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령의 ‘관심법’에 목숨 달린 2인자
  •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소장 (sisa@sisapress.com)
  • 승인 2015.09.0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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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서, 당·군 장악했지만 앞날 한 치도 예측 어려워

8월22일부터 25일까지 나흘간 진행된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장관, 그리고 북한의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당 대남비서 겸 통일선전부장의 이른바 ‘2+2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지뢰 도발’과 관련해 북한은 간접적으로 유감을 표명해 도발을 시인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도발을 확실하게 시인하고 재발 방지 약속을 명시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발표문 문맥을 들여다보면 나름의 성과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는 게 중론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몇 차례 있었던 북한의 대남(對南) 사과가 대부분 미국이 포함된 유엔군사령부를 향한 것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가 평시 군작전권을 되찾은 이후 북한이 공개적으로 대한민국에 유감 표명을 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번에 선보인 남북 간 안보 관련 최고 핵심 당사자들인 김관진 실장과 황병서 총정치국장의 회담은 ‘준정상급 회담’으로 일컬어진다. 공식 직위 자체도 그렇지만, 각각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의 사실상 특사 자격으로서 전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의 성격상 짧은 시간에도 이 같은 결과를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던 북한 측 회담 대표인 ‘황병서’라는 인물에 대해 주목하는 것은 당연하다.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왼쪽)이 지난해 7월27일 정전협정 체결 61주년을 맞아 김정은 제1위원장과 김일성·김정일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고 있다. © 연합뉴스

당·군·국방위·중앙군사위 요직 장악

황병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지난해 10월4일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일에 전격적으로 남한을 찾은 북한 대표단 3인(황병서·최룡해·김양건) 중 가장 주목을 받은 인물이었다. 북한군 총정치국장인 동시에 북한 군복을 입고 김정은이 사용하던 정부비행대의 특별기를 타고 왔을 뿐만 아니라 호위총국 측근경호팀이 배석했다는 의미에서 ‘북한의 2인자’ ‘최고 실세’로 불릴 만했다. 

현실적으로 황병서가 가지고 있는 직위는 북한 내에서 현재 2인자라고 해도 무방하다. 가장 중요하게는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단 3명인데, 이 중 최고 권력자인 김정은과 북한 외교상의 국가원수로 통하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이 바로 황병서다. 당이 영도하는 북한 체제에서 핵심 인물이라는 것 외에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군내 서열 1위), 최고 권력 기구인 국방위원회 수석격 부위원장(국가 행정 체제의 사실상 제2인자), 군에 대한 실제적 정책 지도 부서인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직책을 모두 갖고 있고, 계급상으로도 원수(김정은) 다음의 차수(대장 위)다.

뿐만 아니라 북한에서 김정은의 최측근 여부를 가늠하는 평가 척도인 김정은 공개 활동 수행 횟수로만 봐도 황병서는 가히 압도적이다. 특히 그는 김정일이 살아 있던 시기에도 당시 중앙당 조직지도부 군 담당 부부장으로서 ‘후계자’ 김정은을 제일 많이 보필했다는 기록을 갖고 있다. 이러한 면은 황병서의 승진 기록을 통해서도 확실하게 입증된다. 황병서는 2010년 9월 김정은이 공개적으로 등장한 제3차 노동당대표자회에서 처음으로 중앙당 후보위원으로 천거를 받았다. 이후 김정은이 김경희·최룡해·김경옥·현영철·최부일 등과 함께 대장(별 네 개) 칭호를 받을 당시 단번에 민간인으로서 군의 중장(별 두 개) 칭호를 받은 몇 안 되는 인물이라는 의미에서 주목할 만하다.

당시 민간인으로서 군 칭호를 받은 인물은 후계자인 김정은과 김정은의 섭정을 담당한 고모 김경희 전 노동당 비서, 그리고 오늘날 황 총정치국장과 ‘2인자 다툼’을 벌이고 있는 최룡해 외에는 없었다. 이런 사실은 당시에 이미 향후 김정은 체제의 군을 담당할 최측근으로서 매우 중요한 인물로 전략적으로 키워졌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는 이후 6개월도 채 안 돼서 김정일 생존 시인 2011년 4월, 중장에서 상장(별 세 개)으로 초고속 진급하며, 중앙당 조직지도부 군 담당 부부장에서 군 담당 책임부부장직을 맡았다.

수령 절대주의 체제에서 2인자는 무의미

김정일이 사망한 이후 3대 권력자가 된 김정은의 최측근으로서 2014년 한 해 동안 김정은의 공개 활동(148회) 중 황병서가 무려 98회를 수행했다는 점은 그의 현재 위상을 짐작하게 한다.  최측근인 것은 물론 2014년 4월 중앙당 조직지도부 군 담당 제1부부장에서 군에 대한 정치지도를 실질적으로 담당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총정치국장에 임명된다. 경쟁자인 최룡해 전 총정치국장을 밀어낸 것이다. 당시 최룡해는 수행 횟수가 47회에 불과했다.

때문에 우리 언론에서 말하듯이 북한 공식 및 비공식 서열상 황병서가 북한 체제의 2인자라는 해석에는 전혀 무리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북한 권력 체제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전문가라면, 그가 영원한 2인자라거나 김정은의 최측근이라는 주장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북한 체제는 첫째도 둘째도 수령 1인 독재 체제로서 과거 고려나 조선 왕조 체제 이상의 ‘수령절대주의 체제’다. 이러한 북한 체제를 유지하는 물리적 힘은 바로 당(조선노동당)과 군(조선인민군)이며 실질적인 물리력은 군에 의한 선군정치에서 비롯된다. 때문에 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군 총정치국장으로서 당과 군의 실질적인 최고 수장인 황병서가 2015년 9월 현재 북한 체제의 2인자인 것은 당연하지만, 김정은 집권 초기만 해도 2인자로 영원할 것 같았던 고모부 장성택이 한순간 숙청된 것처럼 북한 체제는 상당한 변수를 안고 있다.

31세의 어린 나이로 정치적으로 아직 미숙한 김정은은 집권 4년 차인 지금, 자기의 세력 공고화에 적지 않은 힘을 도모해준 리영호 전 총참모장과 장성택 전 당 행정부장, 현영철 전 인민무력부장 등을 숙청하며 당 및 군내 핵심 간부들로부터 리더십을 의심받고 있다. 아직은 북한 체제를 인덕이 아닌 공포로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간부들로부터 진실한 충성심을 이끌어내려는 의지와 능력이 아직은 부족해 보이는 김정은인 탓에 외면적으로 확고한 ‘제2인자’로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황병서조차도 여전히 자신의 미래를 낙관할 수 없는 상태인 것이다. 이게 취약한 북한 김정은 정권의 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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