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돈은 눈먼 돈’, 먼저 갖는 사람이 임자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5.09.09 15:56
  • 호수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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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8800억 달하는 특수활동비 관계 부처에서 너도나도 갖다 쓰기 바빴다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인 채 영수증 제출 없이 마구 쓸 수 있는, 그러나 국민의 혈세로 온전히 충당되는 돈. 바로 국가기관에 배정되는 ‘특수활동비’다. 최근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신계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국회 특수활동비를 사적으로 사용했다는 사실을 실토한 후 ‘쌈짓돈’ 지적을 끊임없이 받아온 특수활동비가 다시 한번 도마에 올랐다. 기획재정부의 ‘예산 및 기금 운영계획 지침’에 따르면, 특수활동비는 정보 및 사건 수사, 그 밖에 이에 준하는 국정 수행 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를 말한다. 돈의 쓰임이 드러나면 기밀 유지가 힘든 상황일 때 그 용처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기타 국정 수행 활동에도 쓸 수 있다’는 규정이 있어 그 원칙을 비켜가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

권력 사정기관에서 특수활동비 90% 사용

특수활동비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이 악화되면서 19대 마지막 정기국회에서 보이는 여야의 첨예한 대치 국면이 주목되고 있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안에 ‘특수활동비 제도 개선 소소위’를 구성하자는 야당의 요구를 여당이 반대하면서 19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 운영이 파행으로 시작되고 있다. 국가기관이 사용하는 특수활동비를 ‘검증’해야 하는지가 여야 대립의 핵심이다.

여야는 정기국회 시작 하루 전날인 8월31일 조율을 시도했지만 결국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돌아섰다. 이종걸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올해 특수활동비 8810억원 가운데 국정원이 쓴 돈이 4782억원”이라며 “새누리당이 특수활동비 제도 개선 소소위 설치를 갖은 핑계를 대며 거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정보기관의 예산을 공개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했고, 김용남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국정원은 국정원법에 의해 직원 인건비, 시설비, 운영 경비 등 전체 예산이 특수활동비로 편성된다”며 “이를 비자금처럼 호도하는 것은 국정원 무력화 의도”라며 야당 측 주장을 비판했다.

야당 측에서는 ‘원내대표의 특수활동비부터 공개해 국회가 솔선수범을 보이자’는 의견까지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새누리당은 새정치연합의 특수활동비 검증 강화 주장이 정보·수사 기관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려는 의도라고 의심하면서도, 국가기관이 쓰는 돈에 대한 투명성 논란을 마냥 모른 척할 수만도 없는 상황이다. 국민 여론이 안 좋은 상황에서 여당이 이 문제에 등을 돌리고 있을 수만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실제 국민들은 특수활동비 집행 내역을 국회가 적극적으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입법정책연구원 부설 한백리서치연구소가 지난 8월31일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2.5%가 ‘국회 검증이 필요하다’는 답을 내놓았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국민 혈세로 충당한 돈을 정당한 목적으로 알맞게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 같은 논란 상황에서 특수활동비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부처가 권력 사정기관들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2015년 책정된 특수활동비는 881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38억원가량 늘어났다. 총 19개 부처와 기관에 예산이 책정됐다. 특수활동비를 사용하는 상위 5개의 국가기관은 국정원, 국방부(기무사), 경찰청, 법무부(검찰), 청와대 비서실로 드러났다. 권력·사정기관에서 전체 특수활동비 예산의 90%가 넘는 금액을 소요한다.

부처별 특수활동비 예산 편성 현황을 보면, 전체 19개 기관 중 국정원이 4782억원으로 가장 많다. 국방부가 1793억원, 경찰청이 1263억원이다. 그 뒤를 이어 법무부가 280억원, 청와대 비서실 및 국가안보실이 147억원, 청와대 경호실에서 118억원을 각각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안전처(110억원)와 국회(82억원)에도 상당한 예산이 편성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그 밖에 특수활동비를 사용한 부처는 미래창조과학부(77억원), 국세청(54억), 감사원(38억원) 등이다.

특수활동비는 국정원·군·경찰·검찰 등이 국가안보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거나 비밀 수사를 하는 경우에 사용하도록 편성된 예산이다. 특정업무경비도 그 일종이다. 특수활동비 집행은 ‘감사원 계산증명지침’에 따른다. 감사원 계산증명지침은 ‘지급한 상대방에게 영수증 교부를 요구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은 경우 그 사유와 지급일자, 지급 목적, 지급 상대방, 지급액을 명시한 관계 공무원의 영수증서로 대신할 수 있으며…(중략) 사용처가 밝혀지면 경비 집행의 목적 달성에 현저히 지장을 받을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집행내용확인서를 생략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영수증 없이 돈을 사용할 수 있는 지침을 갖춰놓은 셈이다.

