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구도는 ‘한국-동주’ ‘일본-동빈’이었다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5.08.12 18:33
  • 호수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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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의 비밀>로 본 롯데 흑역사 장·차남 경영권 분쟁은 20년 전부터 이미 예고돼

수십 년간 감춰져 있던 롯데 신격호 총괄회장과 한·일 롯데그룹의 속살이 두 아들 간 경영권 분쟁을 계기로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그동안 롯데그룹은 한국과 일본 두 곳에 뿌리가 걸쳐 있다는 점을 이용해 기업 지배구조를 철저하게 숨겨왔다. 신 총괄회장 또한 오너 일가와 관련한 일체의 사항이 외부로 공개되는 것을 꺼려왔다. 롯데그룹과 오너 일가의 이 같은 모습은 신 총괄회장의 경영철학에서 비롯됐다. 신 총괄회장은 평소 “기업 경영자는 업적이 모든 것을 말하는 것으로, 경영자의 사생활을 일부러 공개하는 것은 쓸데없다”는 말을 그룹 임원들에게 자주 해왔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1988년 경제지 ‘포브스’에서 조사한 세계 부자 순위 4위에 오를 정도로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인물이었지만, 언론에 노출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런 그의 사생활이 딱 한 번 세간에 노출된 적이 있었다.

1990년 3월24일 잠실 석촌호수에 건설된 롯데월드 매직아일랜드 준공식에 참석한 당시 민자당의 박태준·김종필 최고위원과, 나카소네 전 일본 총리, 김대중 평민당 총재(왼쪽에서 세번째 부터 남자) 등이 테이프커팅을 앞두고 있다. ⓒ 뉴스뱅크이미지

롯데가 전량 회수해간 책 <신격호의 비밀> 입수

1999년 3월4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사건이 일간지 1면에 등장했다. 이날 경향신문 1면 하단에 배치된 기사의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辛(신) 롯데회장 부친 墓(묘) 도굴’. 신격호 총괄회장 부친의 묘가 도굴꾼들에 의해 훼손된 사건이었다. 범인들은 도굴한 신 총괄회장 부친의 유골을 돌려주는 조건으로 8억원을 요구했다. 대기업 총수의 부친 묘가 훼손된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모았다. 반향이 커지자 범인의 지인이 경찰에 신고했고, 범인은 사건 발생 4일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그런데 범인이 밝힌 범행 동기가 더 주목받았다. 범인들은 경찰에서 “신격호 총괄회장의 일대기를 다룬 책을 보고 범행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범인들이 말한 책은 1998년 7월 중앙일보 기자였던 정순태씨가 쓴 <신격호의 비밀>이란 책이었다. 이 책은 정씨가 신 총괄회장의 유년 시절부터 1997년까지 겪은 일들을 풀어낸 것으로 신 총괄회장의 사생활과 경영철학이 비교적 상세하게 담겨 있었다. 정씨는 지금으로선 찾기 어려운 한국과 일본 언론의 기사 및 신 총괄회장의 지인 등을 통해 비교적 상세하게 신 총괄회장의 일대기를 조명했다.

이 책을 넘기다 보면 롯데그룹과 신 총괄회장에 관련된 비밀이 적지 않게 풀리게 된다. 하지만 정작 이 책이 출간되자 신 총괄회장은 그룹 홍보 담당자들을 크게 질책했고, 롯데그룹에서는 이 책을 전량 수거한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일반인들은 막상 이 책의 존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이 책의 내용을 보면 베일에 가려 있던 롯데그룹의 성장 과정과 오너 일가를 둘러싼 은밀한 내용이 적지 않게 나온다. 그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끄는 부분은 롯데그룹의 상징과도 같은 소공동 롯데타운 설립 과정과 현재도 논란이 되고 있는 제2롯데월드 부지 매입 과정, 그리고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내용이다. 특히 책이 출간됐던 20년 전부터 제2롯데월드와 관련한 논란이 있었고,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신동빈 한국 롯데 회장 간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언급됐다는 점은 눈길을 잡아끈다.

정씨는 책에서 소공동 롯데타운이 사실상 박정희·전두환 정권의 특혜에 의해 생겨났다고 말하고 있다. 다음은 롯데쇼핑 인허가와 관련된 책 속의 내용 일부분이다.

