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서초동 핫라인이 사정 작업 주도”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5.09.02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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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민정수석과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 주목

 #1.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임관혁)는 지난 7월29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리솜리조트그룹 본사와 충청도 소재 계열사 등 5곳을 압수수색하고, 이틀 뒤에는 농협은행 본점까지 압수수색했다.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이 자본잠식 상태인 리솜리조트에 1000억원 규모의 특혜 대출을 지시한 정황을 포착했다는 것이다. 하루 뒤에는 농협중앙회로부터 각종 건설공사 용역을 수주하는 과정에서 거액의 자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한국조형리듬종합건축사사무소 등 3곳에 대한 압수수색도 이뤄졌다. 이와 더불어 대한체육회 수사에도 착수했다. 대한체육회 고위 인사들의 공금 횡령에 대한 수사인데, 특히 김정행 회장을 둘러싼 비리에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조상준)는 정준양 전 포스코그룹 회장이 지난 2010년 포스코건설의 인도 제철소 건립 당시 3000억원 규모의 사업을 동양종합건설에 몰아줄 것을 지시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조만간 정 전 회장을 소환조사할 방침이다.

7월13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한 우병우 민정수석(왼쪽 사진).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이 2월11일 서울중앙지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3.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검사 김석우)는 지난 8월27일 KT&G 협력업체로부터 수억 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배임수재)로 KT&G 이 아무개 전 부사장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당시 최고 책임자였던 민영진 전 KT&G 사장이 비자금 조성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을 파악하고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사정 정국은 우 수석과 박 지검장의 합작품”

한동안 뜸했던 검찰 특수수사가 가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6월 30년간 공안통 검사로 활약했던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국무총리로 취임하면서 ‘사정 정국’은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그런데 이번 검찰 수사를 들여다보면 일정한 방향성을 띠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사선상에 오른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을 비롯해 김정행 대한체육회 회장, 정준양 전 포스코그룹 회장, 민영진 전 KT&G 사장 등은 자타 공인 ‘MB맨’들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명박(MB) 정부 사정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에서도 중앙대 비리 사건을 다루면서 MB 정부 시절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을 지냈던 박범훈 전 중앙대 총장을 구속 기소한 바 있다.

MB 정부에 대한 사정 작업의 신호탄은 이완구 전 국무총리 시절 시작된 포스코 비자금 수사였다. 이 전 총리는 지난 3월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사정 정국의 포문을 열었다. 그러나 고강도 사정 드라이브의 실제 기획자는 이 전 총리가 아닌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라는 것이 당시 검찰 안팎의 중론이었다.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 출신으로 특수수사통인 우 수석이 이른바 ‘청와대 문건 유출 파동’으로 수세에 몰린 정국을 반전시키기 위해 MB 정권 비리 척결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야당은 지난 5월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의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기획 사정’에 대한 입장을 듣고자 우 수석에게 출석을 요구했지만, 그는 결국 출석하지 않았다.  

황교안 총리 체제 출범 이후 재개된 이번 검찰발(發) 사정 정국에서도 가장 주목 받는 인물은 단연 우 수석이다. 우 수석은 지난 3월 청와대 민정비서관에서 민정수석으로 승진할 때부터 ‘리틀 김기춘’으로 불렸고, 현재는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입지가 좁아진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을 대신해 청와대 ‘왕수석’으로 통하고 있다. 우 수석은 지난 2월 단행된 검찰 인사를 통해 핵심 수사 라인도 접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시 인사를 놓고 검찰 주변에서는 “우병우의, 우병우에 의한, 우병우를 위한 인사”라는 말이 회자됐다.

우 수석이 주도한 사정 정국의 파트너로는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이 거론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박 지검장이 지난 7월 청와대에 들어가 우 수석과 만났다고 한다”며 “이때를 기점으로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현재의 검찰발 사정 정국은 우 수석과 박 지검장의 합작품이라고 봐야 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특수1·2·3부가 시작한 MB 정권 관련 수사는 7월 이후 본격화됐다.

