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개고, 나눠주고, 몰아주고…‘너 꼼수’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5.08.05 17:41
  • 호수 93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헌재 판결로 지역구 조정 불가피…의원들 ‘자리’ 지키기 사활

의원 정수 확대 논란이 정치권을 뒤덮으면서 불똥이 선거구 재획정 문제로 옮겨붙고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등 중앙선관위가 권고한 ‘권역별 지역구 대 비례대표의 2 대 1’ 비율을 맞추기 위해서는 현재 246곳인 지역구 축소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 300명인 의원 정수를 늘려야 한다. 여야 정치권은 지역구 수 축소에 모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지역구 의원들의 생사가 걸려 있는 탓이다.

서울 중구 놓고 종로-용산 ‘신경전’

헌법재판소의 선거구 재획정 결정으로 여야 모두 살아남기 위해 온갖 경우의 수를 따져보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왼쪽 사진)와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 ⓒ 연합뉴스

지난해 10월30일 헌법재판소의 ‘선거구 획정 불합치 판정’ 또한 지역구 축소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헌재는 “현행 국회의원 지역 선거구제도는 헌법에 불합치한다. 선거구별 인구 편차를 현재 3 대 1에서 2 대 1로 조정하라”고 판결했다. 전체 246곳 가운데 인구 상한(27만8760명)을 초과한 선거구는 36곳이고, 인구 하한(13만9380명)에 미달하는 선거구는 24곳이다. 인구 상·하한은 선거구 평균 인구(20만9070명)에 33.3%를 더하고 뺀 수치다. 단순 수치로만 봐도 지역구 숫자는 늘어나야 할 판이다. 하지만 선관위 권고대로 비례대표를 늘릴 경우 지역구 증가는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통폐합되는 지역구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20대 총선을 불과 8개월여 남겨두고 정치판이 혼란에 휩싸여 있다.

‘게임 룰’의 변화에 여야 가릴 것 없이 모든 국회의원들은 온갖 경우의 수를 따져볼 수밖에 없다. 살아남기 위해서다. 가장 큰 문제는 인구 하한선에 못 미치는 선거구다. 인근 선거구와 통폐합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지역을 가져오기 위해 눈치싸움이 치열하다. 이미 각 지역구에서는 당락을 결정지을 샅바싸움이 시작됐다. 기형적인 게리맨더링(특정 정당이나 특정인에게 유리하도록 불공정하게 선거구를 정하는 것) 선거구가 곳곳에서 탄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하한 미달 선거구는 전국 24곳(6월 말 주민등록 인구 기준)에 이른다. 이 중 새누리당이 차지한 선거구는 13곳, 새정치민주연합은 11곳이다. 지역별로는 호남이 9곳, 대구·경북(TK) 지역이 7곳이다. 여야 모두 자신의 텃밭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하한 미달 선거구는 통폐합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특히 선관위의 제안대로 같은 시·군·구 내 경계 조정이 허용된다 하더라도 선거구 유지가 힘든 지역이 22곳에 이른다. 경북 6곳(영천, 상주, 문경·예천, 군위·의성·청송, 영주, 김천), 전북 4곳(무주·진안·장수·임실, 남원·순창, 고창·부안, 정읍), 전남 3곳(고흥·보성, 장흥·강진·영암, 무안·신안), 부산 2곳(서, 영도), 충남 2곳(부여·청양, 공주), 강원 2곳(홍천·횡성, 철원·화천·양구·인제), 서울 1곳(중), 광주 1곳(동), 충북 1곳(보은·옥천·영동) 등이다.

부산은 김무성·유기준·정의화 등 ‘거물’ 얽혀

서울 선거구 중 유일하게 인구 하한에 미달된 지역인 중구는 단독 선거구로 존재할 수 없게 될 가능성이 크다. 통폐합이 불가피한데, 인근 선거구인 종로구나 용산구와 합쳐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통폐합 후에는 오히려 인구 상한을 초과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또다시 종로 또는 용산이 갑·을 2개 선거구로 나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중구에 종로 또는 용산의 일부 동(洞)이 합쳐진 기형적인 선거구가 탄생할 수 있다. 중구에 일부 동을 떼어주게 될 종로 또는 용산 지역구 정치인으로서는 초비상이 아닐 수 없다.

정치적 셈법도 복잡하다. 중구는 현재 새정치연합의 지역구(정호준 의원)다. 종로 역시 새정치연합(정세균 의원)이지만, 용산은 새누리당(진영 의원)이 차지하고 있다. 통폐합 과정 후 또다시 선거구를 2개로 나눌 때,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유리한 지역을 가져오기 위한 여야 간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이는 같은 당일지라도 다르지 않다. 각 선거구 안에서도 여야 선호 지역이 갈라지고, 이에 따라 자신의 당을 선호하는 지역을 가져가고 싶은 마음은 똑같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은 충북에서도 마찬가지다. 하한 기준에 아슬아슬하게 못 미치는 박덕흠 새누리당 의원의 지역구 보은·옥천·영동은 경대수 새누리당 의원의 증평·진천·괴산·음성과 경계 조정을 해서 일부 지역을 가져올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괴산이 조정 지역으로 꼽히는데, 괴산은 경대수 의원의 고향이다. 경 의원으로서는 졸지에 텃밭을 잃어버리는 셈이 되는 것이다.

