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vs 플라티니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5.09.02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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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대통령 왕좌는 누구 품에…

 

7월부터 연기는 모락모락 피어올랐으니 아니 뗀 굴뚝은 아니었다. 나올까 말까, 사람들은 궁금해했다. FIFA(국제축구연맹) 대권에 도전할지 말지를 점치는 사람들의 시선은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을 향했다. 이만한 호기도 없었다. FIFA의 부패로 비난을 한 몸에 받았던 제프 블래터 FIFA 회장은 결국 사퇴를 선언했고 새로운 회장을 내년 2월에 뽑겠다고 했다.

FIFA를 둘러싸고 있던 블래터의 끈적끈적한 장막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비집고 들어갈 틈이 생겼고 차기 축구 대통령에 정 회장은 출사표를 던졌다. “저는 한 번만 할 겁니다” “비유럽권을 대표하는 후보가 되겠습니다”. 8월17일 이뤄진 출마 선언은 프랑스 파리의 샹그릴라 호텔에서 이뤄졌다. 그곳은 유럽권을 대표하는 미셸 플라티니 UEFA(유럽축구연맹) 회장의 땅이었다.

차기 FIFA 회장 선거는 정확히 2016년 2월26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다. 이곳은 FIFA 본부가 있는 곳이다. FIFA에 가입된 209개 회원국은 모두 공평하게 1표씩을 행사할 수 있다. 1차 투표에서 3분의 2 이상을 얻은 득표자가 나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당선자가 결정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2차 투표를 실시해 과반을 득표한 후보자가 다음 회장이 된다.

정 회장이 출사표를 던지기 전부터 국내 언론에서는 ‘플라티니 vs 정몽준’의 대결 구도에 집중했다. 우리 입장에서야 FIFA 수장에 한국 사람이 오른다는 게 스포츠 외교사에서 쾌거가 될 것이니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 다만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있다. 한국 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정 회장의 당선이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지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다.

● Europe  “플라티니 당선은 확실, 그의 과거가 문제”

축구의 본고장인 유럽. FIFA 본부도 유럽에 있고 축구의 모든 중심축이 도는 대륙인 만큼 이곳에서 바라보는 판도는 매우 중요하다. 영국 언론들은 플라티니가 6개 대륙 중 유럽·아시아·남미·북중미 대륙 연맹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가디언은 “아시아는 유럽에 의해 투표에 영향을 받아왔다. 게다가 남미와 북중미도 플라티니를 지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아시아를 대표하는 후보인 정 회장에게 뼈아픈 대목이다.

플라티니는 출마 선언을 한 직후 스위스 취리히에서 세이크 살만 빈 에브라힘 알 칼리파 아시아축구연맹(AFC) 회장을 만나 지지를 당부했다. 살만 AFC 회장은 플라티니의 당선을 위해 중요한 사람이다. 가디언은 그의 중요성을 이렇게 표현했다. “살만은 46개국의 표를 좌우할 수 있는 사람이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미러는 플라티니를 상대할 강력한 라이벌로 정 회장보다 알리 빈 알 후세인 바레인 왕자를 꼽는다. 플라티니의 3분의 2 득표를 저지하고 2차 투표로 끌고 갈 수 있는 득표력을 갖고 있다는 게 데일리미러의 분석이다. 후세인은 2011년 FIFA 부회장 선거에서 정 회장을 밀어내고 승리한 전력이 있다. 다만 그가 받는 지지세와 실제 투표 결과 사이의 괴리가 문제라고 보고 있다.

영국 공영방송 BBC 라디오의 리처드 콘웨이 통신원은 “플라티니가 떨어지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단언했다. 플라티니 지지를 선언한 4개 대륙연맹의 회원국 수는 144개국이다. 이들 모두가 플라티니를 지지하지 않더라도 2월26일 선거에서 플라티니가 가뿐하게 승리할 것이라는 게 콘웨이의 전망이다. 그나마 후세인과 정 회장 정도가 의미 있을 뿐, 나머지 후보는 당선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설명했다.

독일 언론은 당선 가능성과 별개로 플라티니의 과거에 맹공을 퍼붓고 있다. 플라티니를 향해 쏟아내는 비판 수위는 매우 높다. 블래터의 연장선에서 플라티니를 바라보기 때문인데 독일 온라인 미디어 ‘차이트 온라인’은 플라티니를 ‘블라티니’(Blattini·블래터와 플라티니의 합성어)라고 불렀다.

