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파는 민박집에서 가을 여무는 밤을…”
  • 조철│문화칼럼니스트 (.)
  • 승인 2015.09.02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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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골목골목 동네서점 탐문기 펴낸 김병록·백창화 부부

사람들은 고개를 흔든다. 되지도 않을 장사를 되지도 않을 자리에서 벌이는 사람에게. 도대체 뭘 믿고 저러는 걸까. 정답이다. 믿는 구석이 있으니 판을 벌인 것이고, 장사가 되지 않아도 뭔가 남는 게 있으니까 즐겁게 업을 이어가는 것이다. 저물어가는 종이책 관련 사업에 뛰어드는 사람들 이야기가 화제인 것은, 아이디어가 획기적이라기보다 그 일에 임하는 태도나 그 일이 갖는 의미 때문일 것이다. 동네서점을 여는 사람들 또한 그렇다.

충북 괴산의 한 시골 마을에서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김병(52)·백화(50) 부부가 화제다. 부부는 책방을 열기 전 전국 방방곡곡 작은 책방들을 찾아다녔다. 그 결과물로 지난해 봄 국내 최초의 가정식 서점 ‘숲속작은책방’을 열었고, 국내 동네서점 탐문기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를 펴내기도 했다.

ⓒ 남해의봄날 제공

새로운 개념의 숙박 형태 ‘북 스테이’

중대형 서점의 판매 실적이 눈에 띄게 급감하고 있는 판국에 사명감을 갖고 동네 한 귀퉁이를 지키던 소형 서점들은 폐업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인문학 서점은 여럿 폐업했고, 문을 열고 있는 곳도 책 판매 외에 강연이나 후원 등을 통해 얻는 수입으로 간신히 생명줄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 생활을 하던 부부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부부는 2002년, 내 아이 그리고 마을 아이들과 좋은 책을 함께 읽고 싶은 마음에 ‘숲속작은도서관’을 만들어 운영하며 10여 년간 우리나라 도서관문화와 건강한 어린이 책문화를 위해 열심히 활동했다. 그러던 중 시골 마을에 살며 책 마을을 만들고 싶은 꿈을 마음속에 품게 되고 여러 곳을 둘러본 후 충북 괴산에 자리를 잡는다. 이때가 2011년이었다.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계획했던 도서관은 몇 년이 지나도록 정식으로 열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 부부는 문득 궁금해졌다.

“최근 한두 해 사이 골목 안 후미진 곳들에 작은 서점들이 속속 문을 열고 있다. 그림책만 팔기도 하고, 사진책만 팔기도 하고, 대형 서점에선 만나볼 수 없는 독립 출판물만 팔기도 하고, 도대체 팔리지 않는 인문학 책만 팔기도 하고. 그들은 누구일까. 그들은 왜 실패한 업종이라 확실히 결론 나버린 동네 작은 서점들의 문을 다시 열기 시작한 걸까. 경제권력이나 소비권력이나 모두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현실에서 나아진 건 하나도 없는데, 지방 소도시에서 심지어 우리처럼 시골 작은 마을에서 이 책방들은 몇 권의 책을 팔 것이며, 그 책들이 엄중한 밥벌이의 무게를 지켜줄 수 있을까.”

부부는 그들을 찾아 나섰다. 그들의 꿈이 서린 공간들을 만나고, 그곳에서 공간의 소리들을 들었다. 책들의 외침을 들어보았다. 일찍이 사라져버린 줄만 알았던 ‘희귀 종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았다. 그들의 아우성 속에 부부의 꿈과 희망도 함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세상엔 수많은 책이 있고, 우리나라엔 다양한 형태의 작은 책방들이 생기고 있다. 작은 책방은 더 나아가 책방 민박집이 되어 공간의 개념을 확대하고 있다. 전국에 고급 호텔부터 여인숙까지 잠자리를 파는 수많은 숙박업소가 있지만 공간의 주인과 방문객이 책과 문화를 매개로 하룻밤 꿈같은 세상으로 손잡고 들어가는 곳은 많지 않다. 유흥지에서 단지 먹고 마시고 술에 취하는 것만이 유일한 여가이던 과거를 버리고, 조용한 사유의 숲 속에서 나 자신과 조우하며, 삶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진정한 휴식의 날들을 채워보면 어떨까. 그러고 싶은 사람들이 머무를 수 있는 편안하고 따뜻한 공간을 함께 만들어보면 어떨까.”

다시 괴산으로 돌아온 부부. 아내는 글을 짓고, 남편은 책장과 책 오두막 등을 지으며 고심하다가 집의 일부를 책방으로 꾸민 가정식 서점이라는 독특한 책 공간, 책이 있는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새로운 개념의 숙박 형태인 북 스테이를 시작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숲속작은책방’이다.

책방 특징과 개성 살려 ‘셀렉트 숍’ 역할 해야

“서점이라고 문을 열고 있지만 마당에 작은 오두막 한 채, 책 좀 읽는다는 집에 있는 것보다 더 적은 책, 막상 찾아온 이들은 여기서 한번 ‘서점 맞아?’ 하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래도 인내심을 가진 이들이 책을 사겠다는 분명한 의사를 밝히면 그제야 입장을 허락하는 안채. 들어가 보면 그저 보통의 집과 크게 다를 것 없는 거실일 뿐이다. 단지 이가 있다면 책으로 가득한 거대한 책꽂이가 있는 서재라는 점이다. ‘정말 이곳이 서점 맞아?’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지만 숲 속 동화 같은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책방지기가 직접 읽고 깊이 있게 이해해 추천하는 책을 구입하는, 내밀한 책 경험을 누린 사람들은 후하게 입소문을 퍼뜨렸고, 그 덕에 ‘숲속작은책방’은 화제에 올랐다.

‘혹시 이 책 있나요?’라고 묻는 손님이라면 숲속작은책방을 잘 알지 못하는 초보 손님이란다. 작은 책방은 필요한 도서의 구매 목록을 갖고 찾아오는 곳이 아니라 책방에 있는 책 중 맘에 드는 것을 골라가는 책방이기 때문이다.

“뭐 이런 황당한 책방이 다 있느냐고 생각한다면 작은 책방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작은 책방은 말 그대로 작다. 공간이 작기 때문에 많은 책을 고루 갖춰놓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책방의 특징과 개성을 잘 살린 특정한 부류의 책들만 잘 골라놓는 ‘셀렉트 숍’의 역할을 해야 한다.”

부부는 애서가의 입소문을 따라 전국 곳곳의 동네서점들을 다시 탐문한 기록에다 개성 넘치는 책방지기들의 톡톡 튀는 북 리스트를 더하고, 가슴 뛰는 책 공간으로 새로운 반격을 시작한 동네서점들의 이야기에 운영 2년 좌충우돌 시골 책방의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를 보태 책으로 엮는다. 책 부록으로 작은 책방들이 ‘책 쫌 파는’ 그날을 위해 서로에게 건네는 따뜻한 응원의 목소리를 전국 작은 책방 70여 곳의 예쁜 그림지도와 함께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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