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에 숙청 피비린내 가실 날 없다
  • 감명국 기자·이승열│스웨덴 안보개발정책연구소 객 (.)
  • 승인 2015.08.19 15:38
  • 호수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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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핵심 총참모장·인민무력부장·작전국장 매년 갈아치워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이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권력을 장악한 후 북한 군부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그야말로 좌천과 숙청, 처형이 일상사가 됐다. 2012년 4월11일 제4차 당대표자대회와 최고인민회의에서 조선노동당과 군부의 운명은 극명하게 갈렸다. 당 엘리트의 승진과 달리 군 엘리트들은 김정은에 의해 된서리를 맞았다. 특히 군부의 최고 실세였던 리영호 총참모장은 7월15일 정치국 회의에서 김정은에 의해 모든 직책을 빼앗겼다. 아버지 시대 ‘선군정치’로 비대해진 군부에 대한 통제 필요성에 따른 것이다. 김정은은 장성택·김경희 등 백두혈통 후견 세력을 전면에 내세워 군에 대한 당의 통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김일성 주석 사망 21주기인 7월8일 0시 인민군 간부들을 대동하고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 ⓒ 연합뉴스

장성택은 군부 소유 무역회사였던 ‘승리무역총회사’를 자신이 부위원장으로 있는 국방위원회 소속으로 바꾸고, 54부라는 명칭으로 당 행정부에 외화를 공급하는 자금줄로 삼았다. 2013년 초부터 기존 경제특구 이외에 중앙급(13개 직할시·도)과 지방급(220개 시·군·구)에까지 경제특구를 확대했다. 장성택의 특구 위주 경제정책은 지방 ‘돈주’(북한 신흥 부자를 일컫는 용어)들의 돈의 흐름을 특구로 전환하려는 것으로 군부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의 핵심 이익을 침해당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군부는 김정은의 서슬 퍼런 기세에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총정치국장 임명이 유력했던 김정각은 인민무력부장으로 좌천됐고,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이 국방위원에서 배제되면서 숙청되었다. 김정은은 리영호 총참모장에 대한 숙청뿐만 아니라, 리영호 후임으로 총참모장에 임명된 현영철을 임명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차수에서 대장으로 강등시켰다. 또 군부의 대표적 강경파인 김영철 정찰총국장도 대장에서 2계급이나 강등되는 수모를 겪었다. 김정각 인민무력부장은 임명 7개월 만에 해임됐다.

3차 핵실험 후 군부 인사 줄줄이 좌천

군부 권력의 핵심 리영호의 숙청은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대회에서 당·군 엘리트의 충성 경쟁을 통해 김정은 권력 기반 안정화를 꾀했던 김정일 작품의 한 축이 무너진 것이다. 신군부의 리더였던 리영호가 숙청되면서 장성택의 당 행정부로 힘의 추가 급속히 기울어졌다. 리영호 숙청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역권(와크권)을 둘러싼 양측의 갈등 때문이다. 2012년 김정은의 4·6 담화를 기반으로 당 행정부를 비롯한 당 엘리트는 군에 집중된 무역권을 축소하고, 군 소유의 무역회사에 대한 통제권을 내각으로 이전시켜 당 행정부와 당 엘리트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고자 했다. 그러나 군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었던 리영호의 입장에서 군 소유 무역회사 등을 내각으로 이전하는 문제를 순순히 따를 수 없었다. 그 결과 당 행정부의 장성택, 정치국의 김경희, 총정치국의 최룡해, 국가안전보위부의 김원홍 등이 엘리트 지배 연합을 구축해 리영호를 숙청했다.

수세에 몰린 군부는 김정일 선군 혁명을 명분으로 또다시 무력 도발을 시도했다. 2012년 12월12일, 그해 4월에 실패했던 장거리 로켓을 다시 발사해 성공시켰고, 2013년 2월12일 3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군부는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2087호, 2094호)와 남한의 키리졸브 훈련을 침략전쟁으로 규정하고 정전협정과 불가침조약 무효화 선언, 개성공단 폐쇄 등 무력 도발 수위를 높였다. 그러나 군부의 무력 도발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했다. 중국 시진핑 정권 출범을 앞두고 감행한 3차 핵실험은 북·중 관계를 극도로 악화시켰다. 이는 그해 5월의 한·미 정상회담과 6월 한·중 정상회담, 그리고 7월 미·중 정상회담 등으로 이어지며 북한의 대외적 고립을 심화시켰다. 김정은은 최룡해 총정치국장을 특사로 보내 시진핑을 예방했지만 냉담한 반응뿐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조직지도부의 경제권 확대 의도

결국 2012년 12월에서 이듬해 4월까지 단행된 군부의 무력 도발은 군부 숙청을 자초한 셈이 됐다. 김정은은 또다시 인민무력부장과 총참모장, 작전국장 등 군 수뇌부에 대한 대대적인 경질 인사를 단행했다. 현영철 총참모장이 김격식으로 교체되었고, 인민무력부장은 김격식에서 5군단장 출신 장정남으로, 총참모부 작전국장은 리영길로 교체되었다. 도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국제적 고립만 초래한 군부에 대한 문책성 인사였다.

2012년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3년 동안 군부의 4대 핵심 요직인 총정치국장, 총참모장, 인민무력부장, 총참모부 작전국장 가운데 총정치국장을 제외한 세 자리는 적게는 4회에서 많게는 6회씩 교체되는 등 군부 엘리트 집단의 불안정성이 노출되었다. 총참모장의 경우, 리영호(2009)→현영철(2012. 7)→김격식(2013. 5)→리영길(2013. 8) 순으로 바뀌었으며, 인민무력부장은 김영춘(2009)→김정각(2012. 4)→김격식(2012. 12)→장정남(2013. 5)→현영철(2014. 6)→박영식(2015.6) 순으로 교체됐다. 작전국장은 김명국→최부일(2012. 4)→리영길(2013. 4)→변인선(2013. 8)→김춘삼(2015. 1)→노광철(2015. 5) 등이 맡았다. 특히 인민무력부장의 재임 기간은 평균 8개월에 불과했다.

장성택 숙청 이후 조직지도부는 군부와 장성택 잔당 세력에 대한 숙청을 통해 김정은의 공포 정치를 기획하고 있다. 2012년 7월 리영호와 2013년 12월 장성택 처형으로 본격화된 김정은의 공포 정치로 숙청된 이는 당·정·군 고위 간부 15명을 포함해 70여 명에 이른다. 70여 명 중 60여 명은 당내에 남아 있었던 장성택 관련 엘리트들이며, 10여 명은 군 수뇌부에 대한 숙청 대상이었다. 조직지도부가 군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는 가장 큰 이유는 조선인민군이 당의 군대라는 조직지도부 중심의 조선노동당 영도 체제를 구축하려는 것이며, 특히 군에 집중된 경제권 재편을 통해 조직지도부의 경제권을 확대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이다. 현영철 후임으로 임명된 박영식은 황병서의 총정치국에서 조직부국장을 맡고 있던 정치군인이다. 인민군의 후방 사업을 맡고 있는 인민무력부의 수장을 야전군 출신이 아닌 총정치국 출신의 정치군인이 맡은 것은 이례적인 현상으로 군부의 경제권을 장악하려는 조직지도부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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