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지사 묘역에 묻힌 ‘가짜 독립운동가’
  • 정락인│객원기자 (.)
  • 승인 2015.08.27 11:12
  • 호수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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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가로채 유공자로 ‘둔갑’…아직도 연금 등 각종 ‘혜택’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는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의병 활동과 독립투쟁을 펼쳤던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 212위가 안치돼 있다. 여기에는 13도 의병사령관 이인영, 평민 의병장 신돌석,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 독립군 양성에 힘쓴 신팔균, 친일 외교 고문인 스티븐스를 저격한 장인환·전명운 의사, 서울역에서 사이토 마코토 총독에게 폭탄을 던진 강우규 의사 등이 포함돼 있다. 우리 민족과 역사의 혼이 서린 신성한 곳이다.

이곳에 진짜 독립운동가의 공적을 가로챈 ‘가짜 독립운동가’가 묻혀 있다. 묘지번호 181번 김정수. 독립유공자 공훈록에 보면, 그는 1909년 평안북도 영변 출신으로 항일 무장 독립운동 단체인 ‘참의부’ 등에서 항일투쟁 활동을 한 것으로 나와 있다. 김씨의 후손이 독립유공자로 인정해달라고 신청하자 보훈처는 건국훈장 애국장(현 독립장, 3등급)을 수여했다. 김씨가 1980년에 사망하자 그의 유해는 지금의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됐다.

그런데 2009년에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김정범이라는 사람이 새로 등장했는데, 그는 김정수와 거의 유사한 공적으로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았다. 보훈처는 그의 공적을 평가해 건국훈장 애국장(4등급)을 추서했다. 1899년 평안북도 초산 출신인 김정범은 ‘김정수’와는 전혀 다른 인물인데 같은 공적을 갖고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았다. 둘 중 하나는 가짜라는 뜻이다.

누가 가짜고, 누가 진짜일까. 평북 영변 출신의 ‘김정수’가 가짜고, 평북 초산 출신의 ‘김정범 선생’이 진짜 독립운동가다. 가짜 김정수가 김정범 선생의 공적을 가로채 1968년 훈장을 받았고, 보훈처는 그로부터 41년 만인 2009년에 김정범 선생에게도 훈장을 추서했다. 보훈처는 동일한 공적에 ‘이중 포상’을 한 셈이다.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81번에 있는 김정수의 묘. ⓒ 정락인 제공

다른 인물, 같은 공적으로 ‘이중 포상’

김정수가 가짜라는 근거는 무엇일까. 김정수와 김정범 선생의 공훈록을 보면 두 사람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근거가 중복된다. 예를 들어 동아일보 ‘1933년 2월8일자’와 ‘독립운동사 사료집 제14집 913면’ 기록으로 보아 같은 인물이 아니라면 겹칠 수가 없다. 김정수의 공훈록을 보면 이명(다른 이름)인 ‘정범’으로 활동했다는 내용이 있지만, 이에 대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김정범 선생의 공적을 가로채기 위해 ‘정범’이라는 이명을 등장시킨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당시 동아일보 기사를 확인해보니 제목이 ‘참의부원 김정범 공판’으로 돼 있었다. 김정범 선생이 일본 경찰에 체포된 후 재판에 넘어가 검사가 10년 징역을 구형했다는 내용이다. 이 기사에서 주목할 점은 ‘김정수’라는 이름은 전혀 거론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판은 실명으로 하기 때문에 ‘김정수’를 ‘김정범’으로 잘못 적은 것도 아니다.

앞서 나온 동아일보 ‘1932년 10월1일자’ 관련 기사에도 ‘김정범 선생’의 실명을 싣고 독립운동을 하다 체포됐다고 나와 있다. ‘김정수’라는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 그가 이명으로 활동했다면 재판 기록 등에는 관련 내용이 기록돼 있어야 하지만, 그런 사실이 전혀 없다. 이번에는 두 사람의 사진을 비교해봤다. 독립운동가 공훈록에 있는 ‘김정수’와 ‘김정범 선생’의 사진을 비교하면 한눈에 봐도 확연하게 다른 사람이다.

