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조직지도부 엘리트 등에 올라타다
  • 감명국 기자·이승열│스웨덴 안보개발정책연구소 객 (.)
  • 승인 2015.08.19 15:35
  • 호수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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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극심했던 북한 권력 변화…핵심 실세 줄줄이 숙청·처형

지난 7월14일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국정원이 대외비 문건을 제시했다. 김정은 공식 집권 이후 주요 간부들의 교체 실태를 분석한 결과였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이 집권한 지 4년째를 맞고 있다. 리영호·장성택·현영철 등 핵심 실세들이 줄줄이 처형 또는 숙청됐다. 최근에는 최영건 내각 부총리도 지난 5월 이미 처형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권력의 부침은 극심하다. 특히 당보다는 군부 쪽이 더 심하다. 8월4일에는 ‘지뢰 도발’을 감행하며 다시 한반도를 긴장 국면으로 몰아넣었다. 일각에서는 이를 김정은 권력 기반이 불안정한 증거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시사저널은 국회 입법조사처 외교안보팀 조사관으로 있는 이승열 스웨덴 안보개발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과 함께 2010년 김정은이 후계자로 공식 등장한 직후부터 지금까지 지난 5년간 권력 엘리트의 변화를 분석했다. 여기에는 하나의 공식이 있었다. 이른바 김정은식 권력 기반 구축 공식이다.

김정은 정권의 권력 엘리트 변화는 자신이 후계자로 공식화되던 2010년(왼쪽)과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으로 본격적인 권력행사를 시작한 2012년(가운데), 그리고 최근의 시점(오른쪽) 등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 연합뉴스

2012년 이후 3년 동안 처형된 엘리트 70여 명

국정원이 7월14일 국회 정보위에 제시한 대외비 문건 자료를 보면, 김정은 체제의 당과 군 고위 간부들의 인사 패턴을 잘 알 수 있다. 즉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은 당에 대한 인사는 20~30% 수준으로 최소화해 당 중심 통치를 위한 조직의 안정성을 꾀하고 있다. 반면 군은 40% 이상 대폭 교체하며 끊임없이 지휘부 교체를 단행하고 있다. 아버지 김정일 시대에 걸쳐 ‘선군정치’로 인해 비대해진 군 간부의 위상과 고령화 탈피를 위한 군부 권력 엘리트 교체 작업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 시대’가 등장한 이후 지금까지 북한은 김일성·김정일 때와는 다른 몇 가지 변화가 눈에 띄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뚜렷한 변화는 북한 권력 엘리트의 잦은 교체다. 1950년대 해방 공간에서 여러 지도자들이 각축했던 김일성 시대나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면서 사회적 혼란 속에서 등장했던 김정일 시대에도 권력 형성 초기 엘리트 변화는 권력 공고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통치 행위였다. 하지만 3대 세습을 통해 집권한 김정은은 단순한 권력 공고화 차원을 넘어서 공포 정치 수준의 엘리트 숙청을 단행하고 있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2013년 12월12일 ‘백두혈통’의 후견인인 고모부 장성택을 숙청할 때도 김정은식 공포 정치에 대한 논란이 거세게 일어났지만, 대체적인 시각은 아버지(김정일) 시대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자신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려는 김정은의 의지로 해석됐다. 그러나 본격적 집권 시점인 2012년 이후 3년 동안 북한에서 처형된 고위 엘리트 숫자가 70여 명에 이른다. 이는 김정일이 김일성 사망으로 1994년 집권한 이후 초기 3년 동안 숙청한 인사의 10배에 달한다. 단순히 김정은이 숙청 작업을 자신의 권력 강화 차원에서 단행하고 있다고만 치부하기에는 매우 이례적인 권력 운용이라고 볼 수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권력 엘리트 정책의 특징과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서는 크게 세 가지 시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3남 김정은을 후계자로 공식화한 2010년 9월28일 제3차 당대표자대회 시점이다. 두 번째는 김정일이 사망한 직후 본격적으로 김정은의 시대를 열었던 2012년 초 시점이다. 그리고 숱한 피의 숙청이 거듭되면서 구축된 2015년 8월 현재의 시점이다. 특히 향후 김정은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아버지에 의해 구축된 2010년 9월 권력 엘리트 면면과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이후 시작된 김정은의 권력 엘리트 정책의 변화를 비교해 어떤 특징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앞으로 예상되는 김정은의 권력 엘리트 운용을 전망해볼 수 있는 것이다.

