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 칼날의 첫 번째 타깃은 제2롯데월드"
  • 조해수·엄민우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5.08.11 09:40
  • 호수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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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사업 진출 허가·면세점 특혜 논란 등 비리 의혹 재점화…“이번엔 피해가기 어려울 것”

롯데그룹에 대한 사정 당국의 압박이 본격화하고 있다. 국세청 세무조사에 이어 공정거래위원회가 그룹 지배구조 조사에 착수했다. 공정위는 일본 롯데 계열사 주주와 출자 현황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만약 롯데 측이 허위 자료를 제출할 경우에는 신격호 총괄회장에 대한 처벌이 가능하다는 것이 공정위의 입장이다. 문제는 검찰이다. 여론의 압박 때문인지 제2롯데월드 건설, 맥주 사업 진출, 면세점 특혜, 부산롯데타운 신축 등을 둘러싼 논란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계열사를 통한 비자금 조성 의혹도 나온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역시 제2롯데월드 건설이다.

1967년 롯데제과를 시작으로 한국 롯데가 창립된 지 벌써 반세기가 다 되어간다. 그동안 롯데그룹은 매출 83조원, 자산 93조4000억원, 종업원 23만명을 둔 재계 5위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경유착에 대한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1970년대 초 식품기업에 머물러 있던 롯데가 호텔과 백화점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박정희 정권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외자 유치에 목을 매던 박정희 정권은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이 재일교포라는 점을 이용해 외자특례법을 적용함으로써 부동산 취득세·재산세·소득세 등 각종 세금을 전폭 면제해줬다. 롯데월드는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서울 잠실 개발에 목말라하던 전두환 정권과 롯데그룹이 의기투합한 결과다. 롯데월드는 당시 상공부·재무부·관세청·서울시 등 거의 모든 관계 기관이 발벗고 나선 결과 단 4년여 만에 모든 시설을 완공할 수 있었다. 또한 신 총괄회장이 숙원 사업으로 여기던 동양 최대 쇼핑몰 제 2롯데월드 신축 사업을 둘러싸고 이명박(MB) 정부와의 교감설도 끊이지 않았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8월3일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귀국,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현 정부 출범 초기 ‘롯데 사정설’도 피해가

롯데그룹에 대한 특혜 시비는 역대 정권마다 계속 불거졌지만, 놀랍게도 신격호 총괄회장은 단 한 번도 실형을 받은 적이 없다. 신 총괄회장뿐만 아니라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역시 마찬가지다. 1995년 대선 불법자금 문제로 다른 대기업 총수와 함께한 차례 조사를 받은 것이 전부다. 신동빈 회장의 경우 2012년 국회 국정감사와 청문회에 불출석한 혐의로 10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정권 교체기마다 전 정권의 그림자를 지우기 위한 대기업 사정이 진행됐지만 롯데만은 항상 비켜갔다. 신 총괄회장의 폭넓은 인맥과 함께 일본 정·재계가 롯데를 비호하고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왔다. 그러나 이런 난공불락의 철옹성은 내부에 의해서 스스로 무너졌다. 이른바 ‘롯데 왕자의 난’으로 사정 무풍지대였던 롯데가 ‘풍전등화’의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이번엔 그냥 넘어가기 쉽지 않아 보인다.” 검찰·국세청 등 사정기관 관계자들이 롯데 경영권 분쟁과 함께 제기되는 사정 후폭풍 가능성에 입을 모아 한 말이다. 말 그대로 롯데그룹 최대 위기다.

사실 롯데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대기업 사정설’이 나돌 때마다 포스코·농협 등과 함께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렸다. 롯데가 전 정권인 MB 정부 시절 재미를 가장 많이 본 기업 중 하나라는 의혹 때문이다. 실제 MB 정부 시절 롯데는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었다. 공군 서울기지인 서울공항의 활주로까지 틀어가며 제2롯데월드 건설 허가를 받는가 하면, 또 하나의 숙원 사업이었던 맥주 사업에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롯데호텔은 외국 귀빈들의 숙소로 선정되고 정부 주관 행사를 대부분 독점하다시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부터 인선 작업을 롯데호텔 31층 로열스위트룸에서 진행했다. 이 때문에 롯데호텔은 ‘작은 청와대’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롯데는 MB 정부 시절 46개였던 계열사가 79개로 늘어났다. 49조2000억원이던 자산 총액도 95조8000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서울 송파구 잠실의 롯데월드타워. ⓒ 시사저널 박은숙