김정수는 또 다른 가짜 독립운동가와도 깊게 연결돼 있다. 지난 1998년 국가보훈처는 애국지사 묘역에 묻혀 있던 가짜 독립운동가 ‘김진성’을 파묘하고, 그 자리에 진짜 독립운동가인 ‘김진성 선생’을 안장했다. 가짜 김진성이 애국지사로 둔갑한 것은 1968년이다. ‘김재원’이라는 여인이 자신의 아버지가 항일 독립운동을 했다며 독립투사로 지정해달라고 했고, 정부는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1950년에 사망한 가짜 김진성은 이와 함께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으로 이장됐고, 유족에게는 매달 연금이 지급됐다.

국가보훈처는 ‘진짜 김진성’의 후손이 나타나자 1998년 묻혀 있던 ‘가짜 김진성’을 파묘한 후, 그 자리에 진짜 애국지사인 ‘김진성 선생’을 안장했다. ‘가짜 김진성’이 ‘진짜 김진성 선생’의 공적을 가로챘던 것이다. 이로써 진짜 ‘김진성 선생’은 48년 만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됐다.

어쩌다 가짜가 진짜로 둔갑한 것일까. 한국과 중국의 외교 관계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1946년 김진성 선생이 중국으로 건너간 후 한·중 사이에는 국교가 없어서 선생은 물론 자손들도 한국에 들어올 수 없었다. 그러다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뤄지면서 왕래가 시작되자 이듬해인 1993년 9월 선생의 장남 김세걸씨가 국가보훈처에 부친의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가짜의 실체가 드러났다.

이미 누군가가 부친의 공적을 가로채 훈장을 받아갔던 것이다. 그게 바로 ‘가짜 김진성’이었다. 대개의 가짜는 호적을 위·변조해 실제 인물과 똑같거나 혹은 비슷하게 만든 후 여기에 애국지사의 항일투쟁 공적을 가로채 독립유공자로 둔갑하는데, 가짜 김진성도 이와 비슷한 방법을 썼다. 중국이나 북한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의 경우 기록이나 후손들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가짜 김진성과 김정수는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두 명의 가짜는 형제 관계다. 가짜 김진성의 묘비 뒤에 조카로 기재돼 있는데, 가짜 김정수의 묘비에는 이 세 사람이 아들로 올라가 있다. 그러니까 가짜 김진성(1913년생)은 가짜 김정수(1909년생)의 동생이었던 것이다.

김정수의 실체를 처음 알게 된 사람은 진짜 김진성 선생의 장남 김세걸씨다. 그가 우연히 ‘김정수’ 묘비 뒤를 봤더니 가짜 김진성의 조카들이 여기에는 ‘아들’로 올라가 있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김세걸씨가 묘비 관리원에게 “여기에 제사 드리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어봤더니 “여기서도 제사 지내고 저 위에 가서도 지내더라”는 말을 듣게 된다.

김세걸씨가 국가유공자 공훈록에 올라 있는 김정수의 공적을 보니 김정수는 ‘정범’이라는 이명(다른 이름)으로 활동했다고 나와 있었다. 그때서야 ‘김정수’가 ‘진짜 김정범 선생’의 공훈을 가로챘다는 사실을 알게 됐던 것이다.

이에 대한 김정수 유족의 입장은 무엇일까. 서울 은평구에 있는 김씨 장남 집에 전화해보니 ‘없는 전화’라고 나왔다. 기자는 지난해 11월18일쯤 김정수의 미망인 성 아무개씨와 이 전화로 통화했었다. 그 이후 전화번호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 당시 성씨와의 전화통화에서 남편인 김정수가 ‘김정범’이라는 이름으로 독립운동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성씨는 “글쎄, 모르겠다. 나는 뭘 모르니까는 그때는 이름을 하루 열두 번도 더 바꿨다고 그러더라”며 남편의 독립운동 사실에 대해 확실하게 답변하지 못했다. ‘김정수가 항일투쟁을 한 것이 맞느냐’는 질문에는 “중국에서 했다. 중국”이라고 답변했다. 자신의 세 아들이 조카로 묘비에 올라 있는 ‘김진성’의 존재에 대해서는 “모른다. 내가 뭐를 아느냐, 아무것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 김정수와 김정범 선생의 공훈록에 같은 공적으로 올라 있는 동아일보 1933년 2월8일자 기사. 김정수(왼쪽 사진)와 김정범 선생의 실물 사진. ⓒ 정락인 제공