김정일의 구상, 당·군 엘리트의 충성 경쟁

2010년 9월28일 제3차 당대표자대회는 김정은을 김정일의 후계자로 공식화한 것 못지않게 김정은 체제를 보좌할 미래 권력 엘리트 구조를 새롭게 재편했다는 의미가 있다. 이때 북한 엘리트 구조 변화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 김정일 중심의 단일 엘리트 구조가 깨지고 당·군 간 균형과 견제가 가능한 엘리트 경쟁 구조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김정일은 크게 두 그룹으로 엘리트 구조를 분화시켰다.

첫째, 장성택 당 행정부장을 중심으로 당과 공안기능을 담당하는 ‘체제 보위 엘리트(regime security elite)’들이 폭넓게 포진했다. 대다수가 70대 이상인 초(超)고령자들이 모여 있는 정치국 위원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젊은 50~60대의 실세 엘리트들이 정치국 후보위원, 비서국, 당 중앙군사위원회 내에 집결되었다. 둘째, 리영호 당시 총참모장을 중심으로 야전군 출신인 ‘신군부 엘리트(new military elite)’를 당의 의사결정 기구인 당 중앙군사위원회에 집결시켰다. <표 1>은 3차 당대표자대회 이후 당 중앙위원회 엘리트 구조다.

김정은 체제를 준비하기 위한 신진 파워엘리트 구성에 맞게 절대 다수가 새롭게 선출됐다. 당 중앙위 전문 부서 부장(14명 중 2명 교체)들만 제외하고 당 정치국 32명 중 29명이 바뀌었다. 당 비서국 또한 11명 중 8명, 당 중앙군사위원회는 19명 중 16명이 새롭게 선출됐다. 당 중앙위원 229명(정위원 124명, 후보위원 105명) 중 80%(182명)가 신규로 선출됐다. 김정일이 북한 엘리트 구조를 분화시킨 것은 단일 엘리트 구조보다는 권력 엘리트 간에 역할을 분산시켜 상호 경쟁시키는 것이 향후 김정은의 권력 공고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막내아들 김정은의 백두혈통 후견인으로서 장성택의 정치적 위치를 만들어줄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김정일은 이례적으로 2010년 6월 최고인민회의 제12기 3차 회의를 열어 장성택 당 행정부장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했다. 그리고 장성택의 정적으로 알려진 리제강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을 닷새 전에 교통사고를 위장해 숙청했다. 또한 당 행정부가 국가안전보위부와 함께 인민보안부까지 통제할 수 있도록 제도화함으로써 당 행정부장인 장성택의 입지를 강화했다.

한편으로는 김정일이 장성택에게 모든 것을 맡기지는 않았다. 백두혈통 후견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군부를 활용했다. 리영호에게 과거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의 역할을 부여했다. 김정일은 리영호에게 군부의 리더로서 장성택의 독주를 견제하고, 군부의 충성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부여했다. 김정일은 리영호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정치군인 대신 총참모장 지휘계통에 있는 야전군 지휘관들을 당 중앙군사위원회에 대거 임명했다. 총참모장의 직계에 해당하는 최부일(부총참모장), 김명국(작전국장), 정명도(해군사령관), 리병철(공군사령관), 최상려(미사일지도국장), 최경성(11군단장) 등이다. 리영호 등 한국전쟁 전후 세대로 군부의 세대교체를 단행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김정일은 장성택과 리영호의 충성 경쟁을 통해 김정은 권력의 안정을 도모했다.

조직지도부 중심 엘리트 지배 연합 등장

2011년 12월28일 김정일의 영결식이 끝나고, 김정은이 12월30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추대되면서 공식적으로 ‘김정은 시대’가 시작됐다. 2012년 2월15일 김정은은 당 중앙군사위원회와 국방위원회 공동으로 김정각·김영철 등 장성 23명에 대한 첫 인사를 단행했다. 그러나 4월 태양절을 앞두고 발사한 장거리 로켓은 발사 2분 만에 공중 폭발로 실패했고, 김정은 정권의 첫 북·미 회담인 ‘2·29 합의’도 아무런 성과 없이 무산되었다. 군부에 대한 통제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김정은은 장성택·김경희 등 백두혈통 후견 세력을 전면에 내세워 군에 대한 당의 통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12년 4월11일 제4차 당대표자대회와 4월13일 최고인민회의에서 근로단체 비서인 최룡해가 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총정치국장,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정치국 후보위원이었던 장성택이 정치국 위원으로 승진했으며, 장성택의 당 행정부가 관할하는 국가안전보위부장에 김원홍 총정치국 부국장이 임명되었다. 당 행정부가 관할하는 인민보안부의 리명수 부장과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그리고 최룡해 총정치국장이 국방위원회 위원으로 새롭게 임명됐다. <표 2>는 제4차 당대표자대회와 최고인민회의에서 새롭게 임명된 엘리트들이다. 당 엘리트의 승진과 달리 군 엘리트들은 숙청과 좌천의 대상이 되었다(41쪽 딸린 기사 참조). 특히 군부의 최고 실세였던 리영호 총참모장은 7월15일 정치국 회의에서 김정은에 의해 모든 직책을 박탈당했다.

