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달리던 현대차·삼성 휴대전화 ‘비실비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5.09.02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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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경제위기 한국 직격탄…기계·석유화학·철강도 타격

‘중국이 기침을 하면 한국은 독감에 걸린다’는 말이 있다. 최근 중국 증시의 폭락과 성장 둔화 우려로 전 세계 경제가 몸살을 앓고 있다. 신흥국을 중심으로 ‘9월 위기설’까지 나오고 있다. 한국은 특히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다. 1992년 수교 당시 3.5%였던 중국 수출 비중이 지난해 25%대까지 확대됐다. 같은 기간 무역수지는 11억 달러 적자에서 552억 달러 흑자로 전환됐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무역흑자가 471억 달러임을 감안하면, 일본과 유럽연합(EU)에서 입은 적자를 중국을 통해 메워온 셈이어서 최근 상황에 대한 긴장감이 더하다.

국내 증시는 이미 중국발 쇼크로 홍역을 치렀다. 중국 증시가 폭락했던 8월24일 코스피지수는 1800선마저 붕괴될 위기를 맞았다. 유커 덕택에 황제주로 등극한 아모레퍼시픽은 3개월간(8월24일 기준) 16% 이상 주가가 빠졌다. 메르스 사태 이후 회복 기미를 보이던 여행주 역시 하락세로 전환됐다. 국내 증시의 ‘공포 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 지수는 최근 3년 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코스피 한때 1800선 붕괴 위기

NH투자증권은 여행이나 화장품 주식에는 단기적으로 부정적일 수 있지만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제약·바이오, 자동차·타이어, 디스플레이, 반도체, 건설 등의 업종에도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했다. NH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 위안화 가치 절하로 여행주와 화장품주의 하락 폭이 크다”며 “여행이나 화장품은 환율에 민감하지 않다. 특히 화장품은 면세점 가격 메리트가 더 큰 만큼 최근의 주가 하락은 과도하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국내 증권가를 중심으로 ‘중국발 위기’가 계속 회자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당장 중국에 진출해 있는 국내 기업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국내 72개 상장사의 중국법인 매출과 순이익은 지난해 처음으로 감소했다. 매출은 167조8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0.3% 감소했고, 순이익은 6조1000억원으로 16.4%나 줄어들었다.

CJ대한통운이나 현대상선, SK C&C, 삼성물산, 효성 등 운송이나 건설, 소재 관련주들은 비교적 선방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폭이지만 순이익률도 상승했다. 하지만 유통·기계·자동차·IT 업종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유통 분야가 우선 주목된다. 롯데·신세계 등 국내 대형 유통업체들은 2000년대 초부터 경쟁적으로 중국에 진출했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과 현지화 실패로 고전해왔다. 한때 28개까지 몸집을 불렸던 이마트의 중국 점포는 현재 8개로 줄었다. 이마트 중국법인의 매출은 2013년 4370억원에서 3618억원으로 17%나 감소했다. 같은 기간 당기순손실은 525억원에서 926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마트 측은 경영 효율화를 위한 구조조정이라고 설명하지만, 중국 시장 철수 수순이 아니겠느냐는 말도 나왔다.

