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과의 대화] “작은딸이 날 사랑했다” 사이코패스의 전형
  • 배상훈│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프로파일러) (.)
  • 승인 2015.08.12 19:24
  • 호수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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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질 살해범, 성폭행 증거 나올 때마다 말 바꾸기 반성 없이 “나도 피해자” 황당 주장

2015년 1월13일 안산시 상록구에서 벌어진 인질극은 오전 9시 반에 시작돼 오후 2시 반에 종료됐다. 그 사이 안타깝게도 두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범인 김상훈은 별거 중인 부인을 찾아 전 남편의 집에 침입해 의붓딸 둘과 전 남편, 그리고 전 남편의 동거녀를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하다가 전 남편과 작은딸을 살해한 후 검거됐다. 인질 사건은 우리나라에서 그리 흔한 사건은 아니다. 그런 이유로 여러 면에서 우리 경찰 당국의 인질 사건에 대한 대응 체계가 미숙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인질 사건의 특성상 대응 여부에 따라 피해 규모가 예상 외로 커질 수도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만반의 대비가 필요한 것 또한 사실이다.

ⓒ 일러스트 오상민

이번 글에서 경찰의 인질 사건 대응에 대한 총체적인 부실을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굳이 그런 지적을 하지 않아도 대응 체계 자체가 매우 부실하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현실적인 대안이 중요하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인질 사건 초기에 좀 더 효과적인 대응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적인 ‘징후 분석’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부실한 대응 체계 속에서도 소수의 심리 요원(RISK 요원)을 통해 효과적인 대응책 마련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고 본다. 그 핵심은 범인에 대한 심리 분석과 연결돼 있다.

인질 살해범 김상훈은 검거 후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나오면서 “나도 피해자”라는 말을 하고 피해자 아들에게 폭언을 하는 등 반성의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김상훈을 면담한 프로파일러들은 그가 가진 교활성과 조작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자신이 분명 잔인하게 살인을 저질렀으면서도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모습을 보였다. 자신과 통화한 부인이 자신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지 않고 오히려 부추겨서 발생한 행위의 결과라고 강변한 것이다. 심각한 의처증을 드러낸 그는 범죄 행위에 대한 책임을 부인에게 전가했다. 아울러 기존의 폭력성(전과 기록)에 대해서도 일관되게 피해자들의 잘못으로 돌렸다. 자신의 폭력 행위 전부가 피해자인 상대방이 자신을 무시해서 벌어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강한 소유욕, 의처증과 아동학대로 나타나

전반적으로 책임감이 결여된 상태였다. 기생적인 생활 방식으로 약자들을 ‘등쳐먹는’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다. 일정한 직업이 없으면서 자신보다 경제력이 나은 여성을 골라 관계를 맺었다. 그러면서 일상에서는 자신의 힘과 권위를 과도하게 과시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거의 전적으로 ‘얇은 대인 관계’에 의한 것이었다. 신뢰와 믿음 등 인간관계의 핵심 덕목과는 무관한 기생 관계였던 셈이다. 그래서 자신의 삶을 경제적으로 지탱해준 여성에 대해 더욱더 심한 의처증을 보인 것이다.

이러한 점은 반사회적 인격장애(사이코패스·Psychopath)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특징들로 알려져 있다. 자신의 아픔에 대해서는 일방적으로 격정적인 감정 토로를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자신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상대의 절망적인 아픔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한다. 오히려 그러한 고통이 그들 스스로 자초한 것이고 그 과정에서 자신도 피해를 당했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행동 방식은 인질극 당시 행위에서도 특징적으로 나타났다. 이번 사건에서 서 겨우 살아남았던 큰딸의 진술에 의하면, 끔찍하게 살해당한 동생은 2년 전, 그리고 살해당하기 전에도 김상훈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증거도 발견됐다. 그런데도 김상훈은 이를 전적으로 부인했다. 이후 물적 증거를 들이밀자 말을 바꿔 부인에게 고통을 주기 위한 ‘자위행위’ 과정에서의 ‘사정’이라고 주장했다. 이 또한 전적으로 거짓이라는 게 곧바로 드러났다. 김상훈이 인질극 현장에서 삭제한 휴대전화 파일을 복구해 확보한 작은딸의 나체 사진을 들이밀자 김상훈은 마지못해 ‘성관계’ 자체는 인정하면서 이번에는 오히려 “작은딸이 날 사랑했다”는 식으로 진술을 바꿨다. 작은딸이 자신과의 성관계를 원해서 가진 것이지 성폭행은 절대 아니라는 주장이다.

