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와 여우의 얼굴 가진 예리한 군인
  •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sisa@sisapress.com)
  • 승인 2015.09.01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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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함 속에 숨겨진 강함 유감없이 발휘한 김관진 실장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해인 재작년 10월, 장경욱 기무사령관이 전격적으로 경질되었을 당시 언론의 시선은 온통 김관진 국방부장관에게로 쏠렸다. 부임한 지 6개월 만에 기무사령관이 경질되면서 기무사의 2인자인 참모장부터 주요 처장급 간부들이 모조리 쫓겨났다. 이런 초유의 사태는 장 사령관이 김관진 국방부장관의 문제점을 청와대에 보고한 데 대한 보복의 결과라는 시각이 팽배했다.

이 사건 직후 국회 국방위에 출석한 김 장관은 “자질에 문제가 있었다”는 이유로 기무사령관을 경질한 이유를 댔다. 이에 대해 경질된 장 사령관이 발끈했다. “기무사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국방부에 문제점이 있으면 국군통수기구에 이를 보고하는 건 당연한 임무라는 이유에서였다. 게다가 장 사령관은 당시 남재준 국정원장의 후원을 받아 등용된 인물로서 아무리 뚝심이 센 김 장관이라도 함부로 장 사령관을 경질할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그 충격은 더 컸다. 그러나 김 장관의 시각은 “조직의 문제를 밖에 가서 부정적으로 퍼뜨리는 건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상대가 비록 청와대라도 이 원칙은 굽힐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오른쪽)이 8월21일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경기도 용인의 제3야전군 사령부를 방문해 우리 군의 대응책 및 북한군의 동향 등에 대해 보고를 받고 있다. © 청와대 제공

북에 단호하고 거침없는 태도, 대통령 호감 사

이렇게 보면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김관진 국방부장관이 청와대 의중에 호락호락하지 않은 인물로 인식할 만도 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군단장-합참의장으로 출세가도를 달린 과거 정부 사람인 데다 박근혜 정부와 정치적 인연도 없다. 단지 현 정부의 첫 국방부장관으로 발탁된 김병관 후보자가 도덕성 문제로 낙마함에 따라 이명박 정부 마지막 국방부장관으로 인수·인계를 준비한 채 이미 짐을 싸고 있던 김 장관은 다시 현 정부의 첫 국방부장관이 되었다. 그렇듯 뜻하지 않게 붙들어 앉힌 지 6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 기무사령부 초토화라는 초유의 사태가 터진 것이다. 김 장관은 합참의장 재직 시절에 국방부장관으로 모셨던 김장수 현 주중대사가 당시 청와대 안보실장으로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도 거침없이 자신의 소신을 관철했다.

군 인사에서도 과거 독일 육사 출신 후배들을 요직에 등용하고 자신의 측근을 육군 인사를 좌우할 수 있는 요직에 등용해 군 내부에서도 잡음이 일고 있던 터였다. 이로 인해 군 안팎에서 견제를 받던 김관진은 정치적 반대자를 제압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청와대 안보실장으로 박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을 구현하는 상징이 되었다. 더구나 판문점에서 남북 합의서를 체결한 국민적 영웅으로 부각되는 지금의 상황은 이전에 상상하기 힘든 이례적인 현상이다. 정치적 반대자에게 가차 없는 응징을 하는 냉혹한 권력자의 얼굴을 가졌는가 하면, 정치적 색깔이 전혀 다른 노무현·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을 상대하면서 생존할 수 있었던 특유의 유연함과 친화력은 매우 인상적이다. 김 실장을 경험한 세 명의 대통령은 모두 김 실장에 대해 설명하기 어려운 감명을 받았다. 합리적이면서도 유연한 그의 풍모에 대통령들은 녹아내렸다.

