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과의 대화] 그는 아내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 배상훈│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프로파일러) (.)
  • 승인 2015.08.19 15:52
  • 호수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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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살인 저지르고 태연히 잠자고 밥 먹고 출근까지

2015년 4월5일 0시5분쯤, 경기도 시흥 옥구지구대에 한 남성의 신고가 들어왔다. 시화호 방조제 주변에서 친구와 게를 잡다가 커다란 고깃덩어리 같은 것이 보여서 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사체 발견 현장은 시화호와 오이도를 이어주는 12㎞의 시화방조제로, 한쪽은 바다와 이어진 선착장이고 다른 한쪽은 작은 돌로 이루어진 내수면이었다. 시신이 발견된 장소는 내수면 가장자리 부근으로 바다로부터 20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발견된 것은 머리와 팔다리가 없는 사람의 몸통이었다. 사체는 여성이었고 사체 주변에는 담배꽁초와 비닐봉투 등 크고 작은 쓰레기들이 널려 있었다. 사체 절단은 날카로운 예기에 의한 것이었다.

ⓒ 일러스트 오상민

주변 수색에서 100리터들이 종량제 쓰레기봉투가 발견됐다. 대용량의 부피를 볼 때 주로 공장에서 쓰는 것이었다. 이런 쓰레기봉투가 사체 주위에서 발견됐다는 의미는, 정황상 사체 유기에 이용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서산에서 쓰이는 이 쓰레기 종량제 봉투의 매듭에서 사체의 일부가 미세하게 발견되면서 더욱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발견된 위치였다. 시화호는 근처 안산·시흥 등 경기 남부의 하천들과 연결돼 있어서 범인이 시화방조제에 시체를 유기했다고만 할 수는 없다. 여러 하천들 중 하나에서 버려진 사체가 이곳으로 떠밀려왔을 가능성도 충분해 보였다. 부검을 통해 사체에 남은 절단면을 검사한 결과, 뼈를 직접적으로 절단한 것이 아니고 관절 부위를 절단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또 전체적으로 하나의 예기가 사용됐고, 사망자는 20대에서 50대 사이이며 질 내 손상은 없었고 정액 반응도 관찰되지 않았다.

주변에 CCTV가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아 수색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범위가 너무 넓었고, 사체와 비교할 실종자 및 미귀가자도 너무 광범위했다. 게다가 피해자가 외국인일 경우에는 신원을 확인하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던 중 4월6일 밤, 한 낚시꾼으로부터 해변가에서 축구공만 한 사람 머리카락 뭉치를 봤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수색 끝에 피해자의 머리를 찾았고 출입국관리소에 얼굴 인식 시스템 조회를 요청하는 동시에 주변에 대한 정밀 조사를 시작했다. 이후 양 손목과 발목을 발견했고, 지문 조회를 통해 사망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망자는 조선족 이 아무개씨. 토막살인 사건의 경우에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관계가 부부·연인·가족 등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망자 신원만 밝혀진다면 범인을 잡고 범죄를 해결하는 데는 대부분 큰 어려움이 없다. 이 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피해자 이씨의 신원을 확인한 후, 평소 행적이 의심스러웠던 남편 김하일에게 용의점을 두고 수사해 결국 자백을 받아냈다.

토막 시신이 발견된 경기도 시흥 시화방조제에서 4월7일 토막 시신의 다른 부분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돼 경찰이 조사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사체 훼손 대다수 부부·연인·가족 등 지인

지난 2010년부터 2015년 사이 언론 보도를 기준으로 토막살인 사건은 총 23건 발생했다. 23건을 올해부터 살펴보면 2015년 2건, 2014년 3건, 2013년 3건, 2012년 5건, 2011년 3건, 2010년 7건이다. 그런데 사실 이전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토막살인’이라는 개념은 적절한 것이 아니다. 문자 그대로 읽으면 ‘토막을 내면서 살인을 했다’는 식으로 오해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 살아 있는 상태에서 신체 훼손을 하면서 살해를 하는 경우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정확한 표현은 ‘살해 후 토막 방식의 사체 유기’ 정도가 될 것이다.

둘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전자는 가학적이고 엽기적인 살인 그 자체가 목적이지만 후자는 살인 이후에 사체 유기를 용이하게 할 목적이라고 판단된다. 그렇지만 언론에서는 관습적으로 ‘토막살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는 아마도 전자이든 후자이든 사건 자체가 주는 잔혹성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신체의 일부를 훼손하면서 죽이는 행위도 더할 나위 없이 잔혹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사체를 훼손해서 유기하는 방식 그 자체도 잔혹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대중은 이런 행동을 아무나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식적으로 볼 때 살인을 저지른 후 사체 훼손은 감히 생각하지도 못하고 그냥 도망가거나 기껏해야 산속에 매장하거나 바다나 강, 저수지 등에 투기하는 게 대부분일 것이라고 여긴다. 그렇다면 이렇게 사체 훼손을 선택한 범죄자들에게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사이코패스들인가, 정신병자들인가.