 

「1979년 3월 개관한 롯데호텔에 이어 그해 11월에 롯데쇼핑(백화점)이 오픈했는데, 업계에서 나도는 얘기로는 롯데쇼핑 개점의 건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마지막 재가 사항 중 하나였다고 한다. 롯데가 반도호텔 자리를 인수한 것은 한국 진출 5년 만인 1972년. 신(격호) 회장은 이어 소공동 국립도서관과 중국음식점 ‘아서원’ 자리를 매입해 호텔롯데를 세웠다. 호텔롯데의 건립에는 당시로서는 천문학적 돈이라 할 수 있는 850억원(1억 달러)이 투입되었다. 문제는 호텔롯데의 부대사업으로 추진된 롯데백화점에서 발생했다. 완공을 앞두고 허가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당시로서는 4대문 안에 백화점 신설 불허가 정부 방침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문제에 대해 박정희 대통령이 10·26 직전 허가 사인을 했고, 명칭만은 백화점 대신 ‘쇼핑센터’로 붙이기로 되었다고 한다. 이 같은 우여곡절 끝에 롯데쇼핑은 1979년 12월17일 개점을 했다.」

“모든 정권과 밀월관계 맺으며 승승장구”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기형적 지배구조도 군사정권과 기업이 만든 정경유착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호텔롯데의 최대주주는 일본에 적을 두고 있는 L 투자회사인데, 호텔롯데가 세워질 때만 해도 외국 기업이 절반 이상의 지분을 갖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신 총괄회장은 법망을 피해가는 꼼수를 썼고, 정부도 이를 승인해줬다.

 

「호텔롯데를 지을 때 일본 롯데가 100% 투자했지만, 당시의 관련 국내법상 외국인은 49% 이상의 지분 보유가 불가능, 경영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이럴 경우 일본 대장성도 신격호의 한국 투자를 승인해줄 수 없게 된다. 이 문제는 우여곡절을 거쳐 실로 기발한 아이디어에 의해 해결되었다. 즉 ‘재일교포 신격호’가 ‘대한민국 국민 신격호’에게 경영권을 위임하는 방식으로 100%의 투자가 가능해졌던 것이다. 당시 신격호가 한국 경제기획원과 일본 대장성에 제출해 승인을 받은 문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투자자 재일교포 신격호는 대한민국 국민 신격호와 합작하되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의 승인을 받은 원금 또는 과실 일체를 양국 정부의 승인을 받은 상환 계획표에 의거하지 않고 시설 투자와 사업 확장에 재투자할 수도 있다.’ 이때의 문건이 전례가 되어 신격호는 모국 투자에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게 된 데다 일본에 한 푼의 과실 송금을 하지 않고 한국 롯데를 계속 확장해갈 수 있었다.」

롯데그룹이 여러 정권의 특혜를 입으며 승승장구한 것이 말해주듯이, 신 총괄회장은 국내 다른 재벌들보다 정권의 압력에서 자유로운 편이었다. 이는 신 총괄회장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활동을 통해 잘 드러난다. 전경련은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자 정권과의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기업인들이 모여 만든 경제단체다. 자발적으로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정권 입장에서 기업들을 다루기 쉽게 하기 위해 만든 창구였다는 것이 학자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오늘날에도 대통령과 기업 총수가 청와대에서 만남을 갖는 자리에 불참하는 것이 쉽지 않듯이 군사정권에서 대통령과 회장단 모임에 기업 총수가 불참하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신 총괄회장만큼은 예외였다. 그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구자경 LG그룹 전 회장 등이 번갈아 맡았던 전경련 회장을 단 한 번도 맡지 않았다. 또한 대통령이 참석하는 전경련 회장단 모임에도 일본 출장을 이유로 대부분 불참했다.

전두환 정권 초반이던 1982년 6월10일 당시 전두환 대통령과 전경련 회장단의 오찬 자리가 있었는데 대다수 기업 총수가 참석한 이 자리에도 신 총괄회장은 불참했다. 이에 대해 과거 롯데그룹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굳이 전경련 회장을 맡거나 총수 모임에 참석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정부에 필요한 얘기가 있으면 지인을 통해 대통령에게 직접 민원을 넣었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박정희 정권 때는 박태준 전 국무총리가, 전두환 정권에서는 박철언 전 장관이 그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는 야당 총재 시절부터 가깝게 지냈다. 그래서 지금도 3당 합당 당시 YS(김영삼 전 대통령)와 JP(김종필 전 총리), 그리고 TJ(박태준 전 총리) 막후에서 합당을 도운 인물로 신 총괄회장을 꼽는 인사들도 있다.

권력 실세들과 친분이 두터웠던 신 총괄회장은 사정기관에 의해 수모를 겪는 일도 없었다. 신 총괄회장이 검찰에 소환된 일은 단 한 차례였는데, 이는 1995년 김영삼 정권이 노태우 정권 비자금 수사를 하면서 6대 기업 총수를 모두 소환할 때뿐이었다. 다른 기업 총수들이 이런저런 일로 검찰에 불려갔던 일이 몇 번 있던 것에 비해 신 총괄회장은 이것을 제외하고는 단 한 차례도 사정기관의 직접 조사를 받은 적이 없다. 앞서 언급했던 인사는 “모든 정권과 밀월관계를 맺으며 승승장구한 사람은 신격호 총괄회장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1990년 3월24일 잠실 석촌호수에 건설된 롯데월드 매직아일랜드 준공식에 참석한 당시 민자당의 박태준·김종필 최고위원과, 나카소네 전 일본 총리, 김대중 평민당 총재(왼쪽에서 세번째 부터 남자) 등이 테이프커팅을 앞두고 있다. ⓒ 뉴스뱅크이미지

