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의 막말이 빈말이 아니었어
  • 김원식│국제문제 칼럼니스트 (.)
  • 승인 2015.09.02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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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 대선판에서 ‘대세론’ 굳히는 트럼프

“내 평생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없다.” 지난 8월25일 미국 아이오와 주 더뷰크에 있는 그랜드리버센터에서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를 보려고 몰려온 수천 명의 주민을 지켜보면서 트럼프의 아이오와 주 조직 최고 담당자인 척 로드너가 내뱉은 말이다. 그런데 그가 진짜 놀란 것은 단지 수천 명이 모였다는 사실만이 아니었다. 이들은 장시간 센터 앞에서 기다린 다음 회의실 문이 열리자마자 안으로 들어와 테이블에 앉았고 곧바로 트럼프 측 관계자들이 내준 자원봉사자, 조직 관리자, 선거구 책임자 등 지원 요청서에 앞 다퉈 서명하고 나섰다. 집결한 수천 명의 주민이 트럼프를 만나기도 전에 핵심 선거 조직원 등록부터 하고 나선 것이다.

수십 년을 공화당 소속으로 미국 대선판에서 아이오와 주 조직 총책임자를 맡아온 로드너조차도 이런 현상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는 릭 샌트롬을 비롯한 과거 공화당 대선 예비 주자들의 아이오와 주 조직을 도맡아온 조직의 대부이자 마당발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모두 자신의 픽업트럭을 몰고 일일이 선거구 주민의 집 대문을 두드리며 방문해야 겨우 조직원을 구할 수 있었는데,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은 자신의 상상을 초월했다는 것이다. 로드너는 “과거에는 소총을 가지고 전쟁을 했다면, 이제는 어깨 위에 미사일 발사대가 장착된 상황”이라며 “거기에다 소총을 멘 수많은 자원 입대병이 벌떼같이 모여들고 있다”고 이날의 감격을 표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가 8월21일 앨라배마 주 모빌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 AP 연합

존 케이식·젭 부시 등과 격차 더 벌어져

“저러다 사그라지겠지”라고 다들 평가한 트럼프의 대선을 향한 폭풍 질주는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이미 대세론을 넘어 모든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다른 예비 후보들과의 격차가 오히려 더 벌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8월25일 발표된 한 여론조사 결과는 이런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선이 있는 해 1월에 첫 프라이머리가 열리기 때문에 통상 ‘대선 풍향계’로 통하는 곳이 뉴햄프셔 주다. 이 지역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는 35%의 지지율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2위를 차지한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는 11%에 그쳤고, 대세론을 형성하리라고 예상됐던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7%에 그쳐 이제는 트럼프와 비교조차 되지 않고 있다.

치솟는 지지율에도 ‘반짝 인기’일 뿐 결국 공화당 대선 후보로는 선출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이제는 완전히 바뀌었다. 최근 또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과반이 넘는 57%의 공화당 성향 유권자들이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후보로 절대 지명되지 않을 것 같다’고 전망한 이는 15%에 불과했다. 막말의 대명사로 알려진 트럼프가 막말을 하면서도 인기를 끌어올리는 모습은 이제 더 이상 기현상이 아니라 미국이 마주하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트럼프가 보수 세력의 핵심 방송인 ‘폭스(FOX)’가 개최한 대선 토론회에서 여성 앵커를 ‘월경’에 빗대어 막말을 해도, 또 이를 두고 해당 미디어그룹 회장과 치고받는 난타전을 벌여도 그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다른 후보들이 표를 의식해 가장 조심하고 있는 여성 문제에 관해 성희롱에 가까운 막말을 내뱉어도, 미국에서 대권 향방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을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히스패닉 유권자들을 향해 연일 거센 비판을 쏟아내도, 인접한 멕시코 이민자를 ‘성폭행범’에 비유해도, 이제 그를 막을 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는 미국이 돼버렸다. 오히려 그의 인기는 끝을 모르고 상승하면서 점점 유력 대권 주자 자리를 굳혀가고 있을 뿐이다. 왜 이럴까. 대체 무엇이, 어떤 매력과 힘이 이런 기현상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아니, 이제 더는 ‘쇼맨십’이나 기현상이 아니라 대세론을 뛰어넘는 확고한 현실로까지 자리 잡게 한 것일까.