“책임 따지다 보면 MB 정권 핵심에 이를 수도”

박근혜 정부 초기, 롯데는 사정 바람을 용케 비켜나는 듯했다. 오너가 구속까지 당한 CJ와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2013년 롯데에 대한 세무조사다. 당시 서울국세청 조사4국은 직원 150명을 동원해 롯데쇼핑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행했다. 롯데쇼핑은 롯데 오너 일가가 장악한 실질적 지주회사였기에 불똥이 어디로 튈지에 이목이 쏠렸다. 그런데 당시 국세청은 600억원을 추징하고도 검찰에 고발을 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검찰 측에서 불만이 나올 정도였다. 당시 한 검찰 관계자는 기자에게 “조사 기간을 80일이나 연장하기까지 하고 600억원이나 추징했는데 고발을 하지 않았다. 도대체 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나”라고 불만을 강하게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 칼날을 피해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타이밍이 좋지 않다. 최근 박근혜 정부가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파동과 국정원 해킹 사태 등으로 지지율 하락을 겪고 있어 하반기에는 4대 국정과제 개혁과 함께 사정 정국으로 국정 주도권을 공고히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롯데의 내분 사태는 최근 민감한 한·일 관계까지 결부되는 등 국민 여론이 매우 좋지 않은 데다 이전 정권과 연결되어 있어 현 정부엔 부담이 없다. 실제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불투명한 지배구조는 물론이고 자금 흐름까지 엄밀히 살펴보겠다”고 공언했고, 친박 핵심인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작심한 듯 “국민에 대한 역겨운 배신 행위”라며 롯데를 향해 노골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이에 발 맞춰 검찰과국세청, 공정위가 약속이나 한 듯 전 방위적으로 롯데를 옥죄고 나섰다. 우선적으로 MB 정권 특혜 시비에 휩싸인 사업이 사정기관들의 첫 번째 타깃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제2롯데월드 건설 허가, 맥주 사업 진출 허가, 면세점 특혜 논란, 부산롯데타운 신축 허가 등이 바로 그것이다. 최대 현안은 역시 제2롯데월드다. MB는 취임 직후인 2008년 3월 기업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제2롯데월드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하라”고 밝히면서 10여 년간 지지부진했던 제2롯데월드 건설 문제를 재점화시켰다. 공군은 성남 공군기지의 비행 안전성 문제로 극렬히 반대했지만, MB는 김은기 당시 공군참모총장을 경질하는 초강수를 두면서까지 제2롯데월드 건설을 밀어붙였다. 활주로 각도를 3도 정도 틀면 안전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시절 제2롯데월드에 대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안전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동쪽 활주로를 7도 정도 틀어야 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이럴 경우 외부의 도로 매입, 야산 정비 등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게 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MB 정권이 롯데의 건설비용을 줄여주기 위해 특혜를 제공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제2롯데월드는 저층부 개장 이후에도 안전과 교통 문제 등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아 서울시와 국토교통부가 언제든 옐로카드를 꺼내들 수 있는 상황이다. 서울 중앙지검 관계자는 “롯데에 대한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만약 전 정권과의 정경유착으로까지 수사가 확대된다면 제2롯데월드가 첫 번째 타깃이 될 것”이라면서 “결과적으로 공군 참모총장까지 경질됐기 때문에 책임 소재를 따져 올라가다 보면 MB 정권 핵심까지 이를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맥주 사업 진출도 도마에 올랐다. 롯데그룹은 2009년 5월 맥주 사업 진출을 선언했는데, 당시 규정상 맥주는 연간 1850kL(500mL 370만병) 이상, 소주는 연간 130kL(360mL 36만병) 이상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의무적으로 갖춰야만 했다. 그러나 MB 정부는 롯데의 발표가 떨어지기 무섭게 그해 9월 주류제조업 면허 기준을 대폭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롯데는 2012년 3월에 주류제조업 면허를 획득하며, 최근 맥주 ‘클라우드’의 대히트까지 이어올 수 있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통하는 면세 사업에서도 특혜 논란이 일고 있다. 롯데호텔은 2010년 또 다른 면세사업자 AK글로벌 지분 81%를 인수하면서 전체 시장 점유율의 절반을 넘는 독과점적 지위를 가지게 됐다. 그러나 당시 공정거래위는 인수 승인을 롯데호텔에 내줬고, 관세청은 면세사업권 승계를 허가했다. 공정위가 독과점으로 인한 경쟁 제한을 이유로 신라호텔의 파라다이스 면세점 인수를 승인하지 않았던 것과 180도 반대되는 결정이었다. 서울 관세청의 한 관계자는 “면세점 사업은 2013년 관세법 개정으로 5년마다 입찰을 통해 특허권을 받도록 바뀌었는데, 올해 말 입찰 심사가 이뤄진다”면서 “그동안 통상적으로 기존 사업자가 사업권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특혜 시비에 국민 여론도 좋지 않아 롯데가 재승인을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2005년 완공될 예정이었으나 지금까지 단 1층도 올리지 못하고 있는 부산롯데타운 건설 사업에 대해서는 용도변경으로 롯데에 천문학적인 부가 이득을 올릴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당초 계약이 체결된 2007년, 부산시는 롯데타운에 주거시설이 절대 들어올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롯데는 “호텔 객실의 이용률이 하락하는 추세고 오피스는 공실률이 높다”는 점을 줄기차게 주장해왔고, 마침내 2011년 부산시는 초대형 아파트 단지 건설을 조건부로 승인했다. 이렇게 되면 롯데는 약 900세대의 70~80평대 고급 아파트를 지을 수 있게 되고, 그로 인한 소득은 수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롯데쇼핑 비자금 의혹도 제기돼

