현재는 지역구 의원이 246명, 비례대표 의원이 54명이다. 선관위 안대로 제도를 개정하면 지역구 의원 200명, 비례대표 100명 수준으로 조정된다. 지역구 의석이 대폭 줄어들고 비례대표 의석이 늘어나는 것이다. 새정치연합 혁신위는 선관위의 ‘2 대 1’ 비율에 동의하는 한편, 현행 지역구 의석수를 유지하며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는 ‘의원 정수 확대’에 대한 논의를 정치권에 촉구한 상태다. 결국 선관위 안과 혁신위 안 모두 핵심은 독일식 혼합형 제도 도입을 바탕으로 비례대표 선출 비율을 높이는 데 있다.

새누리당은 야권의 의원 정수 확대 논의를 집중적으로 비판하며 ‘비례대표 확대론’을 진화하는 방향으로 여론전에 나섰다. 대신 여권이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오픈 프라이머리(국민 경선제) 도입’을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기득권 내려놓기라는 주장도 펴고 있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7월27일 “지금은 의원 정수를 늘릴 때가 아니라 고비용·저효율의 국회에 대해 강력한 정치쇄신과 개혁을 이뤄내고 일하는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어 국민들로부터 신뢰부터 회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청원 최고위원은 7월30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국회의원 정수 증가는 절대 불가능하다”며 “(300명 정수를 유지하되) 지역구를 일부 늘리고 비례대표를 축소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해 아예 선관위 권고에 정면 배치되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야당도 지역구 축소에는 부담 느껴

여당이 이처럼 비례대표제에 민감한 속내는 따로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도입될 경우 여당이 잃게 될 ‘기득권’을 우려해 전략적 대응에 나선 정황이 확인되고 있다. 7월29일 언론을 통해 새누리당의 대외비 내부 문건 ‘독일식 권역별 비례대표제도 시뮬레이션’이 공개된 것이다. 지난 5월 작성된 이 문건에는 2012년 19대 총선 결과에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적용해본바 새누리당에 불리한 결과가 나온다는 결론을 토대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은 시기상조”라고 명시했다.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새누리당이 호남에서 얻는 의석수는 상징적인 수준인 데 반해, 민주통합당(현 새정치연합)은 영남에서 의석이 대폭 신장된다”는 것이다. 문건에는 “새누리당은 현재 지역구 비례대표 병렬식 선거제도, 소선구제하에서 과대 대표되는 정도가 가장 큰 정당” “(새누리당이) 현행 선거법의 최대 수혜자 정당”이라는 ‘자기 고백’도 포함돼 있다.

결국 총선에서 비례성을 확대하는 방향이 기존 제도의 ‘최대 수혜자’인 여당에 불리하다는 결론을 내려두고 일찌감치 ‘기득권 지키기’에 나선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유은혜 새정치연합 대변인은 7월29일 “새누리당이 권역별 비례대표제도 도입에 반대하는 속내가 드러난 것이다. 과대 대표로 인한 민의의 왜곡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보다 자기 정당의 이해득실을 앞세워왔던 것이 아닌가”라며 비판의 공세를 높였다. 국회 정치개혁특위 야당 간사인 김태년 의원은 “(새누리당이) 스스로 과대 대표되고 있다는 것을 시인한 것”이라며 “과대 대표가 되고 있다는 점은 곧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를 개선할 의무도 진다”고 여당을 압박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결국 의원 정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반대하고 있는 것”(원유철 원내대표), “자신들(야권)에게 유리하게 골대를 옮기려는 시도”(김재원 의원) 등의 입장을 내세우며 완강하게 맞서고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려는 야당으로서는 여당을 설득·회유하거나 압박할 전략적 카드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손에 쥔 패가 마땅치 않다. 지역구를 손대지 않고 비례대표를 늘리는 ‘의원 정수 증대’ 카드는 부정적인 국민 여론이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정수를 유지하며 비례대표를 늘리는 ‘지역구 의석 감축’ 카드를 꺼내자니 지역 기반을 핵심 정치 자산으로 하는 거대 양당의 정치인들에게 발목이 잡힐 가능성이 크다는 부담이 따른다.

