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체면 세워줘 돌출 행동 막아야
  • 홍현익│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 (.)
  • 승인 2015.09.02 17:4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국 전승절 행사 계기로 한·중 밀착하고 북한은 고립

대북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여세를 몰아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가해 열병식에서 인민해방군의 경례를 받는다. 한국군 대표단도 참석할 예정이다. 반면 북한은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 대신 최룡해 당 비서가 참석하고 북한군도 파견하지 않음으로써 동맹국인 중국과의 관계에서 한국보다 오히려 덜 가까운 이웃임을 노정하게 됐다. 극에 달했던 남북한 긴장 관계가 ‘2+2 협상’ 합의로 일단 완화됐지만, 시진핑 정부가 온 역량을 한데 모으고 있는 9월3일 전승절 행사가 향후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 정세에서 상당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8월22일 중국 여군들이 베이징 외곽에서 9월3일 열릴 전승절 열병식 준비를 하고 있다. ⓒ AP연합

북, 10월 초 장거리미사일 발사 가능성

이번 전승절 행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서방 측 현직 국가수반이고 여성 지도자라는 점에서 가장 열렬한 환영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각에서 동맹인 한·미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기는 하지만, 현재와 미래에 중국과의 우호 관계가 한반도의 운명에 미칠 막대한 영향을 생각하면, 한·미 동맹의 신뢰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한·중 우호 관계를 다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평가가 더 힘을 얻고 있다. 현재 한국의 대중(對中) 수출은 미국·일본 및 유럽에 대한 수출의 합과 비슷하고 금융 부문도 관계가 점점 긴밀해지고 있다. 이번 ‘2+2 협상’을 통해 한반도 안보 위기를 극복하는 데도 미국의 적극적인 군사 지원 못지않게 중국의 북한 도발 억지력이 작동했다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특히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대한 안보 과제들인 북핵 문제 해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북한 급변 사태의 원활한 수습, 평화통일 등에서 중국의 협력은 반드시 확보해야 할 필요조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박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를 설득해 동북아 외교무대에서 평화·공영 주도권을 발휘하고 역내 냉전적 안보 갈등 구조를 지역공동체를 지향하는 기능적 협력 질서로 전환시키는 과업에 탄력을 부여할 예정이다. 연내에 한·중·일 정상회담이 실현되면 불편했던 한·일 관계도 정상화 실마리를 찾게 되고, 박 대통령의 동북아 평화 협력 구상도 어느 정도 본궤도에 진입할 수 있는 기반과 여건이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청와대는 기대하고 있다.

반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뢰 도발과 포 사격으로 군부와 인민들에게 자신이 군 최고사령관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고 한국의 대북 정책을 유리한 방향으로 전환시키겠다는 야심을 이른바 ‘벼랑 끝 전술’로 시도했지만, 총체적으로 보면 전략적·외교적 참패를 맛보았다는 평가가 대세다. 한국 지도부의 단호한 의지, 여야 및 국민 모두의 대북 안보를 둘러싼 단합된 결기, 미국의 한·미 안보 공약 재확인과 압도적으로 우월한 연합 군사력 과시, 북한의 동맹국인 중국의 냉정하고 엄중한 도발 자제 경고 등을 확인하며 상황적 열세임을 실감한 것이다. 그런 탓에 명확한 유감 표명을 에둘러 피하고 확성기 방송의 ‘조건부 중지’를 구차하게 얻어내야만 하는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김정은이 간절히 원했을 전단 살포 중지나 5·24 조치 해제는 의제화하는 데도 실패했다. 문제는 김정은이 오는 10월10일 당 창건 70주년 행사를 성대하게 치러 지도부와 인민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불만을 해소하고 싶은데, 경제가 계속 침체 상태에 처해 있으므로 줄 것이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따라서 김정은의 전략적 선택지는 제한적이다. 먼저 최룡해가 능력을 발휘해 북·중 정상회담을 개최하거나, 당 창건 행사에 총리급 정도의 중국 고위 인사를 참석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북·중 지도부 간의 불편한 관계를 고려할 때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남북 고위급 합의로 개최될 이산가족 상봉에 성의를 보이고, 나아가 당국 회담에서 5·24 조치를 문제 삼지 않으며 한국이 제시하는 3대 소경협 과제인 민생 협력과 인도주의적 지원, 산림 등 환경 협력, 문화재 발굴·보존 등 문화 협력에 호응하면서 북한이 바라는 ‘대통로’로 나아가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10월10일 이전에 북한 주민들에게 제시할 ‘업적’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아베 일본 총리를 활용할 수 있으리란 전망도 있다. 이번 전승절 행사에 참석해 미·일 동맹의 확고한 기반 아래 동북아에서도 고립 탈피를 과시하려 했으나, 아베는 결국 행사 불참을 선택했다. 하지만 아베는 한국과 미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시도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물론 김정은이 아베를 만나려면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한 성의 있는 조사 결과가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가 가장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하는 시나리오는 10월 초에 인공위성을 가장한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해 군사대국의 위용을 과시하는 것이다.

진취적으로 북한 체면 고려하는 전략 필요

문제는 전승절 이후 북한의 움직임에 대한 우리의 대응 전략이다. 먼저 북·중 관계가 정상화 쪽으로 진전되는 것은 우리에게 실보다는 득이 되도록 활용할 여지가 있다.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에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지 않도록 영향력을 행사해줄 것을 요청하고, 북핵 문제 해결에도 좀 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줄 것을 당부할 수 있다. 좀 더 진취적으로 생각해 중국과 공동으로 북한과의 경제 협력 사업을 펼친다면 사업의 안정성이 강화되므로 우리 기업의 이익도 확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한반도 평화 기반을 강화하고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함으로써 통일비용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북·일 정상회담 개최도 감성적으로는 역겨움을 불러일으키지만 우리가 활용할 여지는 있다. 먼저 김정은이 국제 외교무대에 나오게 된 이상 장거리미사일이나 핵실험 또는 대남 군사 도발 등 국제사회의 공분을 유발하는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은 줄어들게 된다. 중·장기적으로 북·일 간 식민 지배 배상금이 합의를 거쳐 경협 사업을 통해 지원된다면, 북한의 경제 기반이 나아져 우리의 통일비용을 줄여주는 효과를 거둘 수도 있을 것이다.

남북 관계가 진행되면서 이산가족 상봉이 합의되더라도 북한이 우주 개발을 위한 평화적 목적을 내세우며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은 남는다. 이 경우 유엔 안보리가 추가 대북 제재를 내놓을 것이고 북한은 이를 빌미로 4차 핵실험을 감행할 것이므로 북한의 핵 실전 능력 보유가 더욱 가까워져 결국 한국이 가장 큰 불이익을 당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박근혜 정부는 이번 ‘2+2 합의’로 마련된 북한 관리·통제 메커니즘을 충분히 활용하고, 진취적으로 북한의 체면을 조금은 고려해줌으로써 김정은 정권이 우리 정부의 평화 공존 및 공동 번영 의지를 믿게 만들 필요성이 있다. 5·24 조치 해제 문제에서 유연성을 발휘한다면 남북 관계 정상화는 물론이고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해 최고 지도자 간 평화통일의 기반 구축에도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