장성택에게 집중된 경제 권력은 자연스럽게 이권 분배에서 소외된 ‘신실세’ 최룡해·김원홍 등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그동안 당 행정부에 의해 소외되었던 조직지도부의 조직적 저항에도 부딪히게 되었다. 2013년 11월30일 삼지연 비밀 회동에는 김정은을 비롯해 최룡해 총정치국장과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그리고 조직지도부의 조연준 제1부부장과 황병서 부부장 등이 모여 새로운 엘리트 지배 연합을 구축해 장성택 숙청을 결정했다. 결국 2013년 12월8일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반당·반혁명 종파행위’로 낙인찍혀 회의장에서 끌려나간 지 나흘 만에 장성택은 형법 제60조 ‘국가 전복 음모행위’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장성택 숙청 이후 2013년 12월17일 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 2주기 추모대회’는 북한의 변화된 권력 지형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여기에서 김정은의 왼쪽 옆자리에 앉은 최룡해가 장성택 숙청 이후 북한의 권력 2인자로 자리매김했음이 확인됐다. 장성택 숙청을 주도했던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과 조연준 조직지도부 1부부장, 황병서 부부장이 권력 주도 세력으로 전면에 등장했다. 그러나 최룡해가 2014년 1~2월 사이 현지지도 수행 횟수에서 조직지도부 황병서 부부장과 총참모장 리영길에 밀려나기 시작했고, 결국 총정치국장에서 해임됐다. 대신 그 자리엔 황병서가 전격적으로 임명되었다. 황병서의 급부상은 조직지도부가 북한 권력의 중심에 다시 등장했음을 의미했다.

김정은은 아버지에게 배운 대로 한 명의 ‘2인자’를 용인하지 않았다. 2014년 9월24일, 숙청된 장성택이 맡고 있었던 국가체육지도위원장에 근로단체 비서로 좌천된 최룡해를 다시 불러들였다. 최룡해의 위상이 새롭게 조명된 것은 지난해 10월4일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때 황병서 총정치국장, 김양건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와 함께 방한한 이후였다. 지난해 10월29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평양 ‘5월1일 경기장’ 준공식 소식을 전하면서 최룡해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이며 당 중앙위원회 비서인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이라고 소개했다. 최룡해는 또한 그해 11월18일 김정은의 특사 자격으로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예방할 만큼 정치적 위상이 살아 있음을 과시했다.

김정은 시대 북한 권력 엘리트의 생존 경쟁은 김정은 유일 영도 체제 강화를 명분으로 내건 조직지도부의 승리로 막을 내릴 전망이다. 조직지도부는 오는 10월10일 조선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조직지도부 중심의 조선노동당 영도 체제를 확립해 김정은 시대의 권력 구조를 완성하고, 명실공히 김정일 사후 북한 내부 엘리트 권력투쟁에서 조직지도부의 최종 승리를 선언하려고 할 것이다. 장성택 숙청 이후 조직지도부는 군부와 장성택 잔당 세력에 대한 숙청을 통해 김정은의 공포 정치를 기획하고 있다. 조직지도부 조연준 제1부부장, 김경옥 제1부부장을 비롯해 조직지도부 출신인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김정은의 우상화를 주도하는 리재일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등이 권력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당 창건일, 조직지도부의 승리자 대회 전망

김정은 체제의 지속성 여부는 이제부터가 관건이다. 과연 김정은이 조직지도부를 단일 엘리트 체계로 확립하고 난 후 김정은 유일 영도 체제를 어떻게 확립해나갈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과거 김정일의 경우, 후계 체제 구축 기간에는 조직지도부를 중심으로 조선노동당의 영도 체제를 후계자의 유일 지도 체제와 동일시하며 자신의 권력 기반을 굳건히 했으나, 최고 지도자가 된 이후에는 철저히 ‘디바이드 앤 룰(divide & rule)’에 따라 엘리트 간 상호 경쟁을 통해 충성을 유도했다. 김정일이 지난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대회에서도 당과 군의 충성 경쟁 구도를 만들어주었으나, 김정은은 집권 2년 만에 그 구도를 완전히 허물었고 3년 차를 맞는 지금 조직지도부 중심의 단일 엘리트 구조에 올라탔다. 과연 김정은의 도박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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