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 지하 어뢰공장에 조선인 생매장”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5.08.27 11:10
  • 호수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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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회 “일본군 만행으로 유골 1000여 구 매몰돼 있다”

‘일본군의 지하 어뢰공장에 유골 1000여 구가 매몰돼 있다.’ 광복 직전인 1945년 5월, 일본군이 부산항의 군수공장으로 강제 징집된 조선인 노무자를 대량 학살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예상된다. 아시아태평양전쟁희생자 한국유족회는 “당시 진해 해군기지로 끌려간 많은 조선인 가운데 부산항 일대 지하 어뢰공장에서 강제 노역을 했던 1000여 명을 일제가 패망하면서 생매장했다”며 “확인된 유골만도 980여 구라는 증언이 있다”고 밝혔다. 유족회는 철저한 진상조사를 요구하며 서병수 부산시장에게 면담을 신청해놓은 상태다.

유족회의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군은 부산시 남구 문현동 일대 지하에 대규모 시설을 만들었다. 용도는 태평양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해군에서 사용하는 어뢰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조선인 징용자는 1000명 정도였는데, 이 인원이 3교대로 강제 노역을 했다. 그런데 패색이 짙던 1945년 5월 일본군은 어뢰공장의 비밀이 탄로 날까 두려워 조선인 노무자 1000여 명을 지하에 몰아넣은 채 생매장했다. 전국 각지에서 징용되어 온 조선인 청년들이 광복을 몇 달 앞두고 영문도 모른 채 집단 학살됐다는 것이다.

아시아태평양전쟁희생자 유족회 회원들이 8월15일 부산시민회관에서 일제 강점기에 학살된 징용자 1000여 명의 유해 발굴을 촉구하고 있다. ⓒ 아시아태평양전쟁희생자 한국유족회

“어뢰공장 비밀 탄로 날까 두려워 생매장”

부산항 어뢰공장에서 화약 발파 작업을 하다가 일본 규슈 해군기지 건설공사 현장으로 차출돼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는 한 생존자의 증언을 근거로 제시했다. 진해 해군부로 징용돼 끌려갔던 진○○씨가 같은 동네 청년 두 명이 광복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자 당시 어뢰공장에서 일했던 동료들을 수소문했는데 아무도 생사를 확인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유족회 관계자는 “유골 980여 구를 직접 확인했다는 잠수부의 증언도 확보했다”고 전했다.

일제 강점기 시절 부산항 지하 어뢰공장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이 생매장됐다는 주장은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이 아니다. 몇 해 전에도 일제 피해자 단체에서 관련 의혹을 제기하며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당시 일제강제연행한국생존자협회 관계자는 “회원 중에서 진○○씨라는 분이 문현동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라고 전했다. 진씨는 2004년 작고했는데, 그의 부인도 같은 진술을 했다고 한다. ‘일본군 지하 공장 위치를 남편이 나중에 확인해보니 지금의 부산시 남구 문현동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진씨의 증언 외에 몇 가지 근거가 더 제시됐다. 우선 국가기록원에 보관돼 있는 징용자 명단 관련 서류다. 진씨의 이름 옆에는 살아서 귀향했다는 표시로 ‘歸’(귀)자와 ‘生’(생)자가 적혀 있고, 사망해서 돌아오지 못한 징용자 이름 옆에는 ‘死’(사)자가 적혀 있는 데 반해, 상당수 징용자 이름 옆에 ‘未’(미)자가 표시돼 있다는 것이다. 유족회는 이에 대해 “살았는지 죽었는지 분명하지 않은 징용자를 말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들이 일본군이 저지른 집단 학살의 피해자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어뢰공장이 들어섰다는 부산항 일대 부지의 소유권 이전 경로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 부지의 토지대장에 따르면, 광복 전인 1939년 4월에 500여 평 규모의 땅 소유권이 조선인에서 일본 도쿄의 아카사카에 거주하는 한 일본인에게 넘어갔다. 또 같은 해 9월에는 일본 목재공업주식회사로 명의가 변경되었다. 이 시기가 지하 어뢰공장 건설공사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1945년 7월3일 토지 소유권이 조선총독부로 넘어갔는데, 패망을 불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일본 정부가 직접 땅을 매입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주장이다. 지하에 일본이 감추어야 할 중요한 시설이나 물건이 있기 때문에 총독부 명의로 지상권을 확보해두지 않았겠느냐는 의혹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관계 기관 “대량 학살 근거 없다” 재조사 불발

하지만 일제 피해자 단체의 진상조사 요구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당시 해당 기관에서는 ‘신빙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재조사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단 부산항 지하에 어뢰공장이 있을 가능성은 배제하지 않았다. 당시 해군기지 하역장이 있었던 곳인 만큼 일본의 군사시설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제에 의한 강제 동원이 이루어진 일도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하지만 대량 학살이 자행됐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반박했다. 입증할 자료가 없는 것은 물론, 마을 주민들도 학살과 관련한 어떠한 내용도 알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해당 기관 관계자는 “관련 민원에 대해 학살의 근거가 없다는 답변을 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주장이 계속 제기되는 배경에는 해당 지역의 지하 탐사 사업을 추진해온 업자들 간의 이권 다툼이 놓여 있다고 봤다. 부산 문현동 지하에 일본군이 감춰둔 금괴가 매장돼 있다는 소문이 공공연했는데, 실제 탐사 작업이 이뤄지기도 했고 법적 분쟁이 발생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관련 단체에서는 탐사 사업과는 별개로 일제의 집단 학살 여부에 대해서는 재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설령 탐사 사업으로 인한 알력이 있다 하더라도 학살 여부를 조사하는 것과는 상관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핵심 인사는 “일본군이 문현동으로 징용된 노무자들을 몰살시켰다면 어떻게 인근 주민들이 그 일에 대해 알 수가 있겠느냐”며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조사를 해야 한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뭔가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휴양지로 유명한 중국의 하이난 섬(해남도)에는 ‘조선촌’이라고 불리는 마을이 있다. 일제 강점기 때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이 모여 살았다. 그런데 일본의 패망과 함께 이 마을에서 조선인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현재 이곳에는 한국인이 한 명도 살고 있지 않다. 이 마을에는 ‘천인갱’(千人坑)이라는 곳이 있다. 1000여 명의 조선인이 매장된 장소라 이렇게 불린다고 한다. ‘조선촌 천인갱’은 일본군이 조선인을 집단 학살했다는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일제 때 강제 징용됐던 조선인들이 이역만리 머나먼 땅에서 혹독한 노역에 시달리다 죽음을 맞이한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유족회 관계자는 “해남도에서 벌어진 학살이 부산에서도 똑같이 발생했다고 본다”며 “해남도와 같은 외국도 아니고 우리 땅 부산에서 발생한 일제의 집단 학살을 조사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고 밝혔다. 그는 “지하에 유해가 매몰돼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며 “이번에야말로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일제의 만행을 눈으로 확인하고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의 한을 달래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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