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회장, 경복궁 한옥호텔 꿈 정말 버렸나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5.08.27 11:21
  • 호수 13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호텔 대신 ‘한국형 롯폰기 힐스’ 조성 발표에도 미련 남아

경복궁에서 인사동 방향으로 걸어가다 보면 왼편으로 높은 담장이 길게 이어진다. 한때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로 사용됐던 곳이다. 삼성그룹은 1997년 이 부지의 개발을 추진하다 포기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2008년 삼성으로부터 이 땅을 2900억원에 인수해 7성급 한옥호텔 건립을 추진했다. 하지만 한옥호텔 예정지 주변에는 3개의 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현행법상 학교 주변 200m 이내에 호텔 등을 지을 때는 관할 교육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서울중부교육청은 대한항공의 요청을 거부했다. 한진그룹은 2010년 4월 중부교육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이때가 2012년 6월이다.

특급 호텔 건립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지자 조 회장은 법 개정을 추진했다. 호텔 건립에 호의적인 문화체육관광부를 통해 관광진흥법 개정 로비를 벌였다. 정부는 2012년 10월 ‘유해 시설이 없는 관광호텔은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에 지을 수 있다’는 취지의 관광진흥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야당과 시민단체에서 거센 반발이 이어졌다. 야당 일각에서는 관광진흥법 개정안을 ‘대한항공법’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진그룹은 8월18일 경복궁 한옥호텔 대신 한국형 문화체험공간을 건립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조양호 회장이 숙원 사업을 포기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일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조 회장은 2013년 8월 청와대 간담회에서 특급 관광호텔 건립 규제 완화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박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관광진흥법안이 통과되면 2조원 규모의 투자와 4만7000여 개의 고용이 촉진된다”며 관련법 개정을 촉구했다. 2014년 3월에는 학교 주변 호텔 건립 규제를 ‘암덩어리’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조 회장의 숙원 사업이었던 경복궁 한옥호텔 건립도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 발생한 ‘땅콩 회항’ 사건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조 회장의 장녀이자, 그동안 호텔 사업을 총괄해오던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이 구속됐다. 특혜 논란을 빚었던 관광진흥법 개정안도 여러 가지 이유로 통과가 지연됐다. 결국 조 회장은 경복궁에 특급 호텔을 건설하겠다는 꿈을 접었다. 한진그룹은 8월18일 광화문 정부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 자리에 한옥호텔 대신 한국형 문화체험공간인 ‘K-익스피어런스’를 지을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K-익스피어런스는 지하 2층, 지상 4~5층 규모로 2017년까지 1차 공정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조 회장이 7년여 간 공들여온 탑이 와르르 무너진 것이다. 재계에서는 조 회장이 특급 호텔 건립의 꿈을 완전히 접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때 헌법소원까지 제기할 만큼 애착을 보였던 사업을 쉽게 포기하겠느냐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계류 중인 관광진흥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부지의 40% 정도는 호텔 건립이 가능한 상대정화구역으로 바뀌게 된다”며 “우선은 여론을 의식해 문화공간을 건립하고, 나중에 호텔 건립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8월18일 진행된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도 “정말 호텔 건립을 포기한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브리핑에 참석한 한진그룹의 한 임원은 “현재로서는 호텔 건립 계획이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한진그룹 측도 “호텔 건립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현실적인 여건상 호텔 건립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문화체험공간으로 변경한 것”이라면서 “숙박시설을 지을지 여부는 나중에 가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조양호 회장이 호텔 사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 관계자는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호텔업의 경우 영업이익은 20~30%, 순이익은 10% 전후다”며 “웬만한 기업의 영업이익률이 5% 전후임을 감안하면 수익률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재계가 최근 경쟁적으로 호텔 사업에 욕심을 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특히 재벌 계열 호텔의 경우 어느 정도 자가발전이 가능하다. 계열 회사나 거래처에서 나오는 수요로도 충분히 수입을 낼 수 있기 때문에 경쟁적으로 호텔 사업에 뛰어드는 것이다.

지난해 4월2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주민센터 앞에 모인 경제정의실천연합 도시개혁센터와 녹색연합 등 4개 시민단체 회원들이 ‘재벌 특혜를 위한 정부의 편법적 호텔 건립 추진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10대 그룹 중 호텔 안 가진 곳은 두산이 유일

실제로 10대 그룹 중에서 현재 호텔을 소유하지 않은 곳은 두산이 유일하다. 유통업계 맞수인 롯데와 신세계그룹이 우선 눈에 띈다. 롯데그룹은 현재 특1급 호텔 두 곳을 보유하고 있다. 먼저 서울 중구에 호텔롯데가 있다. 기존 반도호텔을 인수해 그 자리에 지금의 호텔을 지어 1979년 첫손님을 받았다. 롯데그룹은 또 1988년부터 서울 송파구에 롯데호텔월드를 운영해 오고 있다. 이들 호텔의 객실 규모는 모두 2000실이 넘는다. 특1급은 아니지만, 2009년에는 마포 공덕동에 롯데시티호텔도 오픈했다.

