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심 고취 위해 단체로 영화관 찾았다”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5.08.12 19:18
  • 호수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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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만 돌파 흥행 영화 <연평해전>, 단체관람 이어지며 논란

올여름, 흥행가도를 달린 한국 영화 중 하나는 <연평해전>이다. 8월3일을 기준으로 관객 600만명을 돌파한 <연평해전>은 2002년 6월 북방한계선(NLL) 남쪽 연평도 인근에서 대한민국 해군 함정과 북한 경비정 간에 발생한 해상 전투를 다뤘다. 제작 당시부터 정치색이 짙다는 논란이 있었지만, 개봉 이후 조국을 위해 자신의 책임을 다하던 젊은이들의 충성심과 전우애를 잘 그려낸 영화라는 또 다른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최근 다시 한 번 도마에 오르고 있다. 바로 ‘단체관람’이 그 이유다. 정치권을 비롯해 보수단체, 군부대, 학교, 관공서까지 <연평해전>을 단체로 관람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공짜 표’로 영화를 봤다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연평해전>이 달성한 600만 관객 수가 자발적으로 영화를 본 순수 관객의 수가 아니라는 지적이 제기된 것이다.

7월12일 을 상영하는 서울 강남의 한 영화관. ⓒ 연합뉴스

초·중·고교 단체관람에 학부모 반발도

<연평해전>은 6월24일 개봉했다. 개봉을 앞둔 23일부터 이병석 새누리당 의원과 신기남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공동 주최로 6월25일 국회 상영회가 열린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개봉일에는 한민구 국방부장관, 홍준표 경남도지사 등이 단체관람에 동참했다. 전경련 임직원들도 가세했고, ‘호국보훈의 달을 기리고 군인 정신을 기르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육군수도군단 100여 명의 군인들도 경기도 안양의 한 영화관을 찾아 단체로 영화를 관람했다.

최근에는 검찰청과 법원도 잇따라 단체관람에 나섰다. 대검찰청은 7월20일 오후 7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2층 대강당에서 관람 행사를 열었다. 김진태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찰 간부들과 직원 300여 명이 참석해 영화를 관람했는데, 이는 김 총장의 제안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대검 관계자는 “영화 관람을 하는 것에 강제성은 없었고, 원하는 사람만 보게 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법원도 7월23일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관람 행사를 가졌다. 법원행정처가 한 달에 한 번 공무원 복지로 시행하는 단체관람 대상 영화로 <연평해전>을 고른 것이다. 법원행정처는 행사 시작 전 단체관람 희망자를 파악해달라는 취지의 공문을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등법원, 법원도서관에 내려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의 단체관람이 새삼스럽게 문제로 떠오른 것은 학생들까지 학교에서 주최하는 단체관람에 참여한 것이 알려지면서다. 고 윤영하 소령의 모교인 인천 송도고등학교에서 시작된 학교 단체관람은 일부 고등학교와 중학교, 심지어는 초등학교에서도 추진됐다. 서울 강동구에 있는 오륜중학교는 ‘오후 수업 시간을 활용하여 학교 밖의 현장 수업을 통해 애국심 고취와 분단 상황의 어려움을 학생들이 직접 느낄 수 있도록 영화 관람을 하고자 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관람비 6000원은 학부모들이 부담해야 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해당 학교는 ‘메르스의 위험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고 폭염과 태풍에 안전에도 문제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7월14일로 예정돼 있던 영화 관람을 전격 취소했다.

밀양 상남초등학교 교직원과 학생들이 문화예술 체험학습으로 <연평해전> 관람을 택한 것을 두고 네티즌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한 네티즌은 “기사를 접하는 순간 27년 전 초등학교 때가 생각났다. 그때는 국가에서 애국과 반공을 강요했는데, 학교에서 보여준 반공 영화의 살해 장면이 떠올라 잠을 제대로 못 잘 정도였다”고 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1980년대만 해도 애국심을 정권 유지에 이용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 영화의 마케팅은 현 시대에는 조금 불편한 것이 사실”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실제로 <연평해전>을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는 사람들은 이런 단체관람 실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서울 시내 대다수 극장에서 이 영화는 막을 내려가고 있지만, 아직 상영이 끝나지 않은 영화관들에서 뒤늦게 <연평해전>을 찾는 관객들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8월6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한 극장을 방문한 최 아무개씨(62)는 “하도 이슈가 많이 되기에 궁금한 마음에 아내와 함께 보러 왔다”며 “여러 단체에서 자발적 의사로 영화를 보게 한 것은 상관없지만 학생들에게 단체로 영화를 보라고 하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인 것 같다”고 말했다.

8월4일 박승춘 국가보훈처장(가운데)이 조치원의 한 영화관에서 직원들과 함께 을 관람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람 이후 정치적 색채 띤 행동 주목돼

일각에서는 <연평해전>만 단체관람 행사를 이용해 정치적 스탠스를 강요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한다.

<명량>과 같은 대표적 한국 영화들을 비롯해, 정치적 해석이 가능한 1000만 돌파 영화 <변호인> 역시 국회의원들과 각종 단체가 단체관람을 하거나 무료 표를 배포한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 이야기를 모티브로 해 만든 영화인 <변호인>은 야당 국회의원들이 ‘친노’ 세력 결집의 촉매제로 활용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 영화업계 관계자는 “<변호인>의 경우에도 단체관람은 있었지만, 공무원이나 학생들에게 단체관람을 하게 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좋은 영화는 개인에 의해 선택되어야 하는 것이지 그 선택에 교육기관이나 관공서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는 입장을 밝혔다.

<연평해전>에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연평해전 이후에 한·일 월드컵 결승전 관람을 위해 일본을 방문한 장면도 삽입돼 있어 의도적인 정치적 색채를 담고 있다는 논란이 개봉 당시부터 제기됐었다. 그러나 영화를 관람한 후에 나온 일부 정치권 인사들의 언행들이 더 주목받으면서 이 영화는 감독의 제작 의도보다 훨씬 정치적인 영화가 되어버렸다는 평이 나온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당원들과 함께 이 영화를 관람한 다음 날인 6월25일 자신의 트위터에 “어제 당원 100명과 <연평해전> 단체관람. 대통령 한번 잘못 뽑으면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다음 대통령은 아예 NLL을 적에게 헌납하려 했었죠”라는 글을 남기면서 고인이 된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을 비난했다. 8월5일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방북을 위해 찾은 김포공항에서는 ‘엄마부대봉사단’ ‘나라지키기연합’ 등 보수단체가 주차장 입구를 점거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보수단체는 ‘김대중 연평해전 전사자 장례식에 불참, 머리 숙여 사죄하라’라는 푯말을 들고 “김정은에게 연평해전에 대한 사과를 받지 못할 것이라면 돌아오지 말라”며 항의 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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