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 도발’ 결재자 김정은의 노림수
  • 고유환│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 승인 2015.08.19 15:39
  • 호수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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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체제 불안정성 부각…박 대통령의 ‘DMZ생태평화공원 조성 사업’ 거부 뜻도

8월4일 북한이 비무장지대(DMZ) 남측 지역에 매설한 지뢰가 폭발해 우리 측 군인 2명이 발목이 잘리는 등 큰 부상을 입었다. 30여 년 만에 북한의 지뢰 도발이 재연됐다. 정전체제가 60년 이상 지속돼 전쟁이 끝난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엄연히 남과 북은 지금도 전쟁 중이고 어떤 돌발변수가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이 도처에 널려 있다. 광복 70주년, 분단 70년의 의미를 되새기는 8·15 광복절을 앞두고 야만적 냉전 시대에나 있을 법한 지뢰 도발로 남북 관계 경색 국면이 상당 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바로 다음 날 이어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방북 기간에도 당초 예상과 달리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과의 면담이 불발되면서, 북한이 의도적으로 향후 남북 관계를 긴장 국면으로 몰고 가려는 게 아닌지 의심되고 있다.

8월9일 경기도 파주 비무장지대 남측의 추진철책 출입문 지뢰 폭발 현장에서 군 관계자가 현장점검을 하고 있다. ⓒ AP 연합

높은 수준의 북한 지휘체계 개입했을 것

이번 지뢰 폭발 사고는 매설 지점이 남측이 설치한 추진철책 출입문이란 점에서 북한이 의도를 가지고 도발을 준비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북측이 지뢰 도발을 감행했다면 ‘저강도 도발’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연이은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실험으로 국제사회로부터 제재와 압력을 받고 있다. 추가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실험과 같은 고강도 도발이 어려운 조건에서, 저강도 도발을 감행해 정전체제의 불안정성을 부각하려는 의도가 내포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군사분계선(MDL) 남측 비무장지대에 침투한 북한군이 추진철책 문 주변에 목함지뢰를 설치하고 우리 군의 부상을 유발함으로써 군사분계선 일대가 매우 불안정한 ‘열점지대’란 점을 부각시키고자 했는지 모른다. 북한 지도부의 치밀한 계획에 의한 도발인지, 아니면 해당 부대 수준에서 지휘관의 판단에 따라 저지른 도발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남측 군인이 자주 사용하는 철책 통문 주변에 지뢰를 설치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의 지휘체계가 개입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 과제 중에 ‘DMZ 생태평화공원’ 조성사업이 있다. 이번 사건은 DMZ에 생태평화공원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실감하게 한다. 북측이 최고 지도부 수준에서 승인한 도발이라면, 남측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DMZ생태평화공원 조성 사업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움직임으로도 볼 수 있다. 아니면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분쟁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이행을 촉구하기 위한 김정은의 또 다른 노림수일지도 모른다.

“비무장지대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작전을 실시할 것”이라고 하면서 한민구 국방부장관과 국방 당국이 밝힌 대책은 대북 확성기 방송 등 심리전 재개, 시계 확보를 위한 ‘화공작전’ 재개, 북한군이 침입하면 ‘경고방송-경고사격-조준사격’의 3단계를 거치도록 돼 있는 대응수칙을 공세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검토 등이다. 시계 확보를 위해 나무를 베고 불을 지르는 ‘화공작전’을 재개할 경우 생태는 파괴될 수밖에 없다. 결국 박근혜 정부가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DMZ생태평화공원 조성 사업의 의미도 퇴색하게 될 것이다.

이번 지뢰 도발 사건이 이명박(MB) 정부 시기 관광객 피격 사건과 같은 흐름으로 전개되지 않도록 상황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MB 정부 때 남북 관계가 경색된 시발은 2008년 7월11일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대북 여론이 나빠지고, 이를 활용한 ‘북한 악마화’가 본격화되면서 남북 관계는 단절되고 천안함-연평도 사태, 연이은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실험 등 상황이 악화돼왔다. 물론 2008년 8월에 발병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뇌졸중이 북한 급변 사태론으로 연결되면서 남북 관계 복원을 미루고 ‘기다리는 전략’으로 일관한 측면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8월4일 비무장지대에서 우리 군 수색대원 2명에게 중상을 입힌 지뢰 폭발 사고는 북한군이 파묻은 목함 지뢰에 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 연합뉴스

정치군사 문제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봐야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제시하고 강경과 유화 사이의 균형을 찾아 남북 관계를 복원하려고 하지만, 회담의 ‘격’ 문제, 대북 전단 문제, 한·미 합동 군사연습 문제 등을 둘러싼 남북 갈등으로 임기 중반인 현재까지 단절된 남북 관계를 복원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지뢰 도발 사건을 계기로 북한 악마화를 지속하면서 맞춤형 억지전략과 킬 체인(kill chain) 구축 등 막대한 군사비가 들어가는 무력 증강과 군비 경쟁을 지속할 가능성이 커졌다. 대화보다는 군사력 강화로 북한 위협을 억지하고, 제재와 압력으로 북한을 굴복 또는 붕괴시켜야 한다는 흐름이 강화될 경우 MB 정부 시기의 경험을 반복할 수밖에 없으리란 전망이 나온다.

6·15와 8·15 행사를 위한 남북 민간 차원의 접촉과 이희호 여사 방북에서 확인한 것은 MB 정부 이후 남북 관계가 오랫동안 단절돼 민간 차원의 노력으로는 관계 복원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 여사 방북을 계기로 남북 관계 복원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사라졌다. 지뢰 도발 사건이 발생하고 8월17일부터 열흘간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한·미 합동 군사연습이 시작됨으로써 남북 관계에는 또다시 긴장이 고조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남북 관계 복원이 이뤄지지 못하고 갈등을 지속하는 것은 협상에 임하는 입장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비정치적 교류·협력부터 시작해 신뢰를 쌓겠다는 남측의 기능주의적 접근과, 정치군사적인 ‘근본 문제’부터 해결해야 남북 관계를 복원할 수 있다는 북한의 근본 문제 우선 해결론이 충돌해 현재까지 갈등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지뢰 도발도 정치군사 문제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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