김수남 대검 차장은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을 진두지휘하면서 차기 검찰종장 후보로 급부상했다. ⓒ 연합뉴스

박성재 지검장, 차기 총장 후보로 급부상

서울중앙지검장과 청와대 간 ‘핫라인’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박성재 지검장 바로 직전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김수남 대검 차장도 핫라인 의혹을 받은 바 있다. 특히 검찰 특수수사 사령부로 불렸던 대검 중수부가 폐지된 박근혜 정부에서 서울중앙지검장의 위상이 높아졌다. 대검에 중수부를 대신할 반부패부가 신설됐지만, 이는 일선 지방검찰청에 대한 지휘·감독·지원 기능만 수행하도록 기능을 제한하고 중수부가 가졌던 수사권은 배제됐다. 직속 부대를 잃은 검찰총장은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로 전락했다. 반면 중수부 폐지 후 신설된 특수4부까지 거느리게 된 서울중앙지검장은 ‘넘버 2’ 이상의 위상을 가지게 됐다. 청와대로서는 실질적으로 수사를 지휘할 수 있는 서울중앙지검장에 신경을 더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의 검찰 상황은 더욱 그렇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임기가 올 12월 초에 끝난다. 사실상 임기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 더구나 새로 법무부장관에 임명된 김현웅 장관은 김 총장보다 사법연수원 기수로 두 기수나 아래다. 이례적으로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 기수가 역전된 것으로, 김 총장으로서는 이래저래 체면을 구긴 상태다. 

김 총장이 ‘지는 해’라면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은 ‘뜨는 해’다. ‘차기 검찰총장 0순위’로 알려졌던 김수남 대검 차장과 함께 강력한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된다. 청와대로서는 이 상황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 충성 경쟁을 유도해 청와대가 원하는 사정 정국의 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득홍 서울고검장도 후보군에 함께 거론되고 있다. 이 고검장은 법무부장관에 오른 김현웅 전 서울고검장 후임으로 내정되면서 차기 총장 레이스에 합류했다. 그는 우 수석과 사촌 동서지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차기 총장 후보군 중 현재 수사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박 지검장이 유일하다. 향후 서울중앙지검의 수사 성과에 따라 차기 총장 레이스는 얼마든지 구도가 바뀔 수 있다. 박 지검장으로서는 청와대의 제안을 뿌리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의 만기친람(萬機親覽)식 국정 운영 스타일로 볼 때 서울중앙지검장과 청와대의 핫라인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김수남 차장의 경우 이번 정부에서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을 진두지휘하면서 차기 총장 후보군으로 급부상했다. 김 차장은 이 사건을 맡았던 수원지검장 재임 당시 검찰 지휘 계통을 뛰어넘어 청와대에 직보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성재 지검장이라고 안 될 게 뭐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우 수석은 (사법연수원) 19기로 다섯 기수나 위인 김진태 총장(14기)이 껄끄러울 수 있다”며 “같은 의미로 우 수석이 차기 총장 기수를 최대한 낮추기를 원한다고 한다. 김 차장과 이 고검장은 16기지만, 박 지검장은 한 기수 아래인 17기다. 지금부터 박 지검장과 손발을 맞춰보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병우 민정수석과 사촌 동서지간인 이득홍 서울고검장도 차기 검찰총장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 연합뉴스

“검찰, 호남 기업들 첩보 방대하게 수집”

이런 상황에서 검찰의 칼끝은 결국 청와대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 검찰발 사정 정국은 내년 4월 총선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야당을 타깃으로 한 검찰의 표적 수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야당은 이미 한명숙 전 총리 유죄 판결(정치자금법 위반)과 권은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기소(위증 혐의) 건을 두고 ‘야당에 대한 신(新)공안 탄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이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친박 실세들에게는 면죄부를 주면서 야당 의원들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총선을 앞두고 흠집 내기에 골몰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검찰은 시사저널이 단독 보도한 ‘2012년 대선에서의 박근혜 비밀 캠프(2015년 5월15일자 ‘박근혜 2012년 대선 불법 비밀 캠프 드러나다’ 기사 참조)’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기는커녕 오히려 무상으로 캠프를 제공한 정 아무개씨에 대해 인지수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씨 측은 무상으로 비밀 캠프를 운영한 친박 관계자들을 민·형사 고소한 상태다. 그러나 검찰은 정씨 측이 불법 대출을 받았다는 혐의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정씨 측은 “고소를 취하하도록 만들기 위해 거꾸로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호남을 지역구로 둔 한 새정치연합 의원은 “검찰이 호남을 기반으로 한 기업들에 대한 첩보를 방대하게 수집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겠는가. 총선을 앞두고 야당 의원들을 먼지 털 듯이 조사해보겠다는 의도”라면서 “차기 검찰총장은 내년 총선은 물론 2017년 대선을 관리하게 된다. 지금부터 입맛에 맞는 총장을 뽑기 위한 사전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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