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주하던 힐러리, 뒤돌아보곤 ‘흠칫’
  • 김원식│미국 통신원 (.)
  • 승인 2015.08.27 11:30
  • 호수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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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돌풍 일으키는 샌더스의 저력

“표현의 자유가 미국 정부를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자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2016년 미국 대선 민주당 후보 경선에 뛰어들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73·버몬트 주)이 8월15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말이다. 한마디로 모든 것에 대해 자유를 강조하는 미국이지만 대통령 자리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일침이다. 기업이나 거대 재력가들의 후원금 모금을 통한 돈 선거로 귀결되고 있는 미국 대선에 대한 정면 비판이며 자신은 다르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샌더슨 돌풍’은 후원금 모금 과정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 의원이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 AP 연합

40만명 후원자 중 ‘개미’가 99%

그는 지난 4월2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후 1500만 달러(177억원)의 후원금을 모금했다. 같은 기간 민주당의 대선 선두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모금한 4500만 달러(591억원)의 3분의 1 수준이다. 그에게 후원금을 낸 40여 만명의 지지자들 가운데 고액 후원자는 거의 없다. 99%가 250달러(29만원) 이하이며, 1인당 평균 34달러(4만원)를 후원했다. 이는 샌더스의 인기가 일회성이 아니라 ‘풀뿌리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탄탄한 조직력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자부하면서 “모든 수입의 99%는 상위 1%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다소 과격한 구호를 앞세우며 미국 사회의 근본적인 개혁을 강조하는 정치 노선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샌더스는 1981년이 되어서야 버몬트 주의 가장 큰 도시인 벌링턴 시장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불과 10표 차로 당선되면서 정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 이후 샌더스는 발로 뛰는 서민 친화적인 진보 정책을 펼치며 무려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시장·하원의원·상원의원을 두루 역임하면서 공화·민주 양당 체제가 근간을 이루고 있는 미국 정치사에서 유례없는 ‘무소속 신화’를 일궈냈다. 다소 보수적 색채가 강하다고 할 수 있는 버몬트 주에서 신화를 써가며 이제는 대선 후보로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선거 때만 반짝 나타나는 후보가 아니라 발로 뛰면서 현장을 누비는 정치인으로 행동해왔기 때문이다. 밤늦게까지 시장실로 걸려오는 민원 전화를 직접 받아 처리하는 등 일중독 시장으로 통했으며, 민원 현장에 자신이 직접 나가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의 인기는 폭발했다. 현장 미팅을 워낙 자주 개최하다 보니 샌더스는 시장이나 상원의원이 아니라 그냥 ‘버니’라는 이름으로 불릴 정도로 버몬트 주민들의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탄탄한 지역적 기반을 가진 샌더스가 2016년 미국 대선에 출마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발로 뛰는 우리 ‘버니’가 드디어 대선에 나왔다”고 환호하는 버몬트 주민들이 미국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힘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 의원이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 AP 연합

트럼프와 샌더스 돌풍은 동전의 양면

샌더스는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여러 공약을 발표하면서 가히 급진적이라고 불릴 만큼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고 있다. 근본적인 세제 개혁과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소득 재분배, 인종차별 철폐와 국영 건강보험 도입, 대형 금융기관 해체, 선거비용의 국가 부담 등이 핵심이다. 자유 시장 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급진 사회주의자의 주장 그 자체다. 샌더스는 공화당이나 민주당은 껍데기만 다를 뿐 모두 부유층을 위한 정당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그는 “무소속 의원이라는 것은 극우 공화당과 중도쯤 되는 민주당 사이에서 그 중간쯤 되는 의견을 내는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나름 분명한 노선을 내세운 샌더스는 대선 출마 선언 이후 인기가 치솟고 있으며, 이제는 힐러리 클린턴을 정면으로 위협하고 있다. 출마 초기 10%대에 불과하던 지지율은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40%에 근접할 만큼 뛰어오르고 있다. 반면 한때 60%를 넘나들던 힐러리의 지지율은 50% 아래로 곤두박질했다. 지난 7월1일, 위스콘신 주에서 열린 연설회에 1만명이 넘는 지지자를 불러모아 위력을 보여줬던 샌더스의 인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이게 그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샌더스 돌풍은 현실을 모르는 ‘포퓰리즘’이라는 것이다. 대형 은행 해체나 국유화를 주장하는 것은 현실을 도외시한 발상일 뿐이라는 얘기다. 쉽게 말해 발로 뛰는 노력으로 미국의 한 주에서는 빛을 발해 인기를 얻을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대통령이 이러한 정책을 추진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어찌 보면 공화당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와도 일맥상통한다는 것이 비판론자들의 주장이다. 즉, 트럼프가 멕시코 이민자들을 성폭행범에 비유하는 막말을 해가면서도 인기를 유지하는 것이 공화당의 주류를 이루는 극보수 백인들의 시원함을 긁어주듯이, 1%의 부유층 타파를 외치고 있는 샌더스의 인기도 중산층 이하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로 극단적인 두 인물이 예상외로 양대 진영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미국 사회에 내재한 갈등을 반영한 것일 뿐, 실제로 미국 대통령으로 선택되는 데까지는 이어지지 못하리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이런 전망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든 샌더스든 돌풍의 끝이 아직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 지금 미국 대선판이다. 이 바람에 공화당에서 유력 주자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됐던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존재감이 없어졌다. 대세론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했던 힐러리 클린턴은 샌더스 돌풍에 이제 휘청거리는 처지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어쩌면 대선판을 다시 짜야 할 만큼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인 게 사실이다. 하지만 샌더스가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되지는 못할지라도 그의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 미국이 직면한 문제점이 여과 없이 노출되는 것도 이번 미국 대선이 가져다주는 또 다른 볼거리다. 뿌리 있는 ‘샌더스 돌풍’이 나름의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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