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총리 귀하
  • 윤길주 편집국장 (ykj77@sisapress.com)
  • 승인 2015.08.19 15:05
  • 호수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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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대한민국은 더웠습니다. 언론 보도를 보니 일본 또한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렸다고 하더군요. 특히 귀하에겐 이번 여름이 무척 길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2015년 8월15일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중국은 전승 기념일이라 하고 한국은 광복절이라고 합니다. 반면 귀국 일본엔 패전일입니다. 1945년 이날 귀하의 나라에서 신으로 받들던 이른바 ‘천황 폐하’가 신이 아닌, 인간의 목소리로 항복 선언을 한 것입니다. 이로써 처참했던 전쟁은 끝나고 70년이 흘렀습니다.

 올해 8월15일을 맞아 여러 나라에서 행사가 열렸습니다. 귀하 또한 패전국 국정 수반으로서 종전 70주년 담화를 준비하느라 비지땀을 흘렸을 것입니다. 한국과 중국, 귀국의 양식 있는 국민이 ‘식민 지배’ ‘침략’ ‘반성’ ‘사죄’ 등 무라야마 담화의 4대 키워드를 담아야 한다고 요구했을 때 불쾌했을 것입니다. 진심이 빠진 ‘맹탕 사죄’를 한 데서 귀하의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이럴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엎드려 절 받을 필요가 있나 싶었습니다. 고개를 숙이는 척하면서 속으론 “두고 보자”며 이를 갈게 빤한 탓입니다. 사상은 행동을 예언케 하는데 귀하의 사상이 바뀔 것이라곤 기대조차 안 한 겁니다. 

지지율이 뚝뚝 떨어지는 것도 귀하를 무덥게 했을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 안보법제를 밀어붙이고 있는데 친애하는 귀국 국민이 몰라주니 속상할 겁니다. 최근 여론조사(마이니치신문, 8~9일)에 따르면 귀하의 지지율은 32%로 나타났습니다. 한때 50~60%를 넘나들던 게 급락해 당황스러울 겁니다. 귀하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는 9월 참의원에서 전쟁을 가능케 하는 안보법제를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국가 사이의 침략은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주장합니다. 상대 국가의 동의 없이 쳐들어가 총칼로 민간인을 살육하고, 그 땅을 점령하면 침략일진대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게 어디서 가져다붙인 궤변인지 황당할 따름입니다. 이는 귀하가 뼛속까지 군국주의에 물들었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입니다.

 귀하가 폭주하는 까닭을 생각해봤습니다. ‘일본=패전국’이라는 걸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그릇된 신념에 빠져 있는 게 근본 원인으로 보입니다. 귀하의 외조부는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입니다. 그는 2차대전 A급 전범이었으나 미국의 배려로 겨우 사형을 면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도 일본의 침략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되레 평화헌법을 개정해 전

쟁을 할 수 있는 보통 국가로 가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았습니다. 외손자인 귀하의 지금 모습이 그와 판박이입니다. 귀하가 침략을 침략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것은 ‘전범의 후손’이라는 걸 감추기 위한 의도로 보입니다. 아이들이 배우는 역사 교과서를 뜯어고쳐 침략을 미화하고 있는 게 그 방증입니다.

아무리 지우려 해도 역사적 진실은 면면히 후세에 이어집니다. 귀하가 군국주의를 일본 국민에게 주입하면 할수록 귀국 국민이 불행해집니다. 귀하의 극우 패권주의가 얼마나 위험한 불장난 같은 것인지 종전 70주년을 맞아 깨닫기 바랍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 동시대를 사는 인류의 일원으로서 간곡히 충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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