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車 디자인 독학해 닛산 디자이너에 채용된 한국 청년
  • 박성의 기자 (sincerity@sisabiz.com)
  • 승인 2015.08.10 09:57
  • 호수 93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열정과 도전 정신으로 ‘취뽀’에 성공…”하고 싶은 걸 하라”

“자동차 디자이너 문이 좁다고요? 요즘 세상에 문이 넓은 꿈이 있나요.”

치솟는 청년 실업률 앞에 “하고 싶은 걸 하라”는 말은 진부해졌다. 이 비현실적인 말이 가장 현실적이라 말하는 청년이 있다.

자동차 디자인을 독학해 세계적 자동차 디자인대회에서 1등한 뒤 졸업을 앞두고 일본 닛산 자동차 디자이너 취업을 확정한 청년. 주인공 전영재씨를 시사저널 경제매체 시사비즈가 만났다.

◇ 포트폴리오 하나로 닛산을 두드리다

지난 6일 가로수길 카페에서 만난 닛산 자동차 디자이너 전영재씨 / 사진=박성의 기자

무더운 여름날 가로수길 카페에서 만난 전영재(26·건국대 산업디자인학과)씨는 학교에서 졸업전시회를 준비하다 왔다며 수줍게 웃었다. 전씨는 요즘 대학생에게는 공공의 적이다. ‘취뽀(취업 뽀깨기)’를 졸업 1년 남기고 성공했다.

취업에 성공한 곳은 일본 자동차회사 닛산(Nissan). 1933년 설립된 닛산은 도요타, 혼다와 함께 일본 3대 자동차회사 중 하나로 꼽힌다. 세계 유수 디자이너들이 근무하는 이른바 ‘꿈의 직장’이다.

전씨의 닛산 입사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전씨 입학 당시 산업디자인학과는 체계적인 자동차 디자인 커리큘럼이 없었다. 전씨는 대학교 1학년부터 자동차 디자인을 독학해야 했다. 막막했지만 하루도 펜을 놓지 않았다.

전씨는 기회를 스스로 만들었다. 외국 사이트에 뜬 닛산 인턴십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전씨는 무작정 자신이 만든 디자인 포트폴리오를 닛산 인사담당자에게 보냈다.

“해외 자동차 회사는 국내에서 인턴 채용을 공고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었다. 매일 외국 사이트를 확인했다. 닛산 채용공고를 보고 이거다 싶었다. 떨어지더라도 실력에 대한 평가는 받아보고 싶었다.”

전씨의 무모한 도전이 기적을 낳았다. 닛산은 전씨를 특별 케이스로 선발했다. 닛산과 양해각서(MOU)를 맺지 않은 국내 대학의 학생이 인턴에 합격하기는 전례 없는 일이었다. 포트폴리오 힘이 컸다. 닛산은 2014년 하반기 인턴으로 전씨 포함 외국인 4명을 뽑았다.

“함께 인턴이 된 외국인 친구 3명은 미국 유명 디자인 스쿨 출신이었다. 실력이나 경험 면에서 대단한 친구들이다. 하지만 꿈에 대한 절실함만큼은 내가 앞선다고 믿었다.”

전씨는 1달에 걸친 컨셉트카 디자인 프로젝트를 마친 뒤 2016년 입사를 확정지었다. 유일한 외국인 합격자였다. 외국어 구사 능력부터 학벌, 인턴경험 모두 부족했지만 오로지 실력 하나로 얻어낸 결과였다.

◇ “이루기 쉬운 꿈 없어, 하고 싶은 걸 해야”

전영재씨가 작년 닛산 담당장에게 보낸 포트폴리오를 설명하고 있다. / 사진=박성의 기자

입사가 확정된 뒤 국내 자동차 회사 스카우트 제의가 이어졌다. 닛산보다 많은 연봉을 제시했지만 ‘세계적 디자이너’라는 꿈을 펼치기에 한국은 좁았다.

전씨 꿈은 피터 슈라이어나 크리스 뱅글같은 세계적 자동차 디자이너 반열에 오르는 것이다. 전씨는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돼서 오래 기억될 만한 차, 닛산 GTR처럼 한 회사 상징이 되는 차를 디자인하고 싶다. 누가 봐도 전영재가 만든 차라고 말할 수 있는 ‘디자인 정체성’을 갖고 싶다. 그런 면에서 카마로를 디자인한 한국인 디자이너 이상엽씨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전씨는 자기 이야기가 후배들에게 희망이 되길 원했다. 전씨는 자신이 그린 디자인 스케치 수백장을 보여줬다. 전씨 꿈을 이룬 건 80%가 열정이었다.

“자동차 디자이너 길은 좁다. 경쟁률이 높다고 꿈을 바꿀 필요는 없다. 식상하지만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정답이다. 그래야 열심히 할 수 있다.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기회는 꼭 찾아온다.”

전씨는 입사 전까지 여행을 다니며 디자인 스케치를 계속할 계획이다. 그는 세계 디자이너들과 경쟁하려면 재능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편 닛산은 외국인 입사자에게 일본 도쿄 맨션을 1년 동안 무상 임대한다. 1년 뒤에는 보증금 100%와 월세 50만원을 지원한다. 전씨의 입사 확정일은 내년 4월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