신세계그룹도 두 곳을 가지고 있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웨스틴조선호텔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식 호텔이다. 조선총독부 철도국이 1914년 건설한 ‘조선호테루’가 전신이다. 1983년 삼성그룹이 인수한 데 이어 1991년 계열 분리된 신세계그룹이 1995년 인수해 지금까지 운영해오고 있다. 서울 서초구에 JW메리어트서울호텔도 있다. 1970년대 초반 신선호 율산그룹 창업주가 보유해오다 통일교를 거쳐 신세계그룹이 2012년 인수했다.

SK그룹도 쉐라톤그랜드워커힐과 W서울워커힐 두 곳을 운영 중이다. 쉐라톤그랜드워커힐은 당초 관광공사에서 운영하던 것을 1973년 SK그룹(당시 선경그룹)에서 매입했다. 다른 호텔과 달리 도심에서 떨어진 아차산 자락에 있다. 이런 지리적 요건을 이용해 리조트호텔 형식을 취하고 있다. SK그룹은 2004년 쉐라톤그랜드워커힐 인근에 W서울워커힐을 추가로 오픈했다.

GS그룹은 서울 강남구에 그랜드인터컨티넨탈서울과 코엑스인터컨티넨탈서울을, 한화그룹은 서울 중구에 서울플라자호텔을 각각 운영하고 있다. 현대산업개발그룹은 서울 강남구에 파크하얏트서울을 소유하고 있으며, 2013년 부산에도 파크하얏트부산을 개관했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인수한 삼성동 한전 부지에 업무시설(본사 사옥)과 호텔 등이 포함된 GBC를 2020년까지 건립할 예정이다.

삼성그룹은 최근 전 방위적으로 호텔 건립에 착수했다. 삼성화재는 2011년부터 서울 인사동에 비즈니스호텔 건립을 추진 중이다. 대성산업 안국동 사옥을 1400억원에 매입했다. 하지만 서울시가 개발을 반대하고 있다. 해당 부지는 현재 인사동길 초입에 위치해 있다. 14층 규모의 건물 높이가 인사동길 특유의 경관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호텔신라도 2011년 이부진 사장 주도로 호텔신라의 증·개축을 추진해왔다. 4층 높이의 호텔과 3층 높이의 면세점, 근린공원 등을 조성하는 것이 골자다. 장충체육관 주변에 위치한 건물과 부지도 잇달아 매입했다. 대로변 3~4층 건물은 이미 세입자 이주까지 마친 상태다. 호텔신라 측은 이 건물을 허물고 전통 호텔로 재개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서울시가 현재 호텔 건립을 반대하고 있다. 서울시는 2012년 전통 호텔 신축 계획안을 반려한 데 이어, 2013년 7월에는 개발 예정지가 위치한 남산자연경관지구의 건축 규제 완화 결정안을 보류했다. 이로 인해 호텔 증·개축 계획은 계속 연기되고 있다.

제일모직이 용인 에버랜드 내에 건립 중인 리조트형 호텔은 순항 중이다. 지난 7월 용인시로부터 승인을 받아 지하 4층, 지상 8층 규모의 호텔 건립에 나선 상태다. 제일모직은 2017년까지 우선적으로 호텔을 짓고, 쇼핑시설과 생태공원(에코파크), 아쿠아리움 등으로 확대해나갈 예정이다.

현재 에버랜드 주변에는 호텔이나 쇼핑시설이 전무하다. 유커(중국인 관광객)를 포함한 외국인 관광객이 해마다 에버랜드를 찾지만 대부분 ‘당일치기’다. 에버랜드 내에 호텔이나 쇼핑시설을 건립하면 적지 않은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을 것으로 회사 측은 기대한다. 제일모직의 한 관계자는 “호텔이 들어서면 당일치기에서 체류형 관광으로 전환이 가능하다”며 “오랜 기간 준비해온 사업인 만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화그룹이 운영 중인 서울 중구 소공로의 더플라자 호텔(위 사진)과 신세계그룹의 웨스틴조선호텔. ⓒ 시사저널 최준필

삼성그룹, 에버랜드 안에 호텔 개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최근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주총회를 통해 합병을 승인받았다. 9월에 합병회사가 출범할 예정이다. 이 회사는 향후 삼성의 새로운 지주회사 역할을 맡게 된다.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를 앞당기기 위해서라도 주변 개발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앞서의 관계자는 “제일모직은 현재 에버랜드 주변에 400만평 규모의 토지를 보유하고 있다”며 “개발을 마친 곳은 100만평 정도이기 때문에 나머지 땅도 얼마든지 개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땅이 개발되면 결과적으로 합병 법인의 최대주주인 이 부회장의 주식 가치가 크게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광수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통합 삼성물산이 출범하면 제일모직이 보유한 부지에 대한 상업적 개발이 빨라질 전망”이라며 “삼성물산의 주택 개발 사업과 시공 역량을 활용한다면 보유 부동산 가치의 상승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