한때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던 트럼프의 인기와 지지세가 이처럼 대세론으로 자리 잡은 원인은 한마디로 “트럼프는 분명하다(clear)”는 것이다. 8월24일 미국 버지니아 주에서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29명의 지지자가 모여 토론회를 개최했다. 하지만 이 토론회에 참석한 일반 시민 출신 패널들은 원래 전부 공화당 지지자가 아니었다. 이 중 8명은 과거 오바마 대통령을 한 차례 지지한 사람이며, 그 가운데 4명은 두 차례 대선 모두 오바마를 지지한 오바마 열성 팬이었다. 이들이 오바마에서 트럼프로 지지 대상을 바꾼 이유는 “트럼프는 실제로 일자리를 창출한 사람이고, 우리는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필요로 하고 있다”였다. 이들은 “주류 정치인이나 직업 정치인들은 우리가 처한 어떠한 문제도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트럼프는 분명한(Clear) 사람이다”

또 다른 참석자들은 “그는 방송사든 거대 기업이든 누구와의 싸움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어젠다를 만들어내며, 자신의 마음을 바꾸거나 쉽게 사과를 하지도 않는 확신에 차 있는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또 “그게 바로 미국 국민이 느끼는 심정이며, 누구도 우리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지만 트럼프는 우리의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은 사람”이라고 지지 이유를 밝혔다. 참석자 중 단 한 명만이 “그는 엔터테이너이고 그것이 그의 인기도가 폭발하는 이유”라고 밝혔을 뿐, 참석자 모두가 나름으로 트럼프를 지지하는 확고한 논리를 앞세워 그의 인기가 단지 거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쉽게 말해 보수층 지지자들은 트럼프를 보면서 막힌 곳이 뚫리는 시원함과 함께 새로운 비전을 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막말과 기행을 오히려 선명성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이용할 만큼 노련해지고 있다. 8월25일 아이오와 주에서 열린 연설회에서도 그는 평소 앙숙 관계에 있던 미국 내 최대 스페인어 방송사 앵커가 질문을 하려고 하자 바로 자리에서 강제로 쫓아내면서 언론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다시 회견장으로 돌아온 앵커가 트럼프의 멕시코인 이민 반대 정책을 지적하며 “당신은 대체 1900마일이나 되는 멕시코와의 국경에 어떻게 장벽을 세울 것인가”라고 묻자 트럼프는 “그것은 95층 빌딩을 짓는 것보다 훨씬 쉽다”고 되받아쳤다. 앵커가 “왜 미국 출생자에게 시민권을 주는 제도를 반대하느냐”고 또 질의하자, 트럼프는 “미국 시민권을 받고자 단 하루 국경을 넘어와 아이를 낳으면, 우리는 그 아이를 80년 넘게 돌봐야 한다”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기행으로 시작된 그의 행동이 다시 지지자들의 압도적인 환호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외교 관계에 대해서도 그의 막말은 거침없이 쏟아지고 있다. 주요 동맹국인 한국을 향해서도 “미국이 한국을 돕는 것은 미친 짓”이라며 경제적 성장을 이룩한 한국이 미국을 등에 업고 안보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서 “한국 안보는 미국에도 이익이 있다”는 논리적인 설득은 들어갈 공간도 없을 만큼 트럼프의 발언은 미국민들의 가슴을 파고들고 있다.

트럼프 후보의 돌풍에 밀려 맥을 못추고 있는 미국 공화당의 존 케이식(왼쪽)·젭 부시 후보. ⓒ AP 연합

‘트럼프 당선되면 공화당 살아남을까’

끝을 알 수 없는 트럼프의 지지율 상승은 이제 공화당 지도부가 그를 대선 후보로 인정할 것인지 여부를 떠나, 공화당의 존재 자체를 위협할 수준으로 부상하고 말았다. 공화당의 핵심 전략가들은 ‘무소속인 트럼프가 자신의 자체적인 조직 기반으로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과연 공화당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절체절명의 문제를 고민하는 형국에 빠져들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미국 대선판에서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 워싱턴의 한 정치 분석가는 “이제 트럼프의 인기는 대세론도 넘어섰다”고 단언했다. 그는 그 이유를 오히려 미국민의 정치 무관심에서 찾았다. 실제로 각 당의 대선 후보를 결정하는 프라이머리가 펼쳐져도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가장 관심이 집중된다는 아이오와 주만 해도 등록된 공화당 유권자의 20%가량만 투표에 참가하는데, 트럼프에 대한 지지 열기는 이미 이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그는 “트럼프가 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수백 명의 유권자가 트럼프 마크가 새겨진 유세 버스에 몰려들고 있는 이 현상을 보라”며 “이는 본선에서도 이어질 것이며, 결국 트럼프가 백악관 주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에 대한 지지 열기가 일시적 인기 차원이 아니라 이른바 ‘풀뿌리(grassroots)’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되어 민주당 후보와 싸우는 시기가 되면 결국 미국민들도 보수적인 정책을 지지할 것인지, 진보적인 정책을 지지할 것인지로 다시 나뉘게 돼 팽팽한 접전을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렇게 된다면 트럼프가 쉽게 백악관 주인이 되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제 모두가 트럼프에 대한 열광과 지지가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런 돌풍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는 데도 동의하고 있다. 불과 몇 달 만에 바뀌어버린 미국 대선판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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