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노조 불법 선거 의혹 수사 지지부진
  • 안성모 기자·신중섭 인턴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5.08.27 11:11
  • 호수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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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고발장 제출됐으나 경찰 수사는 ‘제자리’

전국우정노동조합(우정노조) 노조위원장 금품 선거 의혹에 대한 수사가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일부 조합원들이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58년 우정노조의 정신을 훼손시킨 불법 선거가 흐지부지 넘어가게 생겼다”며 “엄정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3월부터 시작된 수사가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는 데 대한 항의다.

 이번 수사는 지난 3월21일 우정노조 제주지부의 한 대의원이 제주서부경찰서에 고발장을 제출하면서 시작됐다. 노조위원장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 중 한 명인 K씨가 자신을 비롯한 일부 대의원들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내용이었다. 우정노조의 노조위원장 선거는 대의원을 통한 간선제로 실시되는 만큼, K씨에 대한 부정 선거 의혹을 제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며칠 후인 3월23일 K씨는 상대 후보를 불과 7표 차이로 누르고 노조위원장에 당선됐다.

경찰은 4월1일 세종시 우정노조 사무실을 노조위원장 금품 선거 의혹과 관련해 압수수색했다. ⓒ 뉴시스

“불법 선거 수사 유야무야되는 것 같아”

경찰은 K씨와 함께 돈 봉투를 건넨 것으로 알려진 서울의 한  우체국 노조지부장을 3월22일 긴급 체포했고, 4월에는 세종시와 서울시에 있는 노조 사무실 2곳을 압수수색했다. K씨가 의정부 지역의 또 다른 대의원을 만나러 가 경비실에 뭔가를 맡겼다는 사실도 CCTV를 통해 확인했다. 하지만 8월이 끝나가는 지금까지도 수사가 마무리되지 않자, 일부 조합원들이 청와대와 대검찰청, 감사원 등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제주서부경찰서 관계자는 “피의자가 서울에 있기 때문에 수사 진행이 더딘 상황이다. 수사가 9월까지 계속될 수 있다”고 밝혔다.

조합원 김 아무개씨는 “3월에 경찰 수사가 시작되고 언론도 이 사건을 앞 다퉈 보도했지만, 상급 기관인 한국노총에서 ‘일단은 조용히 있어보자’고 했다”며 “조용히 있으니 수사가 유야무야되는 것 같아 다른 조합원들과 함께 여러 차례 진정서를 넣게 됐다”고 밝혔다. 5월25일부터 여러 기관에 진정서를 넣고도 수사에 큰 진전이 없자 김씨를 비롯한 조합원들은 지난 8월17일 한 언론사에 광고 형태로 호소문을 실었다.

김씨는 호소문이 나간 후 K씨 측으로부터 회유성 전화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긴급 체포 및 압수수색까지 했는데 수사가 미지근하다. 이렇게 가다 보면 수사가 흐지부지되고 임기 3년이 지나갈 것”이라며 “이번 부정 선거를 바로잡지 못한다면 다가오는 2018년 선거에서도 금권 선거가 자행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최소한 이번 사태에 대한 사과문이라도 올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우정노조 관계자는 “경찰이 지금까지 압수수색 등 조사를 했지만 큰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금품 살포가 아니라 격려금을 준 것”이라고 해명했다. K씨가 대의원들에게 준 돈은 관례적으로 노조위원장이 각 지부를 방문할 때 지급하는 격려금이라는 것이다. K씨는 지난해 보궐 선거를 통해 이미 노조위원장직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노조위원장은 지역본부를 방문할 때 격려금 명목으로 최대 50만원까지 제공할 수 있고 제주도와 같은 직할본부에는 100만원까지 격려금을 전달할 수 있다’는 우정노조 규약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조 관계자는 “과거 이항구 전 노조위원장도 선거 당시, 3월 선거를 앞두고 2월에 격려금을 지급했다. 그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전례를 들기도 했다.

반면 같은 규약 내에는 ‘누구든 전국우정노조 위원장 선거 입후보자로 등록하는 순간 위원장 직무는 모두 정지되고 그에 따른 권한도 일체 없으며 단지 개인 후보자 신분에 불과하다. 즉 일개 대의원들과 동일한 투표권만 갖는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노조 관계자는 “어쨌든 위원장 임기는 새로운 위원장이 선출되기 이전까지다”며 “법률적 해석은 경찰이 할 것이다”고 밝혔다.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해 사과문조차 없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죄의 유무를 떠나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해 죄송하다고 조합 소식지를 통해 사과문을 전달했다”고 반박했다. 그는 “근소한 차이로 선거 결과가 나오자 일부 불복 세력이 노조를 음해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당선된 K씨와 석패한 L씨가 선거 전후로 깨끗하게 결과를 인정하자고 함께 얘기했음에도 L씨 측 지지자들이 계속 이의제기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혹시나 잡음이 나올까봐 이번 선거는 선관위에서 진행하도록 했고 유명 변호인 3명도 참관했다”며 “오히려 우정노조 역사상 가장 깨끗한 선거였다”고 덧붙였다.

고급 승용차에 운전기사까지

이처럼 선거 잡음이 불거진 배경에는 노조위원장이 되면 받게 되는 혜택이 상당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조합원에 따르면, 우정노조 노조위원장이 되면 제네시스에 운전기사까지 배정된다. 일부 지방본부 위원장들에게도 신형 그랜저 등 차량과 운전기사가 배정된다고 한다. 그런데 대다수 노조원이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른다고 한다. 매일 강도 높은 노동을 해야 하는 일반 조합원과 기사 딸린 고급 대형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위원장 사이에는 괴리감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노조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전 위원장이 제네시스를 리스 계약 해놓은 걸로 안다”며 “계약기간이 끝나면 카니발로 바꿀 예정”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우정노조의 1년 예산은 80억원에 달한다. 3만여 명에 이르는 조합원이 본봉의 1.1%를 조합비로 내고 있는데, 이렇게 모인 조합비가 예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일각에서는 “위원장이 되면 예산을 임의대로 집행할 수 있으니 이에 눈독을 들여 위원장을 하려고 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시각도 있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K씨가 대의원들에게 전달했던 돈도 조합원들이 낸 조합비에서 충당된 것이다. 금품 살포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부정 선거를 넘어 조합원들을 위해 써야 할 돈까지 자신의 선거운동을 위해 마음대로 써버린 꼴이 된다.

이에 대해 노조 관계자는 “위원장이 개인적으로 예산을 쓴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규정에 따라서 처리하고 있다”며 “예산에 대해서는 회계감사도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만약 어긋나거나 수상한 것이 있으면 경찰 조사에서 다 드러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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