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해전, 육지에서 일어날 수 있다”
  • 안성모·조유빈 기자·유지민 인턴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5.08.24 13:21
  • 호수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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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무력 충돌 위기…전문가 8인 긴급 진단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목함지뢰 사건에 이은 대북 확성기 방송, 그리고 포격에 이르기까지 8월 들어 남북 간 대립이 극단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전쟁 발발 가능성이 거론될 만큼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시사저널은 전문가 8인을 통해 무력 충돌 상황에 직면한 남북 관계를 긴급 진단했다.

© 조선중앙통신 연합

■북한 포격 사태 왜 발생했나

북한군은 8월20일 오후 3시쯤 남쪽을 향해 포격을 가했다. 지난 8월3일 발생한 목함지뢰 사건의 대응 차원에서 우리 군이 방송을 재개한 대북 심리전용 확성기가 목표물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북한이 11년 만에 재가동된 대북 심리 방송에 대한 압박으로 포격을 가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대북 확성기 방송을 포격의 계기로 보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오래전부터 북한은 심리전 성격의 대북 방송에 예민한 반응을 보여왔다. 방송이 재개될 경우 조준 사격을 하겠다고 이미 밝힌 바 있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확성기 방송이 북한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민감한 반응을 군사적으로 보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북한군이 단순히 대북 방송에 대한 불만으로 포격을 가했다고 볼 수는 없다는 지적이 많다. 대다수 전문가는 이명박 정부 때부터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남북 관계가 포격 사태까지 불러온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남북 당국 간 불신의 골이 깊다. 자신만의 길을 고집하다 보니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수훈 경남대 교수는 “남북 간에 적대적이고 대결적인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됐다. 이로 인해 군사적 긴장감이 너무 높아져 이번과 같은 사건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 남북 간의 불신이 더 깊어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박근혜·김정은 두 지도자의 리더십이 충돌한 것으로 본다. 서로 양보나 타협을 하지 않는 리더십이 불신을 깊게 했고 결국 무력 충돌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현익 세종문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확성기에 가슴 졸여서 단기적으로 반발하려고 포격을 한 게 아니다. 군사적 도발로 볼 수 있다. 2년 반 동안 박근혜 정부와 기 싸움을 해온 김정은이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8월21일 북한의 서부전선 포격 도발과 관련해 경기도 용인의 제3야전군 사령부를 방문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3군사령관과 각군 작전사령관들로부터 우리 군의 대응책 및 북한군의 동향 등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 연합뉴스

■정부 대응 잘하고 있나

박근혜 정부의 대응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압도적이었다. 임을출 교수는 “북한을 길들여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북한을 다루는 방식이 미흡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이수훈 교수는 “위기 상황 때마다 대응이 아주 부실했다. 상황 관리를 잘해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목함지뢰 사건에 대한 대응으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 데 대해서는 대다수 전문가가 ‘적절치 않았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양무진 교수는 정부 대응에 대해 “빵점짜리”라고 평가한 후 “지뢰 매설과 확성기 방송이 무슨 관계가 있나. 북한이 지뢰 매설을 했다고 확성기로 대응한 것은 문제를 해결하자는 게 아니라 악화시키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확성기 방송을 바람직하게 보지 않는다. 여러 가지 다른 방법이 안 통할 때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영윤 남북물류포럼 회장은 “북한이 48시간 내에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라고 한 것은 대화할 시간을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에서 대화하자는 신호를 보내는데 우리 쪽에서 다 거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잘못됐다”고 설명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이 실질적인 효과가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진희관 인제대 교수는 “김정은 체제를 욕하는 방송은 북한의 신경만 자극하는 일이다. 요즘 표현으로 하면 가성비가 전혀 없는 대응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양무진 교수는 “북한이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니까 확성기 방송이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아주 잘못된 인식이다. 오히려 북한 병사들에게 대남 적개심을 더 고취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남·북한 사이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8월21일 경기도 연천군 중면 면사무소에 마련된 대피소에 주민들이 대피해 있다. © 연합뉴스

■추가 무력 충돌 가능성은?

포격 사태 후 군사 대치가 본격화하면서 추가 무력 충돌이 우려되고 있다. 한마디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상황이 지속되는 분위기다. 상당수 전문가가 전면전은 아니지만 국지전 양상의 충돌은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임을출 교수는 “연평도 바다에서 터졌던 사태가 육지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진희관 교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싸우겠다고 하면 결국 충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전면전은 아니지만 국지전 가능성은 굉장히 높은 시기”라고 밝혔다. 김영윤 회장은 “북한은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 또 명령 하나면 모든 게 결정 난다. 김정은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불장난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다른 식의 도발을 감행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홍현익 수석연구위원은 “전시 상태의 긴장 국면이 지속될 수 있는데, 북한이 다른 형태로 도발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양무진 교수는 “NLL(서해 북방한계선)을 침범하거나 비무장지대에 화력을 집중할 수도 있다. 또 사이버 테러에 나서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발을 해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무력 충돌 가능성이 낮다고 보는 전망도 있었다. 고유환 교수는 “충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북한이 도발하면 한국은 물론 미국의 보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공세적으로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수훈 교수는 “남북 양측이 전쟁을 하겠다는 건 아니다. 끝까지 죽고 살기로 해보자고 할 수는 없다. 전통문이기는 하지만 지금도 이런저런 의사 교환이 이뤄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대화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식으로든 출구를 찾아서 해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남북 관계 어떻게 전개될까

당장의 무력 충돌을 넘어 향후 남북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도 중요하다. 대다수 전문가가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임을출 교수는 “자존심 때문에 서로 양보하지 않으려고 해 걱정스럽다.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양무진 교수는 “당국 간 불신이 깊고 민간 교류도 중단된 상태에서 군사적으로 강 대 강으로 간다면 박근혜 정부 임기 내에 남북 관계가 복원되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진희관 교수는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를 상당히 꺼리고 있어 현 정부하에서 남북 관계 개선은 어렵다고 본다. 대선을 앞두고 뭔가 이벤트를 할 가능성이 있는데, 그렇다고 해도 실행은 현 정부가 아닌 차기 정부로 넘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문정인 교수는 “남북 관계가 경색된 상황이라 개선되기가 힘들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있는데 이를 반전시킬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금이라도 대북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이수훈 교수는 “북한은 조폭과 비슷하다. 조폭이 칼을 휘두른다고 같이 칼을 휘둘러 제압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평소에 조폭 단속을 잘해 기승을 못 부리도록 해야 한다. 지금은 조폭의 약을 계속 올리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진희관 교수는 “이명박 정부도 그랬지만 박근혜 정부도 공식적으로 비공개 특사를 보내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대화 채널이 없다는 뜻이다. 과거 군사정권 때도 밀사가 오가면서 남북 관계를 조절했다. 위기관리를 한 것이다. 위기관리를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하는 게 국가 지도자와 정책 결정자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도움말=
고유환 동국대 교수
김영윤 남북물류포럼 회장
문정인 연세대 교수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
이수훈 경남대 교수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진희관 인제대 교수
홍현익 세종문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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