1997년 이후부터 장·차남 역할 바뀔 것 관측

정순태씨의 책에 따르면 신격호 회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경영권 승계에 대한 고민을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장남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에게 한국 롯데를, 차남 신동빈 한국 롯데 회장에게 일본 롯데를 맡기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한다. 정씨는 그 근거로 맏며느리를 재미교포 출신인 한국인 여성으로 맞아들였고, 둘째 며느리를 일본인으로 맞아들인 것에서 찾았다. 두 형제 중 결혼은 동생인 신 회장이 빨랐는데, 결혼식은 1985년 일본에서 성대하게 펼쳐졌고, 주례 또한 후쿠다 다케오 전 일본 총리가 맡았었다. 이 예식은 일본 왕실 결혼식을 제외하고는 가장 화려했다고 일본 언론이 표현했을 정도로 일본에서도 화제를 모았었다고 한다. 신 전 부회장의 결혼식은 1992년 한국 롯데월드에서 열렸고, 남덕우 전 국무총리가 주례를 맡았다. 신 회장의 아내는 일본 유력 가문 출신이었는데 신 총괄회장은 이를 통해 신 회장에게 일본 롯데를 맡길 심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후 신 총괄회장은 경영 능력에서 신 회장이 낫다고 판단했고, 둘의 역할을 바꾸려 했다. 정씨는 책에서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부분을 이렇게 표현했다.

 

롯데 신격호 총괄회장이 7월28일 서울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 연합포토

「두 사람은 한 살 터울의 형제지간이지만, 성향과 기질은 사뭇 다르다. 동주씨는 온순하면서 다소 방어적이고, 동빈씨는 냉철하면서 매우 공격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롯데는 장남 동주씨가, 일본 롯데는 차남 동빈씨가 승계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유력했다. 그러나 차남 동빈씨가 한국 롯데그룹의 부회장으로 승진한 1997년 이후에는 장남·차남 역할이 뒤바뀔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동빈씨는 부회장 취임 이후 한 달에 2~3차례씩 서울을 방문해 그룹 임직원들을 만나 관련 업무의 보고를 받는다. 호텔롯데에 차려놓았던 간이 숙소를 없애고, 서울 동부이촌동에 아파트까지 마련했다. 줄곧 일본에 체류했던 그가 후계 준비를 위한 한국 상륙을 본격화한 모습이다.」

「신격호는 전통적 장자 상속의 관례에 따라 장남 동주씨에게 한국 롯데를 승계시키고, 일본 여성과 결혼한 차남 동빈씨에게는 일본 국적을 가지게 함으로써 롯데의 후계자로서 운신의 폭을 넓혀주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신격호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매우 건강한 편이다. 그는 칼자루를 놓지 않은 채 앞으로 상당 기간 한·일 롯데그룹에 대한 친정 체제를 계속할 것 같다. 아직은 장남과 차남에게 일정한 재량권을 주어 능력과 적성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건강 이상설, 롯데도 인정하는 분위기 


도굴 사건 이후로 신격호 총괄회장 일가에 대한 이야기가 외부로 흘러나간 적은 거의 없다. 신 총괄회장이 한 달은 한국, 한 달은 일본에서 지내고 있다는 셔틀 경영에 관한 이야기, 그가 1년에 한 번 고향 울주군 상동면 둔기리에서 마을잔치를 연다는 이야기 정도가 외부에 알려졌다. 지난 20년간 외부 노출도 거의 없었다. 그런 신 총괄회장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외부로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 약 7년 전이다. 신 총괄회장의 건강 이상설이 나오기 시작했던 것. 비슷한 시기 신 총괄회장의 건강 그리고 여자 문제와 관련한 진정서가 청와대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러면서 재계에서는 신 총괄회장이 알츠하이머 치매에 걸렸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롯데그룹은 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펄쩍 뛰었다. 건강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다. 신 총괄회장과 정기적 모임을 갖는 지인들도 치매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상황을 보면 신 총괄회장의 건강과 관련한 소문과 롯데그룹의 해명은 모두 맞는 얘기라고 할 수 있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인 상황이 비교적 좋았을 때만 지인들 앞에 나섰기 때문에 지인들은 건강한 모습만을 봤던 것으로 보인다.

롯데 측은 지난해 초 신 총괄회장이 신동주 전 부회장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에서 해임했을 때만 해도 신 총괄회장의 건강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신 총괄회장의 건강 이상설에 대해 극구 부인하던 한국 롯데그룹 측도 최근 이를 인정하는 분위기다. 그렇지 않으면 신동빈 회장이 신 총괄회장을 해임한 것이나 신 총괄회장이 장남의 손을 들어준 것을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롯데그룹 사정에 밝은 인사들은 당분간 롯데그룹 측이 신 총괄회장의 건강 문제를 빌미로 최근 몇 달의 결정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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