그런데 실제 사례에서 이런 종류의 사체 훼손 유기 방식을 선택한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면, 전체 23건 중에서 14건이 부부이거나 연인 혹은 가족, 친구, 지인이라는 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런 훼손 행위를 하는 장소, 즉 범죄 현장도 전체 23건 중에서 15건이 자택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자택에 유기하는 경우는 전체 23건 중 6건이고 산이나 강, 바다, 들판에 유기하는 경우가 18건이나 된다. 살해 방법도 목을 졸라 살해한 경우(교살·압살·질식 등)가 11건, 둔기나 흉기를 이용한 경우가 6건이었다. 범행 동기는 ‘불화’가 10건이고, ‘금전’이 3건이었다.

이상의 결과로만 볼 때 범행 동기나 범법 등에 비춰 딱히 사이코패스나 정신병자의 방법으로만 치부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즉 우발적인 분노 범죄의 가능성이 더 크게 나타나는 것이다. 다만 그런 살인이 어떤 이유에서 사체 훼손이라는 잔혹성으로 옮겨가게 됐는지에 대한 문제가 남는다. 기존의 설명 방식으로 보면 검거를 피하기 위해 피해자의 신원 확인을 불가능하게 만든 것이 된다. 즉 우발적으로 살해한 후 잡히지 않기 위해 사체를 훼손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설명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훼손하지 않고 그냥 유기하는 방법도 실제로 보면 상당히 많다. 이동의 효율성 때문이라면 차라리 오원춘의 경우처럼 더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 더 용이할 것이다. 따라서 잡히지 않으려고 훼손한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앞서 토막살인 사건의 사례 분석을 통해, 피해자의 신원만 밝힐 수 있다면 사건 해결은 어렵지 않다고 했다. 범인은 대부분 근친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얘기하면 신원을 밝히지 못하면 범죄 해결이 매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 때문에 범인이 사체를 잔혹하게 훼손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사체 훼손이 가학적이고 반사회적인 인격장애 탓에 발생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같은 맥락에서 범죄를 은폐하고자 하는 방법의 일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일부 범죄학자들은 이런 종류의 토막살인을 ‘방어적 토막살인’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사체 훼손했지만 흔적 지울 생각 안 해

물론 그 반대편에는 ‘공격적 토막살인’이 있을 수 있다. 원한 등에 의해 사체를 훼손하는 경우가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현실에서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극도로 분노하는 대상을 죽인 다음에 사체를 훼손하는 것 자체보다는 죽이기 전에 가학적인 행위를 하는 것을 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모욕적 토막살인’도 가능하다고 한다. 훼손 과정에서의 성적 쾌감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다. 이는 사이코패스에 의한 토막살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토막살인 대다수가 방어적인 경우라고 볼 수 있는데, 이 경우에도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이런 종류의 사체 훼손도 단지 유기 목적만이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감정에서 사랑과 증오는 양면적으로 존재한다. 감정을 교류했던 근친 관계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정리될 때 사람은 전혀 면식이 없는 제3자에게 느끼는 것보다 훨씬 큰 분노를 갖는다. 그렇기에 존속살해의 경우 자신의 부모인데도 잔인하게 폭력을 행사하며 살해하기도 하고, 이별 범죄의 경우 무자비한 폭력이 행사되면서 고문에 가까운 방식으로 살해하기도 한다. 만약 상대방이 전혀 모르는 대상이었다면 그런 폭력은 행사되지 않았을 것이다. 때문에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관계가 어떠했는지가 중요하다. 이 사건의 경우도 김하일과 부인의 관계가 중요한 것이다.

토막살인의 경우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부부·연인·가족·친구 등 밀접한 관계인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유기 목적이라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가해자의 분노가 동력이 돼 잔혹한 사체 훼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범인 김하일이 체포된 후 심문 과정에서 ‘아내를 살해한 직후 무엇을 했느냐’고 묻자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출근을 했다”고 진술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사체를 훼손하기는 했지만 실제 신원 확인에 중요한 지문 부위는 훼손하지 않았다는 점이나, 사체의 다른 부위에서 폭력의 흔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범인 김하일이 갖는 사망자에 대한 감정과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김하일이 어느 정도의 반사회적 인격장애 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판단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김하일에게 아내는 두려운 존재였고 피하고 싶은 존재였을 것이다. 특히 사회의 가장 낮은 하층 계급 노동자에게서 보이는 이러한 낮은 자존감은 그 상대가 부인일 경우 더욱 심각한 스트레스로 나타난다. 현실적으로 벌이가 시원찮은 김하일에게 부인은 저승사자와도 같은 존재였을 수 있다. 그렇기에 우발적인 살인이 벌어진 후 쉽게 부인의 흔적을 지울 생각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에 대한 증거로 사체 훼손과는 무관한 사망자의 옷도 버리려고 한 사실을 들 수 있다. 김하일은 부인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자기 의지로는 할 수 없었는데 우연히 살인을 하자 쉽게 사체 훼손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김하일은 체포 당시에도 그 이후에도 그저 태연하고 여유로운 표정을 지은 것이다. 김하일은 자신을 가두고 있던 어떤 것을 걷어낸 듯한 느낌을 받았을 수 있다(물론 이러한 분석이 사망자를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김하일 부부가 처해 있던 스트레스 상황에 대한 언급일 뿐이다). 그래서 김하일의 표정이 마치 사이코패스와도 같아 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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