롯데마트도 현재 169개(2분기 기준)의 해외 점포 중 70%가 중국에 몰려 있지만, 적자 폭이 확대되고 있다. 롯데쇼핑의 중국법인 매출은 2013년 1조5090억원에서 지난해 1조2530억원으로 16.7%나 감소했다. 순손실도 1670억원에서 2040억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기계 분야는 중국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았다. 두산인프라코어는 한때 중국에서 굴삭기 시장 1위를 달렸다. 공장 가동률은 50% 수준까지 유지했지만, 중국의 경기 침체와 현지 업체와의 경쟁 심화로 3년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이다. 2012년까지 2조원이 넘던 두산인프라코어의 중국법인 매출은 지난해 9157억원으로 반 토막 났다. 순손실 규모도 지난해 1012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140% 정도 증가했다. 대부분의 손실이 건설 부문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전자 중국법인은 지난해 59조1785억원의 매출을 기록해 전년(79조5000억원) 대비 25.6% 감소했다. 최근에는 주력 제품인 갤럭시 시리즈가 중국 토종 업체에 밀리면서 점유율 1위 자리마저 내줬다. 삼성SDI·LG이노텍·CJ제일제당·한화케미칼·CJ오쇼핑 등도 매출과 함께 순이익이 동시에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진짜 위기는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다는 것이 일부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현재 상태라면 연간 성장률 7%를 지킬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박형중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하반기에 중국 경제가 안정되거나 회복될 것으로 볼 만한 징후는 여전히 약하다”며 “통화정책 약화는 그 자체로 중국 금융시장 불안이 확대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중국 인민은행은 8월11일부터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를 대폭 하향 조정했다. 불과 나흘 사이에 위안화 가치는 4.4%나 하락했다. 국내 수출 기업은 한국을 바짝 쫓고 있는 중국 기업에 이어 환율 부담까지 떠안아야 할 처지가 됐다. 현대경제연구원이 8월17일 발표한 ‘중국 위안화 평가절하의 국내 수출 파급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원·위안 환율이 5% 하락할 때마다 국내 총수출은 3%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5726억 달러의 총수출을 기록했다. 보고서 내용대로라면 중국 위안화 가치 하락으로 보름여 만에 151억 달러 상당의 수출 피해를 입은 셈이 된다.

8월25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중국 롯데마트 MD 초청 입점상담회에서 관계자들이 상담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위안화 가치 5% 하락 땐 수출 3% 타격

기계산업(5.5%)과 석유화학(-3.7%)의 수출 하락이 우선적으로 우려된다. 기계산업 대표주인 두산인프라코어는 최근 중국법인의 매출 하락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여기에 더해 위안화 가치 하락으로 해외 수출까지 영향을 받을 경우 자회사인 밥캣의 사전 기업공개를 통해 재무구조 개선에 나서려는 계획에 차질이 예상되고 있다.

석유화학업종도 마찬가지다. GS칼텍스와 SK이노베이션,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국내 정유 4사는 최근 저유가의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해에만 2조원가량의 손실을 봤다. SK이노베이션은 37년 만에 적자를 냈다. 올해 상반기에 실적 반전에 성공했지만, 유가 흐름이 녹록하지 않다. 이런 추세라면 또다시 대규모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나오고 있다. 정청래 SK이노베이션 사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실적 호조는 잠깐 왔다 가는 ‘알래스카의 여름’ 같은 것일 수 있다. 다시 도래할 ‘겨울 폭풍’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철강(-2.5%), 자동차(-1.9%), IT(-0.3%) 순으로 피해가 예상된다. 상대적으로 하락 규모는 덜하지만, 철강이나 자동차, IT 분야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세아제강, 동국제강 등 국내 철강업계는 최근 글로벌 공급 과잉과 수입산 철강재 과잉 공급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 현대차·삼성전자 등 국내 자동차와 IT 대표 주자도 최근 중국 업체에 밀려 고전하고 있다.

문제는 위안화 가치 하락이 하반기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천용찬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위안화 약세로 중국의 수출이 증가하면 한국의 수출 역시 덩달아 증가하는 것이 그동안의 구조였다”며 “최근 중간재 자급률이 높아지면서 중국의 수출 증가가 한국 수출을 견인하는 효과는 많이 반감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향후에도 중국 정부는 시장 환율을 반영하기 위해 위안화 가치를 하향 조정할 가능성이 크다. 천 연구원은 “중국 정부가 몇 차례 더 위안화 환율 평가절하 시도를 할 가능성이 크다”며 “원·위안 환율이 1% 추가로 하락할 때마다 국내 총수출은 0.59%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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