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음악에 돈이 끼어드니 시끄럽다
  • 김회권 기자·박상희 인턴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5.08.19 16:33
  • 호수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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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들 간 갈등 밑바닥에 깔린 열악한 저작권 구조

지난 7월20일 신중현·김형석·윤일상·윤종신·주영훈 등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뮤지션들이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음저협)가 마련한 기자회견장이었다. 신중현씨는 이 자리에서 울분을 토했다. “어떻게 음악도 아닌 소음, 이런 것들을 수입업자들과 짜서 돈벌이하나.” 여기서 음악도 아닌 소음이란 주제·배경·시그널 음악을 말한다. 이 바닥에서 이른바 ‘주배시’로 불리는 것들이다.

“이해관계가 걸렸고 음악적 가치를 다르게 볼 수도 있지만 한국 음악의 레전드라고 불리는 분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멸시해버리는데 기분이 처참했죠. 주변의 다른 친구들도 비슷한 반응이에요.” 프리랜서 작곡가 K씨는 신씨가 말하는 소음, 즉 주배시를 만들며 먹고사는 사람이다.

우리는 주배시를 항상 접하고 있다. 방송을 통해서다. 예능 프로그램 하나에도 오프닝부터 효과음악까지 쉴 새 없이 주배시가 우리 귀를 때린다. 드라마 주인공의 슬픈 감정을 상승시켜주는 피아노 솔로곡도 주배시다. 물론 기존 곡이 아니라 새로 창작된 것들(주로 배경음악이 되겠지만)이어야 하지만.

7월20일 서울 여의도 63스퀘어에서 열린 '음악인 살리기 대책본부 기자회견'에서 국내 주요 음악인들이 문체부의 분배규정 개정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후발 주자 함저협, ‘주배시’ 시장 노리다

그동안 이렇게 방송이 사용한 주배시는 저작권료 책정에서 가요에 비해 박한 취급을 받아왔다. 국내 음원의 95%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음저협은 주배시의 저작권료를 가요에 비해 2분의 1~10분의 1 정도로 차등해 적용했다. 방송에 사용되는 음악을 종류로 나눠보면 주배시가 85%, 가요가 15%다. 그런데 앞선 차등 분배 때문에 사용 횟수 85 대 15가 저작권료 분배에서는 71 대 29로 변한다.

2014년 9월 ‘함께하는음악저작인협회’(함저협)가 저작권 신탁 사업에서 음저협의 독점을 깨고 후발 주자로 등장했다. 그리고 올해 4월20일 자체적으로 주배시와 관련한 방송 사용료 분배 방법을 바꾸기로 결정하고 문화체육관광부의 승인을 받았다. 함저협 측 관계자의 이야기다. “저희 판단에는 배경음악과 통상음악을 구분하는 것이 모호하다고 봤다. 그래서 배경음악에 유리하게 했다기보다는 분배 정책 기준을 다르게 잡았다”고 설명했다. 기존 음저협에서는 음악 종류에 따라 차등 분배했다면 함저협 측 기준의 특징은 시간이다. 방송 기여도를 측정하겠다는 것인데 실제로 등장해 노래를 부르거나 연주를 하는 실연의 경우에는 4점을 부여하고 단순 음반 재생은 종류에 상관없이 사용 시간에 따라 1~4점까지 부여하겠다는 게 함저협의 생각이다.

함저협의 기준은 함저협 회원들만 적용받는다. 현재 음저협과 함저협의 회원 수는 대략 95 대 5 정도다. 5%만을 위한 기준 변경에 함저협이 아닌 음저협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개탄스러워하는 일이 벌어진 건 왜일까.

그런데 이날 기자회견에 나온 음저협 소속 작곡가들은 함저협의 주배시 정책이 라이브러리업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신중현씨의 “수입업자들의 돈벌이”는 이 부분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음저협 관계자의 이야기다. “함저협이 1년 정도 운영했는데 음저협의 저작권료 수입이 많은 사람들을 데려가야 이익이 생긴다. 그런데 이게 잘 안됐다. 그래서 노린 게 방송 사용료 330억원이다.”

우리나라 전체 음원 저작권 사용료 징수액은 연간 약 1400억원이다. 이 중 방송 사업자들(지상파 3사)이 내는 돈은 올해 330억원으로 비중이 큰 편이다. 일종의 정액제로 330억원을 지불하면 방송사들은 저작권협회에 등록된 음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이 중 주로 사용되는 음악이 주배시다. 그 가운데 47% 정도가 해외에서 수입해오는 음원이다. 해외 수입 음원을 방송사에 제공하는 게 라이브러리업체다. 국내에 100개 정도 된다는 이 라이브러리업체는 협회의 주요 회원이다.