여아 원내대표 등 국회에서도 월 수천만 원

본래 일반 예산과 달리 특수활동비에 사용 내역을 생략할 수 있는 예외 조항을 둔 이유는 ‘보안’ 때문이다. 기밀 유지가 필요한 정보와 수사 활동이 주를 이루는 국정원이 가장 많은 특수활동비를 배정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영수증 등 증빙 자료를 제출하게 되면 정보 수집이나 수사를 하면서 정보원과 접촉한 장소나 시간이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특수활동비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되는 상황에서도 2013년 4672억원, 2014년 4712억원, 2015년 4782억원 등 매년 국정원의 특수활동비가 증액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특수활동비 예산이 문제로 떠오른 또 다른 이유는 이 같은 편성 목적과 상관없는 부처들에서도 특수활동비 예산을 대거 배정받기 때문이다. 또한 국정원을 비롯해 청와대 비서실, 경찰청, 국방부, 법무부, 국회 등에 책정된 특수활동비가 일부 ‘보안과 기밀 유지’라는 편성 목적에 들어맞지 않는 용도로 사용됨으로써 결국 국민들의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보기관의 특성상 모든 특수활동과 관련되는 비용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는 공개해야 한다”며 “현재는 특수활동비 배정이 과한 측면이 있다. 정보활동이나 수사가 필요 없는 정부 기관에 대해서는 기획재정부가 일괄적으로 예산을 배정할 것이 아니라, 해당 활동이 필요한 경우에 세부적인 이유를 제출해 지급받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2015년 청와대 예산 1688억여 원 중 청와대 비서실과 국가안보실, 경호실에 배정된 특수활동비는 266억원으로, 전체 청와대 예산의 약 15%에 이른다. 이명박 정부 마지막 해였던 2012년 257억원과 비교하면 9억원가량 늘어난 수치다. 국회의 특수활동비는 국회의장 및 부의장, 여야 원내대표, 상임위원장에게 지급되는데, 상임위원장의 경우 보통 한 달에 1000만원 정도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8월3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새정치민주연합 간사인 안민석 의원은 “여당 원내대표는 월 5000만원, 야당 원내대표는 2000만~3000만원을 받는 것 같다”고 언급하며 “양당 원내대표가 솔선수범해 자신들의 특수활동비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수활동비 둘러싼 횡령 논란들 

특수활동비는 실제 사용처나 시기, 액수 등을 알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묻지 마 예산’ ‘검은돈’이라는 비판이 계속 나왔고, 국회 국정감사와 인사청문회에서 단골 소재로 도마에 올랐다.

2007년 5월에는 김성호 당시 법무부장관이 특수활동비를 사적인 접대비로 사용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부산의 모교를 찾아 학부모와 동문들을 대접하는 식사비로 140만원, 저녁에는 특급 호텔에서 만찬과 숙박을 포함해 600만원의 돈을 사용했다. 법무부는 당시 수행비서가 결제한 신용카드 결제 비용이 특수활동비라고 밝힌 바 있다.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은 2004년부터 3년간 청와대 특수활동비 12억5000만원을 횡령해 유죄 판결을 선고받았다. 2010년 9월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는 신 후보자가 문화부 제2차관 재임 당시 13개월간 1억9000만원에 이르는 특수활동비를 유흥과 접대비로 사용했다는 제보로 논란을 빚었고, 2011년에는 김준규 검찰총장이 ‘전국 검사장 워크숍’에서 검사장급 이상 간부들에게 뿌린 돈 봉투의 출처가 특수활동비로 드러나기도 했다.

2011년에는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이 2008년 재직 시절 업무추진비 명목으로 2억5000만원을 처남 명의의 계좌로 빼돌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정원 특수활동비가 군 고위층에게 지급된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2013년 인사청문회에서 특정업무경비 횡령 의혹으로 진땀을 흘려야 했다. 헌재 재판관으로 재직한 6년 동안 특정업무경비 2억5000여 만원을 자신의 개인 계좌로 입금한 후 보험료와 신용카드 비용 등으로 지출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2013년 국정원 댓글 알바 사건에서 민간인 조력자에게 지급된 보수 3000여 만원도 특수활동비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8월31일 국회에서 열린 상무위원회 모두발언을 통해 “부정한 권력집단과 비밀주의가 만날 때, 특수활동비는 정권 보위를 위한 공작금으로 변질된다”며 “제도 개선에 진정성을 담보하려면 국회 특수활동비부터 공개하고 개선 방안을 제시하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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