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 명분 집착할 때 동생은 실리 챙겼다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5.08.18 10:07
  • 호수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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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주·동빈 형제 모두 아버지 건강 상태 교묘히 이용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 형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몇 개월 전부터 한국과 일본의 롯데그룹을 차지하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해온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지분 구조상 한국 롯데를 지배하는 일본 롯데홀딩스 장악에 나선 것이나, 한·일 롯데 임원진에게 연판장을 돌려 세 규합을 했던 것은 그가 경영권 분쟁을 예측하고 사전 정지 작업을 벌였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작업은 신 회장이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됐다고 판단하고, 이후에 있을 형과의 일전을 미리 준비한 것 같은 냄새를 풍긴다. 형이 아버지를 내세워 경영권 분쟁에서 이기기 위한 명분을 찾는 동안 동생은 발 빠르게 실리를 챙긴 셈이다. 신 회장 측은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아버지를 내세워 여론전을 시도하는 것은 아버지의 건강 악화를 악용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신 회장 역시 아버지의 건강 이상을 이용해 발 빠르게 경영권 장악에 나섰다는 점에서 형제가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의 총성이 본격적으로 울린 것은 지난 7월27일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장남 신 전 부회장, 장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신동인 전 롯데 자이언츠 구단주 대행 등을 이끌고 일본으로 건너가 신동빈 회장을 비롯한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 6명을 해임하면서부터다. 이후 신 전 부회장은 한국으로 들어와 신 총괄회장의 육성 등을 공개하는 폭로전을 통해 신 회장의 롯데그룹 장악을 무력화하려 했다. 신 총괄회장의 육성이 방송을 통해 외부로 공개된 것은 처음 있는 일로 아버지를 등에 업고 여론전을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신 회장이 장악한 롯데 측은 그동안 부인해왔던 신 총괄회장의 건강 이상을 간접적으로 시인하며, 신 총괄회장의 판단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신 부회장 측이 아버지의 건강 이상을 악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지난 몇 개월간 한·일 롯데의 지분이나 계열사 주요 보직 변화를 보면 신 회장 역시 신 총괄회장의 건강이 악화된 틈을 타 치밀하게 작업을 벌여왔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일단 신 회장은 건강이 악화된 신 총괄회장에게 형이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기보다는 지배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들로 대응해나갔다. 대표적 사례가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L 투자회사를 장악한 것이다.

롯데그룹 정책본부는 8월11일 신동빈 회장의 대국민 사과에 앞서 정치권과 정부 감독 당국 등에 ‘롯데 그룹 상황 설명 자료’라는 제목의 문서를 제출했다. 13일 공개된 이 문서에서 롯데그룹은, 호텔롯데의 지분 72.6%를 비롯해 주요 계열사들의 지분을 나눠 갖고 있는 일본 L 투자회사 12개의 지분 100%를 롯데홀딩스가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일본 롯데그룹의 지주회사인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 28%를 보유하고 있는 광윤사에 대해 “일본에 소재한 포장지 회사이며, 신격호 총괄회장 가족 4명이 지분의 99%를 보유한 가족기업”이라고 설명했다.

신 회장은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되기 전인 지난 6월30일 12개 L 투자회사의 전체 등기에 대표로 이름을 올렸다. 일본 롯데홀딩스를 장악하게 되면 한국과 일본의 롯데 계열사를 사실상 지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 회장은 여론전보다는 실리를 취하는 전략을 펼친 것이다. 신 회장이 대표이사에 취임하는 과정에서 신 총괄회장은 12개의 L 투자회사 중 9곳에서 해임됐다. 나머지 3곳은 신 회장과 신 총괄회장의 공동대표이사 체제다. 이러한 전략은 이미 지난 1월8일 신 전 부회장을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에서 해임한 후부터 차근차근 진행되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은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과 일본 롯데에 있는 임직원들을 따로 불러모아 내부 단속까지 끝냈다.

신 회장은 한국과 일본 롯데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력을 키워놓은 후 한국에 들어와 공식 대응에 나섰다. 특히 형이 아버지를 내세워서 자신을 공격해온 것과 관련해, 그동안 롯데 측이 극구 부인해왔던 신 총괄회장의 건강 이상설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롯데그룹은 국회에 제출한 ‘상황 설명 자료’에서도 신 총괄회장의 건강에 대해 “만 94세 고령으로 인하여 기억력·판단력이 떨어져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그간 신 총괄회장의 건강에 문제가 없었다고 한 것과 대조적이다.

재계에서는 이번 형제간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두 사람의 경영 스타일이 잘 드러나고 있다고 분석한다. 한 대기업 임원은 “그동안 두 사람의 스타일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보도를 통해서만 보아왔는데 이번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그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며 “신 회장의 경우 생각 이상으로 치밀한 면이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두 사람 모두 아버지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한 사람은 이에 대비해 치밀하게 준비를 해온 반면, 다른 한 사람은 상황을 뒤집을 만한 별다른 수가 없어 아버지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봤을 때 신동주 전 부회장이 주총에서 이길 가능성은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신 전 부회장은 주총 이후 일본에서 법적 대응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롯데 측은 “신 전 부회장의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 해임이나 신 회장의 대표이사 취임은 모두 합법적으로 이뤄진 일”이라며 “법적 대응이야 그쪽에서 알아서 하는 것이지만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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