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NH증권 간부, 고객 돈 횡령하고 잠적
  • 송응철 기자 (sec@sisapress.com)
  • 승인 2015.08.27 10:35
  • 호수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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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투자로 수십억 손실 후 허위 잔고증명서로 속이다 들통

국내 자산 규모 1위인 NH투자증권에서 횡령 사건이 벌어졌다. 경기도 용인 수지지점 소속 영업담당 부부장급 직원 A씨는 지난 8월 중순께 고객 돈을 횡령한 후 현재 자취를 감춘 것으로 확인됐다. 뒤늦게 문제를 파악한 수지지점은 수원경찰서에 A씨를 고객 돈 횡령 혐의로 고발한 상태다.

고객 동의 없이 투자해 막대한 손실

수지지점 측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수지지점 지점장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외부와 접촉하지 말라는 지침이 내려왔다”며 “본사를 통해 공식 입장을 확인하라”고 말했다. NH투자증권은 이번 사건에 대해 횡령으로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사익을 편취하기 위해 횡령을 ‘저지른’ 게 아니라 무리하게 투자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횡령이 ‘발생’했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영업담당 간부의 고객 돈 횡령 사건이 벌어진 경기도 용인의 NH투자증권 수지지점. ⓒ 시사저널 송응철c

시사저널이 다방면으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A씨는 우리투자증권의 전신인 LG증권에 입사한 이래 25년을 근무해온 인물이다. NH투자증권 배지를 단 건 올해 1월. NH농협금융지주가 지난해 4월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해 NH농협증권과 합병시키면서다. A씨는 오랜 기간 영업직원으로 일해온 만큼 관리하던 고객도 많았다고 한다. 사건의 불씨는 A씨가 2000년대 중반부터 고객들을 상대로 일임매매를 하면서 지펴졌다. 일임매매는 투자자가 증권사에 유가증권의 종목 선정, 종목별 수량·가격·매매 등 계좌 지배권을 위임하는 거래다. 일임매매는 증권사와 고객 간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어 금지를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일임매매를 할 때는 서면 계약서를 작성하게 돼 있다.

일임매매를 할 경우에도 투자 결정에 대해선 고객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고객의 주문 기록을 녹음하고 저장하는 게 원칙이다. 녹음이 불가능한 경우엔 주문지를 근거로 남겨놓아야 한다. 그러나 A씨는 이런 절차를 생략한 채 고객 돈을 임의로 주식과 파생상품 등에 대규모로 투자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일임매매는 그동안 증권가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져온 거래 방식”이라며 “고연령층 등 영업직원 의존도가 높은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직원이 임의 거래를 하는 사례가 계속되면서 현재는 증권업계에서 자제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사건이 가시화되기 시작한 건 2008년 전후다. 당시 리먼브러더스 사태 등 글로벌 금융위기에 국내 증시가 흔들렸고, A씨의 투자 역시 큰 손실을 입게 됐다. 특히 파생상품에서 피해가 막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A씨는 투자 실패 사실을 고객에게 그대로 전달하지 않았다. 대신 허위로 조작한 잔고증명서를 보여주며 안심시켰다. 고객을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에 무리수를 둔 것으로 풀이된다. 이후에도 A씨는 일임매매를 통해 투자를 계속하며, 허위 서류로 고객의 눈을 가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사이 손실이 누적됐고, 최근 A씨가 감당할 수 없는 규모까지 커졌다. 이런 사실이 외부로 불거진 건 지난 8월 중순께다. 뒤늦게 횡령 사실을 인지한 고객 B씨가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나서면서다. 피해자 B씨는 그동안 A씨에게 자신은 물론 가족 명의 계좌 관리를 맡겨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길로 A씨는 잠적했고, 8월21일 현재까지도 거취가 불분명한 상태다.

NH투자증권은 현재 A씨를 찾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동시에 자체적인 내부 조사에도 착수했다. NH투자증권이 현재까지 확인한 피해자는 B씨와 그의 가족이 전부다. 피해 금액을 10억원대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 정확한 피해 범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A씨가 고객 계좌를 개인적으로 관리해와 전산상에는 피해 사실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불법을 저질러온 셈이다.

금융권에선 향후 A씨의 신병이 확보되고 본격적인 경찰 수사가 진행될 경우 추가 피해가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영업담당 직원이 관리하는 고객 수는 통상 50명에서 100명 사이”라며 “A씨가 또 다른 고객의 돈을 횡령한 사실이 추가로 밝혀질 경우 피해 금액은 수십억 원대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NH투자증권은 횡령된 고객 돈 회수에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증권사에서 벌어지는 횡령 사건은 자금 대부분을 투자로 잃는 경우가 많아 다른 금융기관에 비해 회수율이 낮기 때문이다. 실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금융사에서 발생한 사고 금액 회수율은 증권사가 11.6%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외에 은행은 56%, 보험사는 85% 수준이었다.