롯데 비자금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도 진행 중이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는 롯데쇼핑 본사에서 롯데마트·롯데백화점·롯데시네마 등의 사업본부로 사용처를 알 수 없는 거액의 자금이 유입된 것을 확인하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번 검찰 수사는 2013년 금융정보분석원(FIU)의 통보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13년 초 롯데홈쇼핑 납품 비리 수사 과정에서 내사가 진행됐고, 이후 첨단범죄수사2부로 사건이 배당됐다.

문제는 이번 검찰 수사가 이미 국세청이 한 번 조사를 끝낸 사건이라는 데 있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2013년 7월부터 2014년 1월까지 거의 똑같은 내용을 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롯데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있는 정책본부까지 조사를 마쳤다. 국세청은 조사를 끝내고 600억원의 추징금을 부과했지만, 검찰 고발은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검찰이 자체적으로 조사에 나선 것이다. 만약 수상한 자금 흐름이 비자금과 관련된 것으로 결론 날 경우 롯데는 물론 국세청 역시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롯데그룹은 ‘왕자의 난’을 시작으로 박근혜 정부의 후반기 정국 주도권 장악을 위한 제1 사정 타깃으로 전락하고 있다.

 

 

장경작 전 롯데호텔 사장(왼쪽)과 소진세 총괄사장

MB 정부 시절 롯데의 승승장구에 핵심역할을 한 것으로 지목되는 사람은 장경작 전 롯데호텔 사장이다.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고려대 경영학과 61학번 동기로 서로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롯데가 전략적으로 그를 주요 자리에 앉혔다는 것은 유통업계 및 정치권에선 정설로 알려졌다. 2009년 2월 롯데는 롯데그룹 호텔 부문만 총괄했던 장경작 사장을 호텔은 물론 면세점, 롯데월드 등을 총괄하는 자리에 선임했다. MB가 취임한 직후다. 그는 당시 신격호 총괄회장이 1994년부터 추진했으나 서울공항 비행안전문제에 부딪혀 번번이 무산됐던 제2롯데월드 건설 허가승인을 이뤄내도록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MB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넘어오면서 롯데도 이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였다. 롯데는 박근혜 정부에선 대외협력단을 신설하고 그 단장으로 소진세 롯데슈퍼·코리아세븐 총괄사장을 발령했다. 소 사장은 현 정부의 핵심 실세로 불리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회장으로 있는 대구고 동문 사모임 ‘아너스클럽’ 회원이기도 하다. 이 모임은 이완수 감사원 사무총장, 이순우 우리은행장 등도 들어가 있는 대구고의 핵심 모임이다(시사저널 7월16일자‘TK에 검찰 출신 그분이 오시려나’ 기사 참조). 이 때문에 유통업계에선 “롯데가 MB 정부 시절엔 대통령 친구로, 이번 정권에선 정권실세 동문으로 위기를 타개하려 한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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