김상훈은 증거가 나올 때마다 능수능란하게 말을 바꾸면서 결과적으로는 자신에게 책임이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자신의 소유 영역에서 벗어난 행동에 대해 처벌을 했을 뿐이라고 여겼을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이 성적으로 소유했던 둘째 딸을 살해한 것이다. 사이코패스의 경우 특징적으로 소유욕이 강하다. 이 소유욕이 성인 여성을 향한 경우 의처증으로, 미성년자인 경우 아동학대로 나타나기도 한다.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한 부인이 도망친 후 이혼을 요구하자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그래도 두 명은 살렸다” 경찰의 한심한 변명

사건 초기로 다시 돌아가 김상훈의 심리·행동 분석과 경찰의 인질 사건 대응을 되짚어보자. 인질 사건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초기 상황 파악과 현장 통제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의 경우 초기 상황 파악은 물론 현장 통제에서도 미흡함을 드러냈다. 초기 상황 파악은 범인과 인질의 상태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만약 범인의 심리 상태가 즉각적으로 폭력적인 행동을 개시할 것으로 파악된다면 주변의 인원 배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곧바로 현장 진입을 해야 한다. 미적거릴 시간적 여유가 없다. 인질의 안전이 매우 위급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사건의 경우 인질 대부분의 안전에 대한 정보 파악이 문제였다. 큰딸은 김상훈과의 전화통화에서 정보를 얻었으나 나머지는 생사 여부가 불투명했다. 특히 전 남편에 대한 정보는 상황이 종료된 이후에나 확보됐다. 작은딸에 대한 정보는 두 시간이 지난 후 확보됐는데 안타깝게도 이미 사망했을 것이라는 정보였다. 사실 이 부분이 필자가 인질협상팀의 미숙한 상황 판단에 대해 비판하는 지점이다. 초기에 인질의 안전에 대한 정보를 우선 확보했어야 했다. 만약 정보 확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됐다면 즉시 강제 진입에 나서야 했다. 결과적으로 김상훈은 두 사람을 이미 죽인 상태였고 나머지 인질로 몇 시간을 버틴 것이다.

두 사람을 살해한 김상훈 입장에서는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가 없었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욕까지 섞어가며 자신의 말만 늘어놓으면서 협상의 주도권을 내놓지 않으려 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인질범의 심리·행동 분석이 필요했다. 이러한 분석은 프로파일러가 현장에 없더라도 휴대전화를 통해서도 가능하다. 현재의 상황 정보를 프로파일러에게 전달해 그 정보를 바탕으로 내린 판단에 따라 신속히 행동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경찰 협상 담당자는 김상훈을 달래는 정도에 머물러 즉시 파악해야 할 인질의 안전에 대한 정보는 확보하지 못했다. 즉 초기 상황 파악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우를 범한 것이다.

인질 사건의 핵심은 인질의 안전에 있다. 만약 인질의 안전에 이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면 범인과의 협상은 무의미하다. 좀 과도한 지적일 수 있지만, 이 사건에서 경찰 협상 담당자는 협상을 위한 협상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는 상황이 종료된 후 여실히 드러났다. 경찰의 항변은 “두 명은 구하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다. 나머지 두 명이 죽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런데 이 말에는 함정이 있다. 두 명이 이미 죽었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말이다. 그런데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두 명의 생사에 대한 정보를 완전히 확보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이런 말이 나온 것을 필자는 이해하기 어렵다. 정확히 말하면 초기부터 두 명의 생사는 몰랐고 어찌어찌하다가 두 명은 어쩔 수 없이 죽었지만 그나마 두 명은 살렸다고 말하는 것이 솔직한 답변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적절한 상황 대처가 아니라고 본다. 생사 파악이 안 된다면 초기에 김상훈을 사살해서라도 강제 진입을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질 살인 사건 피의자 김상훈이 4월15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경기도 안산시 단원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인질범과 부인 통화 못하게 했어야

더 큰 문제는 현장 통제에 있었다. 현장 상황이 고스란히 범인에게 전달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경찰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었다면, TV 케이블을 차단하거나 전기를 끊을 생각은 왜 하지 않았을까. 또 휴대전화 중계기를 차단하기라도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몇 블록 떨어진 건물 옥상의 카메라 기자를 끌어내는 노력이라도 했어야 했다. 그 모든 것을 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인질 협상을 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김상훈의 경우 초기부터 협상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이미 자기 부인의 전 남편을 살해한 이후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경찰 협상 담당자는 심리·행동 분석을 통해 이러한 심리 변화 부분을 인지했어야 했다. 그는 왜 부인에게 욕을 과도하게 했을까. 분노가 특정한 사람에게 향하면서 관련된 다른 사람은 언급하지 않은 이유를 냉정히 따져 판단했어야 했다. 그런 판단을 하지 않은 채 단지 계속 욕을 하고 있는 인질범을 달래기만 한 것이 인질 사건 대응을 실패로 만들었다고 본다. 물론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경찰 당국이나 협상 담당자는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나마 두 명을 살린 것에 방점을 찍고 있다. 필자는 그러한 인식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특히 사건 초기 경찰대에서 담당자가 오지 않고 있을 때 협상을 담당했던 경찰이 김상훈과 부인을 통화하게 한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행동이었다. 물론 김상훈이 “죽는 꼴 보고 싶나”라며 협박을 했지만, 그래도 절대로 전화 통화를 하게 해서는 안 됐다. 그리고 이미 그때는 살인을 한 이후였기 때문에 심리·행동 분석에서도 징후를 나타냈을 것이다. 그 징후를 파악하지 못한 게 뼈아픈 셈이다.

인질 사건은 시간 싸움이다. 초기에 주도권을 선점하는 쪽이 그 이후에도 상황을 주도한다. 그래서 초기의 심리·행동 분석이 인질 사건에서는 가장 중요하다. 인질범의 심리·행동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은 그 이후의 일이다. 그런데도 아직 기초적인 인질 사건 매뉴얼도 안정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다시 한 번 비명에 간 두 사람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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