“함저협 가면 음저협 다시 못 온대” 소문 무성

음저협의 1 대 10 분배 비율은 ‘창작’의 정도에 따라 정해진 기준이다. 기승전결로 만든 음악과 단순하고 짧은 배경음악의 가치가 같을 순 없다는 게 판단 배경이다. 그런데 함저협의 기준대로 차등 분배를 없애고 시간을 적용한다면 주배시의 저작권료 비중이 커지게 되고 라이브러리업체의 이익만 증가할 거라는 게 음저협 쪽의 주장이다. 이게 이날 기자회견이 열리게 된 이유였다.

음저협 관계자는 “함저협은 작가들을 위한 협회가 아니라 라이브러리업체에 유리한 곳이 되겠다고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잘라 말했다. 7월20일 기자회견을 둘러싼 사실은 이렇게 정리된다.

일각에서는 파이가 줄어드는 스타 작곡가들의 반발이라는 단순한 그림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BGM(배경음악)을 10여 년 동안 만들어온 한 작곡가는 “함저협의 유리한 조건을 보고 라이브러리업체나 회원들이 이동하면 방송사에서 지급한 비용 330억원을 나누는 것도 조정될 테니, 음저협 회원들이 불리해질까 봐 미리 차단에 나서는 것 아니겠나”라고 반문했다. 실제로 음저협의 기자회견 이후 함저협에 걸려오는 이관 문의가 늘었다고 한다. 기자회견이 광고 효과를 준 셈이다. 라이브러리업체 중 가장 큰 ‘모두컴’을 비롯해 업체 두 곳은 함저협 쪽으로 옮겨왔다.

주배시의 절반이 라이브러리업체 몫이라면 절반 정도는 국내 음악인들이 만든 것이다. 이런 일반 작가들의 경우는 문의는 많아도 관망하는 추세라는 게 함저협 쪽의 설명이다. 드라마 음악감독인 P씨는 현재 500여 곡의 저작권을 가지고 있다. 그중 400곡 정도가 드라마 배경음악이다. “100곡의 가요보다 400곡의 배경음악 저작권료가 요즘은 더 많다”고 말하는 P씨의 경우라면 함저협으로 옮기는 게 더 이로울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이번 사태를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불확실한 부분이 너무 많아요. 함저협으로 갔다가 다시 음저협으로 못 온다는 소문도 주변에서 들리고요.”

모두들 논리가 있고 입장도 서로 부딪친다. 음저협, 함저협, 가요 관계자, 라이브러리 작곡가, 라이브러리업체 등 음악 산업에 관련된 주체들이 얽혀서 대립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이규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작은 저작권 규모라고 지적한다.

우리나라 음악 저작권의 규모는 1400억원으로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크다. 1위인 일본의 저작권협회 자스락(JASRAC)은 우리의 10배에 해당하는 저작권료를 징수하고 있다. 이 교수는 “한국과 일본의 경제력 격차를 보더라도 10배 차이가 난다는 것은 우리 저작권료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저작권료 수입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작곡가 윤일상씨는 일본에 갔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일본에 모임이 있어 이코노미를 타고 갔는데, 공항에 마중 나온 일본분이 ‘전세기를 타고 오셨느냐’고 묻더라. 일본에서 나 정도 작곡가라면 그 정도의 저작권료를 거둘 거라고 예상하고 건넨 말이었는데 차이가 느껴졌다.”

방송사가 지급하는 330억원은 1400억원의 시장 규모에서 중요한 돈이다. 하지만 이 교수는 “아주 작은 금액”이라고 말한다. 330억원은 어떻게 계산될까. 이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지상파의 330억원은 매출액×1.2×0.63에 따라 산출된다. 여기서 1.2는 음악 사용료율이다. 0.63은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한 조정계수다.

“이번 갈등은 가난한 자들 간의 다툼”

이 교수는 “일단 일본의 1.5와 비교해 사용료율이 낮다. 그리고 조정계수는 330억원을 맞추기 위해 0.63이란 숫자를 집어넣은 것이다. 일본의 경우에는 조정계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매출액에 방송 프로그램 매출액이 포함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 보니 한류를 등에 업고 해외로 진출한 방송 프로그램의 시장 규모가 5000억원에 달하는데 음저협은 거기서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있다. 방송 사용료 수익 330억원에 이 5000억원의 가치는 전혀 평가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함께 나눌 수 있는 파이가 작다 보니 작은 부분에서도 파열음을 내기 쉽다. 이 교수는 음저협과 함저협의 이번 갈등을 “가난한 자들끼리의 다툼 같다”고 표현했다.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 뮤지션들이 이번 기회에 힘을 합쳐 부자가 되는 길을 모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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