가짜에게 매달 수백만 원 보훈연금 지급

성씨는 지난해 12월22일 사망했고, 현재는 현충원에 있는 가짜 독립운동가이자 남편인 김정수와 합장된 상태다. 당시 성씨와의 대화는 녹취가 된 상태이며, 고령이었지만 목소리는 또박또박했다.

가짜 독립운동가 김정수는 35년 동안 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됐을 뿐만 아니라 유족에게는 매달 200만원 넘는 독립유공자 보훈연금이 지급되고 있다. 김정수의 경우 미망인 성씨가 사망하면서 연금은 아들에게 승계됐다. 연간으로 따지면 2400만원이 넘는다. 여기에다 취업, 교육, 공공시설과 의료 등 각종 혜택을 받고 있다. 독립유공자로 등록된 1968년부터 받고 있으니 돈으로 단순 환산해도 엄청나다.

국가유공자의 심사와 서훈, 연금 지원 등을 관리하는 국가보훈처는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김진성 선생의 장남 김세걸씨가 수차례 관련 민원을 제기하고, 보훈처에 직접 전화해서 이런 사실을 정확히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그런데도 보훈처는 그때마다 ‘확인 중’이라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진짜에게 훈장을 줬다면 가짜의 서훈은 취소하고, 현충원에서 파묘하는 게 맞는데도 보훈처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이다.

김세걸씨는 지난 3월 보훈처에 “잘못된 가짜 독립유공자 김정수의 묘를 파묘하고 국민의 혈세로 받아간 포상금을 국고에 회수해야 한다”는 내용의 민원을 접수했다. 이에 대해 보훈처가 약 한 달 후에 보낸 답변에는 “현재 경찰청·국가기록원 등 관계 기관과 협조하여 김정범과 김정수의 활동 기록을 비교 검토하고 있으며, 제안자(민원인)가 제출한 자료를 면밀히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세걸씨는 “지금까지 보훈처에 수차례 민원을 제기해서 가짜 독립운동가가 애국지사 묘역에 묻혀 있는 것을 파묘해야 한다고 했고, 더 이상의 세금 낭비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보훈처는 잘못을 바로잡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며 씁쓸해했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다. 언제까지 가짜 독립운동가를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하고, 국민 혈세로 후손에게 연금까지 줘야 하는 것일까.

 

5명의 독립운동가 중 2명이 ‘가짜’ 

‘가짜 독립운동가’는 ‘김진성-김정수 형제’가 끝이 아니다. ‘3대 5명’이 독립유공자로 올라 있다. 이 중 1명(김진성)은 가짜로 판명돼 파묘됐고, 1명(김정수)은 여러 근거를 종합하면 가짜가 확실하다. 이렇게 되면 5명 중 2명이 가짜다. 김정수의 할아버지 김낙용(1860~1905년), 김정수의 아버지 김관보(1882~1924년), 김정수의 큰아버지 김병식(1880~미상) 또한 가짜 독립운동가일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김정수의 공훈록에 보면 그는 조부인 김낙용이 1919년 3·1운동 때 체포돼 옥사하자 부친 김관보는 친형인 병식과 함께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한 것으로 나와 있다. 김관보 형제는 이런 사실이 일본 경찰에 탐지되자 1920년 봄 만주로 망명했다고 기록돼 있다.

그리고 김정수는 2년 후인 1922년 5월 부친 김관보를 쫓아 만주로 망명해 함께 독립운동을 한 것으로 나와 있다. 김정수가 가짜라면 함께 독립운동을 했다고 한 부친의 독립운동 사실도 거짓일 확률이 높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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