통폐합을 막기 위한 ‘지역 나눠 가지기’ 조짐도 보인다. 광주의 경우 북구 을은 인구 상한 초과로 분구가 가능하지만, 동구는 하한 미달로 통폐합돼야 하는 실정이다. 동구가 인근 지역구로 통폐합될 경우 광주의 국회의원 수는 현 8명에서 7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광주 지역 정치권에서는 분구를 해야 하는 북구 을은 북구 갑과 경계 조정을 해서 일부 지역을 넘겨주고, 다시 북구 갑에서 일부 지역을 동구로 넘겨줘 하한선을 초과하게 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이외에도 동구와 남구를 합병해 동·남구 갑과 을로 나누는 방안도 나오고 있다.

부산은 여당 거물급들의 전쟁으로 점입가경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영도와 유기준 해양수산부장관의 서구가 하한에 미달했다. 이 때문에 영도와 서구를 통합하는 방안이 나오고 있다. 합병이 된다면 둘 중 하나만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김 대표는 물론이고, ‘친박’인 유 장관도 양보하지 않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이 때문에 나온 꼼수가 인근의 중·동구를 분리해서 ‘중·영도구’, ‘동·서구’로 묶자는 것이다. 하지만 중·동구는 정의화 국회의장이 5선을 한 텃밭이다. 정 의장이 내년 총선에 출마할 경우, 세 명의 거물 정치인이 엮이는 복잡한 상황이 된다. 이 때문인지 새누리당 비박 진영 관계자는 “유 장관은 이제 입각한 지 5개월도 채 안 됐다. 장관 업무에 집중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로 서·영도의 통합 주장을 펴기도 했다.

황인상 P&C정책연구원 대표는 “우리나라 지역구 국회의원은 한 지역을 대표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선거구 재획정 결정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이런 식의 기형적인 선거구는 의미가 없다”며 “예외 조항을 둬서 탄력적으로 선거구를 재조정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역 떼어주기로 해결되지 않아 결국 어느 한 선거구가 없어져야만 하는, 이른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형국도 연출되고 있다. 충남의 경우, 국무총리까지 올랐던 이완구 의원의 부여·청양과 새정치연합에서 원내대변인을 맡고 있는 박수현 의원의 공주가 바로 그에 해당한다. 두 지역이 통폐합할 경우 상한을 초과하지 않아 결국 공주·부여·청양 선거구로 통합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여당의 경우, 공주에 이미 3선을 지낸 정진석 전 국회 사무총장이 당협위원장을 맡아 출마 준비를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이 전 총리와 정 전 사무총장 등 두 거물의 사활을 건 한판 승부가 불가피하다.

여야의 텃밭인 영호남 지역에서도 일찌감치 집안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새누리당의 경우 대구에서는 류성걸 의원의 동구 갑과 권은희 의원의 북구 갑이 통합될 처지에 놓여 있다. 경북에서는 정희수 의원의 영천과 김재원 의원의 군위·의성·청송이, 이철우 의원의 김천과 김종태 의원의 상주가 통합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한성 의원의 문경·예천과 장윤석 의원의 영주 역시 마찬가지다.

하한선 상향 조정해 일부 지역구 유지 시도 

새정치연합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전남·북의 경우 박민수 의원의 진안·무주·장수·임실과 강동원 의원의 남원·순창, 유성엽 의원의 정읍과 김춘진 의원의 고창·부안, 김승남 의원의 고흥·보성과 황주홍 의원의 장흥·강진·영암이 통합 대상으로 거론된다. 통합이 이뤄질 경우 두 현역 의원 간 맞대결을 피할 수 없다.

상황이 험악하게 전개되자, 선거구 통폐합을 막기 위해 인구 상·하한선을 조정하자는 ‘꼼수’도 논의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인구 편차 기준을 2 대 1로 축소해야 한다고 결정했을 뿐 전국 선거구당 ‘평균’ 인구수를 2 대 1로 하라고 밝힌 적은 없다는 것이 그 논리다. 이 때문에 하한선은 조정 가능하다는 해석이다. 정개특위의 한 관계자는 “인구 하한이 약 14만명 수준에서 조금 내려가서 일부 지역구를 유지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이로 인해 지역구 수가 현행 246석에서 262석 안팎으로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크다. 늘어나는 지역구 숫자만큼 비례대표를 줄여야 하는데, 이는 선관위 권고에도 역행하는 등 야당의 반발을 불러올 게 뻔하다. 여당 역시 ‘비례대표 확대’ 여론이 많은 상황에서 지역구 숫자만 무작정 늘리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야는 게리맨더링 논란을 피하기 위해 선거구획정위원회를 중앙선관위 소속 독립기구로 설치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선거구 획정 기준은 여전히 국회의원들 손에서 만들어진다.

이와 관련해 정개특위 관계자는 “현재 여의도에서 나오고 있는 여러 가지 시나리오는 게리맨더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같은 당이라는 이유로 지역구를 (하한 미달 지역에) ‘헌혈’해주고, 실세 의원들의 눈치를 보느라 선거구를 이리저리 갖다 붙이고 있다.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긴 꼴”이라고 비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