이에 관해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현재 선관위 안과 매우 흡사하게 비례대표 의석을 대폭 늘리는 방향의 선거제도 개혁이 과거에 추진된 적이 있었다는 점이다. 2003년의 일이다. 2001년 헌법재판소가 1인1표제로 비례대표 의원을 선출하는 것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리면서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들불처럼 일었던 때다.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새정치연합의 전신)이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당론으로 채택하는 등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큰 폭으로 진행됐다. 당시 국회정치개혁특위는 각 정파의 이해관계를 초월한 개선안을 마련하려 학계·법조계·시민사회·여성계 등 민간 전문가 11인으로 구성된 직속 자문기구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정개협)를 설립했다. 당시 정개협이 국회에 제출한 개정안은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되 227명이던 지역구 의원을 199명으로 줄이고, 46명이던 비례대표 의원을 100명으로 늘리는 것이었다. 최근 나온 선관위 안의 ‘2 대 1’ 비율에 해당한다. 1인2표제 정당명부식 선거제도 도입과 맞물려, 비례대표 의석 숫자도 크게 늘려 선거 과정에서의 비례성을 대폭 확보하자는 취지였다.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들이 7월26일 국회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제안하는 5차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총선 8개월 전, 지역구 1석 줄이기도 어려워”

하지만 정개협의 개선안은 정치권에 수용되지 못했다. 당시 영호남 및 충청권을 지지 기반으로 삼은 한나라당·새천년민주당·자민련 등 야 3당의 반대가 심했기 때문이다. 결국 당시 선거제도 개혁은 지역구 의석이 오히려 16석 늘어나고, 비례대표 의석은 고작 10석 늘어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정치권의 ‘기득권’ 논리에 밀려 독립적인 민간 자문기구의 혁신안이 수용되지 못한 것이다. 당시 정개협 위원으로 활동했던 김민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의원들이 지역구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 정치권의 호응이 매우 낮았다. 제도가 지닌 장점은 상당 부분 인정을 받았음에도 이에 대한 국민 사이의 공감대가 부족해 정치권을 압박할 힘이 약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김민전 교수는 “당시와 비교하면 최근의 국민 여론이 오히려 더 안 좋아진 듯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 행한 숱한 ‘개혁’ 약속들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반복되면서 국민들 사이에 냉소가 확산된 분위기가 강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세비 동결 등을 약속하더라도 국민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의원들을 ‘갑’, 즉 특권 세력으로 보는 인식이 팽배한 상황에서 정수 늘리기를 ‘특권 늘어나기’로 받아들이는 여론을 간과하기 힘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의원 정수 확대를 전제로 한 비례대표 확대론은 정치에 대한 실망감이 쌓인 국민들로부터 지지받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의원 정수 유지를 전제로 비례대표를 늘리자는 구상도 앞길이 험난하긴 마찬가지다. 2003년 당시 지역구 의원 28명을 줄이자는 민간 전문가들의 제안은 정치권 협상을 거쳐 ‘16명 증원’이라는 결과로 되돌아왔다. 그만큼 지역 정치인들의 기득권을 넘어서는 일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국회 정치개혁특위 소속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은 7월31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현실적으로 내년 총선이 8개월여 앞으로 다가와 있는데 지역구 1석 줄이기도 어렵지 않겠나. 그런데 46명을 줄이자는 건 현실감이 전혀 없는 이야기”라는 반응을 보였다. 새정치연합의 한 당직자도 “여론 역풍 탓에 의원 정수를 유지하며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방향이 활발히 거론된다. 하지만 총선 직전에 지역구를 대폭 줄이자는 것이 과연 현실적인 얘기인지, 출마를 준비해온 당내 인사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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