반면 독일축구연합(DFB)은 플라티니를 지지하는 중심 세력이다. DFB는 플라티니 편에 왜 서 있을까. UEFA 회장인 플라티니가 FIFA 회장이 되면 그 빈자리를 대체할 인물이 필요한데 거기에 DFB 회장인 볼프강 니어스바흐가 현재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플라티니의 모국 프랑스에서는 다른 나라에 비해 언론들이 경쟁자들을 좀 더 다루고 있긴 하지만, 플라티니의 당선을 확신하긴 마찬가지다. 르몽드는 “플라티니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며, 승리를 확신하기 때문에 그가 도전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유럽 언론들은 누가 FIFA 회장이 되느냐에 관심이 적다. ‘플라티니가 될 것이지만, 이래서 플라티니는 문제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 Asia  중동의 뜻 거스르기 어렵다

아시아에서 특히 일본은 정 회장에게 중요한 존재다. “일본이 도와준다면 당선 가능성이 99%다”라고 직접 말할 정도였지만, 그런 일본은 정 회장을 돕지 않기로 결정한 듯한 모양새다. 이웃 나라에서 후보가 나왔으니 관심은 높지만, “플라티니가 그래도 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일본의 스포츠 전문 매체인 ‘스포니치 아넥스’는 “다시마 고조 일본축구협회 부회장이 정 회장이 아닌 플라티니를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다시마 부회장은 현재 FIFA 집행위원으로 활동 중인데, 집행위원 선거 때 중동 국가들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다. 같은 아시아인인 정 회장이 아닌 플라티니를 지지하는 이유는 결국 살만 AFC 회장에게 진 빚 때문이라는 게 일본 내의 분석이다.

오히려 최근 일본의 관심은 ‘하얀 펠레’ 지코에 쏠려 있다. 노란 유니폼을 입고 한 시대를 들어올렸던 지코가 막상 FIFA 회장에 출마하겠다고 하자 난감해졌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당선 가능성도 낮은데 성가신 일이 생겼다”는 평까지 나왔다. 브라질리안 지코는 지도자 데뷔 후 일본 축구 대표팀 감독을 맡은 적이 있는 대표적인 지일파다.

● South America  “우리는 일찌감치 플라티니 편”

세계 축구 또 하나의 축인 남미는 블래터 이전 24년간 FIFA의 권좌를 차지했던 주앙 아벨란제라는 인물을 배출한 대륙이다. 브라질 매체 ‘폴라빅토리아’는 최근 에콰도르 축구협회의 입장을 전했다. 에콰도르 축구협회의 시스코 아코스타 회장은 “2월26일 선거에서 플라티니를 지지하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플라티니의 지도력 아래 세계 축구는 다시 정상적인 위치에 올라갈 것”이라는 게 지지 이유였다.

남미의 경우에는 일찌감치 판도가 결정 난 모양새다. 남미축구연맹(CONMEBOL)이 플라티니를 지지한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물론 모든 남미 국가가 연맹 의견에 동의하는지는 모르지만 에콰도르 이전에 파라과이 역시 플라티니를 지원하고 있다. 칠레와 우루과이도 지지 대열에 합류했다는 소식이다.

● North America  플라티니만 바라보다

북중미는 이미 플라티니를 지지하는 4개 대륙 중 하나로 분류돼 있다. 하지만 최근 북중미축구연맹(CONCACAF) 멤버인 카리브 해 축구연맹(CFU)의 고든 데릭은 “우리는 아직 모임을 갖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CFU는 CONCACAF의 35표 중 25표를 행사할 수 있다. 소국이 많아서 생기는 효과다. 하지만 카리브 해의 작은 나라들은 정 회장이 아닌 플라티니에게서 많은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과거 블래터가 그들에게 했던 것처럼.

LA타임스는 “2018년 월드컵 개최지로 미국이 아닌 러시아를 지지했던 5명의 대륙연맹 회장 중에 플라티니가 있었다”고 보도했다. 플라티니도 이런 점을 의식한 듯, 출마 선언 직후 북미를 방문했다. 북중미대륙컵 대회인 ‘골드컵’ 결승을 관람한 후 CONCACAF의 임원들을 상대로 자신의 비전을 설명하는 자리를 만들었다고 LA타임스는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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