최근 영업담당 간부의 고객 돈 횡령 사건이 벌어진 경기도 용인의 NH투자증권 수지지점. ⓒ 시사저널 송응철duftlagl goqhfRpdu!!!!!

계속되는 횡령 사건…내부 감시망 구멍

이런 가운데 NH투자증권 측은 피해자들의 손실을 보전하겠다고 약속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이 회사 관계자는 “A씨가 고객 주문에 대한 녹음이나 주문지 작성 등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정황이 확인된 만큼 NH투자증권에 배상 책임이 있다”며 “고객이 입은 모든 피해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에 따르면 사측의 과실로 고객 피해가 발생할 경우 해당 증권사는 피해자에 대한 1차적인 배상 책임을 지고, 이후 문제를 일으킨 직원에 대해 구상권을 행사하는 수순을 밟는 게 일반적이다.

NH투자증권은 금융사의 생명인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커졌다. 직원들의 모럴해저드 문제가 처음이 아니어서 더욱 그렇다. 앞서 NH투자증권의 전신인 우리투자증권 시절 부산 수영구의 한 지점 직원이 고객 돈 6억6000만원을 착복한 사건이 있었고, 서울 강남구의 지점 직원이 7억3000여 만원의 고객 자금을 횡령한 일도 있었다.

더욱 큰 문제는 직원들의 일탈이 벌어지는 동안 내부 감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당장 이번 횡령 사건만 해도 수년에 걸쳐 A씨가 부적절하게 고객을 관리하고 있었음에도 사측에선 이런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매년 진행되는 내부 감사에서도 걸러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과거 고객 돈 횡령 사례 역시 내부 감사가 아닌 금융 당국에 의해 적발됐다. ‘고객 돈을 내 돈처럼’ 주무르는 사례가 반복될 수 있다는 얘기다. NH투자증권 측도 관리 소홀을 어느 정도 시인하면서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하기 전부터 벌어졌던 일이 이제 와서 불거진 것 같다”며 “직원 관리나 감사에 부진했던 점을 인정하고 앞으로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증권사 횡령 사고  

증권사 직원의 고객 돈 횡령은 비단 NH투자증권만의 일이 아니다. 대다수 증권사에서도 금융 사고가 예외 없이 발생하고 있다.

당장 지난 7월엔 삼성증권 강남 지역 지점에서 근무하던 간부급 직원이 고객 돈 3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된 일이 있다. 문제의 직원은 2013년 높은 수익을 내주겠다며 한 고객에게 접근해 투자금 명목으로 55억원을 받아냈다. 이후 지속적인 손실을 냈음에도 자산 현황표와 수익률 등을 조작하는 등의 수법으로 30억원대의 손실을 안겼다.

지난해에는 미래에셋증권 직원이 실체가 없는 펀드를 있는 것처럼 꾸며 고객 10여 명으로부터 30억여 원의 돈을 모집한 후 파생상품 등에 투자해 손실을 낸 혐의로 입건된 사건이 있었다. 같은 해 한국투자증권에서도 한 직원이 고객 돈 17억원을 횡령해 잠적하기도 했다.

2013년에는 SK증권 직원이 고객 5명의 계좌에서 지인 계좌로 이체하는 수법으로 15억6000만원을 가로챈 일이 금융 당국에 적발됐다. 같은 해 한화투자증권 직원은 고객이 맡긴 증권카드를 이용해 2억5000만원가량을 횡령했고, 하나대투증권 직원은 동호회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투자하다 대규모 손실을 입자 종적을 감추기도 했다.

이들 증권사 외에도 2013년과 지난해 HMC투자증권·교보증권·동양증권·유진투자증권·LIG투자증권·골든브릿지투자증권·메리츠종금증권·케이알선물·하나대투증권·한맥투자증권 등 거의 모든 증권사에서 금융 사고가 터졌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증권사 직원들의 ‘일탈’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 당국에 따르면 2012년 증권사에서 발생한 금융 사고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많은 22건에 달했다. 전년의 16건에 비해 37.5%나 증가한 셈이다. 사고 금액은 80억5000만원이었다. 2013년에는 사고 건수가 13건으로 줄어들었지만 액수는 605억원으로 최근 3년 동안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사고 건수가 19건으로 다시 늘어났고, 액수는 170억2000만원이었다.

금융권에는 증권사에서 금융 사고가 증가하는 배경에 대해 주식시장의 극심한 불황과 연관 짓는 시선이 적지 않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증시 불황 여파로 실적 압박에 내몰린 일부 증권사 직원들의 모럴해저드가 심화되고 있다”며 “이를 감시하고 견제할 시스템이 부족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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