예전의 밋밋한 한국군 군복이 지금의 얼룩무늬 군복으로 바뀐 것도 김 실장이 육군본부에서 기획관리참모부장으로 재직할 당시의 작품이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과감히 바꾸고 사태를 자신이 직접 주도하는 과단성은 현역 시절부터 이어진 김관진 스타일이다. 박 대통령이 김관진을 안보실장으로 전격 발탁한 계기는 지난해 3월 말 서울 상공에 출몰한 북한 무인기에 대한 국방부의 과감한 대응이었다. 무인기 출몰 초기에 국정원·기무사·경찰 등이 참여하는 합동심문조의 1차 조사 결과는 북한 무인기가 “심각한 위협이 아니다”였다. 그러나 국정원이 주도한 2차 조사에서는 이 무인기가 심각한 위협으로 그 성격이 변경되었고, 이를 청와대가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이런 국정원 조사 결과에 대해 김관진 당시 국방부장관은 언론에 그 사실이 보도될 때까지도 “국정원 조사 결과를 전혀 통보받은 바 없다”며 선을 그었다. 이때 김장수 안보실장은 무인기가 심각한 위협이 아니라는 의견에 무게를 싣고 미온적으로 대처한 데 반해 국방부는 언론에 무인기에서 촬영한 청와대 전경 사진이 보도된 이후 신속하게 강경 모드로 전환했다. 북한에 대한 단호하고 거침없는 태도가 박 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매우 인상적으로 비쳤다는 게 당시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그해 6월 박 대통령은 남재준 국정원장에 대해 서울시 간첩 증거 조작의 책임을 묻고, 김장수 실장에게는 무인기 당시의 미온적 사태 처리에 대한 책임을 물어 경질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 주체는 청와대, 통일부는 보좌관 불과”

이번 판문점 남북 회담에서도 스스로 국면을 주도하고 돌파하는 김관진 스타일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북한과의 협상 경험이 없는 김 실장이 홍용표 통일부장관을 동반해 회담장에 나갔을 때 회담 결과를 발표하는 당사자는 청와대가 아닌 통일부가 될 것이라고 언론은 예상했다. 이 보도가 나가자 청와대는 발끈했다. 즉시 통일부 대변인이 청와대에 불려가 고강도 조사를 받고 발표 주체는 통일부가 아닌 청와대라고 정정하는 사태가 판문점 회의가 진행되는 기간에 벌어졌다. 이에 대해 한 통일부 관계자는 “협상 주체는 청와대이고 통일부는 그 보좌관에 지나지 않는다”고 투덜거렸다. 8월25일 합의문이 발표되고 나서도 통일부가 후속 남북 당국자 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무엇을 준비하는지도 전혀 알려진 것이 없다. 거의 모든 과정을 청와대 안보실이 직접 주도하고 있다.

늑대와 여우의 양면을 가진 김관진 실장은 한국의 ‘철의 여인’ 박근혜 대통령과 딱 들어맞는 궁합이다. 한편으로는 유연하면서 북한에 대한 단호하고 가차 없는 응징이라는 강약의 배합은 지금 절정을 구가하고 있다. 이미 박 대통령의 분신이 된 김 실장은 남북 협상에서도 탁월한 강점을 발휘했다. 군사적 지식을 동원해 군사에 대한 비전문가인 황병서와 김양건을 압박해 준전시 체제를 해제하도록 하고 지뢰 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게 만든 것이다. 이 점이 대중을 환호하게 했다. 대북 확성기 방송도 북한의 요구대로 완전히 철거하지 않고 언제든 비정상적인 상황이 벌어지면 방송을 재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음으로써 나름의 평가를 받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의 체면도 살려주는 배려를 병행함으로써 박근혜 정부의 첫 남북 협상이 후한 점수를 받는 결실을 맺었다고 할 수 있다.

합의서 체결 이후 청와대는 “남북 문제는 과속하지 않겠다”며 민간 교류 문제 등은 당분간 미뤄두고 오히려 북한에 대한 공격계획인 ‘작전계획 5015’ 서명, 북한의 사이버 공격, 미사일 발사 시에 비정상적인 상황으로 가정하고 확성기 방송을 재개할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이 역시 한평생을 군인으로 살아온 김관진 실장의 영향권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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