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인찍힌 ‘친일 기업’ 이미지에 전전긍긍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5.08.12 18:46
  • 호수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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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빈 회장 부자, 모두 일본 여성과 결혼…일본 국적 이용해 병역도 면제받아

롯데그룹 장·차남 간 경영권 분쟁은 롯데의 정체성 논란으로까지 비화됐다. 기업의 덩치는 일본보다 한국 쪽이 몇 배 더 크지만, 실상은 일본 기업이 아니냐는 것이 요지다. 국적 논란의 중심에는 롯데 특유의 폐쇄적 지배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현재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최정점에는 일본 롯데홀딩스와 광윤사가 자리하고 있다. 특히 광윤사는 직원이 단 3명이고, 자본금은 2000만 엔에 불과한 작은 회사다.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인 신동빈 한국 롯데그룹 회장이 각각 30%와 25%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대표이사는 신격호 총괄회장이 맡고 있다.

하지만 광윤사는 일본 롯데홀딩스의 주식 120만주(27.65%)를 보유하고 있다. 롯데홀딩스는 다시 호텔롯데를 통해 한국의 계열사를 거느리는 구조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부인 오고 마나미 씨(맨 오른쪽)는 한때 일본 황태자비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사진은 2007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중국 내 식음료 총괄 지주회사 출범식 모습. ⓒ 연합뉴스

귀족 집안 출신인 부인이 일본 인맥의 ‘핵’

이런 이유로 한국 롯데는 매년 천문학적인 돈을 일본 계열사에 배당해왔다. 재계 전문 사이트인 ‘재벌닷컴’에 따르면, 롯데홀딩스 등 16개 일본 계열사들이 지난 3년간 한국 법인으로부터 받은 배당금은 1397억8700만원에 이른다. 2013년 411억9200만원에서 지난해 564억7400만원으로 배당금 규모도 커지고 있다. 최근 벌어진 경영권 분쟁을 계기로 ‘롯데=일본 기업’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7월31일 공개한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과의 대화 녹취록은 여론을 더욱 싸늘하게 했다. 그는 시종일관 일본어로 아버지와 대화했다. 신 전 부회장은 동생 신동빈 회장을 일본 이름인 ‘아키오’로 불렀고, 신 총괄회장을 ‘오토상’이라고 지칭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신 전 부회장은 8월2일 방송 인터뷰를 통해 서툰 한국말로 사과했다. 신 전 부회장의 방송 인터뷰는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롯데 제품 불매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롯데그룹은 국적 논란을 적극적으로 진화하고 나섰다. 롯데그룹의 한 관계자는 “한국에서 번 돈은 한국 롯데의 사업을 위해 재투자한다”며 “일본 롯데에 지급하는 배당금 역시 340억원으로 전체 3000억원의 10분의 1 수준”이라고 해명했다. 신동빈 회장은 8월3일 입국하면서 “롯데는 한국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도 “기업의 국적을 따지는 것은 글로벌화 시대에서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오히려 이 같은 논란으로 본질이 흐려지지 않을까 우려를 표시했다. 박경서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원장(고려대 교수)은 “국내 기업 중에도 외국 투자 지분율이 높은 곳이 많다”며 “우리나라는 자유경제 체제이기 때문에 일본 기업이라고 해서 무조건 배척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데그룹을 둘러싼 싸늘한 시선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신동빈 회장과 장남인 신유열씨의 국적만 놓고 봐도 그렇다. 신 회장은 41세 때까지 일본 국적을 유지하다 뒤늦게 한국 국적을 얻었다. 외국 국적자라는 이유로 군대도 면제받았다. 장남 유열씨도 마찬가지다. 유열씨는 일본 국적자로 분류되면서 군대를 가지 않았다. 겉으로는 한국 기업을 주장하면서도 오너 일가는 일본 국적을 이유로 병역 의무조차 피해간 것이다. 이계옥 한양대 겸임교수는 “영국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를 포함해 왕실 남성 모두가 최전선에서 군 복무를 마쳤다”며 “신 회장과 자녀가 일본 국적을 이유로 군대에 다녀오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두 부자 모두 일본인 여성과 결혼한 것도 똑같다. 신 회장은 1985년 6월 도쿄에서 일본 화족(일본 제국주의 시절 귀족 가문을 일컫는 통칭) 출신인 오고 마나미와 결혼했다. 마나미는 일본 황족과 화족만 다닐 수 있는 가쿠슈인(學習院) 출신으로 한때 황태자비 물망에도 올랐던 인물이다.

두 사람은 10선 중의원 출신인 후쿠다 다케오 전 일본 총리의 중매로 결혼에 성공했다. 당시 결혼식에는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와 나카소네 야스히로 현직 총리, 재계 총리로 불리는 경단련의 아나야마 회장 등 정·재계 거물들이 대거 참석했다. 기시 전 총리는 아베 총리의 외조부다. 후쿠다 전 총리는 신 회장의 결혼식 주례까지 맡았다. 모두 신 회장의 일본 인맥으로 분류된다. 전직 언론인 정순태씨는 저서 <신격호의 비밀>에서 “신격호 총괄회장이 일본에서 성공한 데는 처가의 도움이 컸다. 처가에서 적지 않은 자금을 지원했다”고 측근의 말을 인용해 밝힌 바 있다. 신 총괄회장은 마나미를 며느리로 들이면서 일본 정·관·재계의 인맥을 더욱 공고히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유열씨도 올해 3월 컬럼비아 대학 동문인 일본인 여성과 결혼식을 올렸다.

흥미로운 사실은 마나미의 아버지가 일본 최대 건설회사 중 하나인 다이세이건설의 오고 요마사 부회장이라는 점이다. 다이세이건설은 미쓰비시, 히타치, 후지 등과 함께 대표적인 전범기업으로 분류되고 있다. 마나미 역시 13선 의원을 지낸 자민당의 이토 소이치로 전 관방장관의 비서로도 활동했다. 이토 소이치로는 1996년 6월 “종군 위안부는 일반적인 상행위에 불과했다”고 말한 ‘밝은일본·국회의원연맹’ 소속의 대표적 인사다.

친일 둘러싼 정체성 논란 당분간 계속될 듯

마나미의 시어머니이자, 신동빈 회장의 모친인 시게미쓰 하쓰코 역시 A급 전범인 ‘시게미쓰 마모루’의 외조카라는 주장이 있다. 하쓰코의 어머니는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윤봉길 의사의 폭탄 투척으로 한쪽 다리를 잃은 주중 일본 공사 시게미쓰 마모루의 여동생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암살>에도 시게미쓰 마모루가 등장한다. 미국 전함 미주리 호 위에서 의족을 하고 나와 항복 문서에 서명한 이가 바로 그다. 이런 롯데그룹의 지배구조와 오너 일가의 행태, 집안 내력 등으로 인해 롯데를 둘러싼 정체성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롯데 측은 “하쓰코 여사의 결혼 전 성은 ‘다케모리로 일본 외상 시게미쓰 마모루 집안과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신격호 회장과 결혼하면서 ‘시게미쓰’라는 성을 쓰게 됐다”며 “하쓰코 여사 쪽에도 직접 확인한 결과 시게미쓰 가문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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