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 다다른 검찰 짐 보따리 다 푼다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5.09.09 16:22
  • 호수 135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포스코 비리 의혹’ 정준양 전 회장 소환…정·관계 로비 의혹 정조준

벼랑 끝에서 창과 방패가 만났다. 검찰은 9월3일 정준양 전 포스코그룹 회장을 소환했다. 지난 3월13일 해외 사업 과정에서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았던 포스코건설에 대한 압수수색으로 포스코 비리 수사가 시작된 지 6개월 만이다. 정 전 회장 소환조사로 포스코 비리 의혹을 긴 시간 동안 훑은 검찰과 비리 의혹의 핵심 위치에 있는 정 전 회장 간의 본격적인 힘겨루기가 시작된 셈이다.

이는 포스코 비리 수사가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애초 포스코 비리 수사는 3월12일 이완구 당시 국무총리가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한 지 하루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이 전 총리의 발언 직후 신속하게 이뤄진 검찰 수사의 모양새를 감안해, 일각에서는 검찰의 포스코 비리 수사가 단순한 대기업 비자금 수사에 그치지 않고 이명박(MB) 정부와의 유착 등 정·관계 로비 의혹을 규명하는 데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강했다.

정준양 전 포스코그룹 회장이 9월3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정준양 소환 직전 티엠테크 전격 압수수색

하지만 검찰 수사가 장기전으로 치닫고, 그 과정에서 정·관계 로비 의혹의 중간 통로에 있는 정 전 회장의 주변 인물들이 구속 수사를 피해가면서 “수사가 정·관계 로비 규명에 이르기는 힘든 것 아니냐”는 회의적인 인식이 퍼져갔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른바 정치권이 주문하는 ‘하명 수사’의 폐단이 부실 수사를 자초하지 않았느냐는 비판까지 나오는 형국이었다. 결국 비리 의혹의 핵심인 정 전 회장의 방어 못지않게 검찰의 자존심을 건 공격도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조상준 부장검사)는 정준양 전 포스코그룹 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16시간 동안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정 전 회장이 재임하던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포스코 본사와 계열사 등에서 빚어진 협력업체 특혜 지원 등 배임 혐의에 대해 집중적인 조사를 벌였다.

정 전 회장은 2010년 포스코가 플랜트업체인 성진지오텍(현 포스코플랜텍) 지분 40%를 시세보다 두 배 높게 평가, 1590억원에 인수해 포스코에 손해를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또 2009년부터 2012년까지 포스코가 협력업체인 코스틸에 ‘여재 슬래브’ 등 중간재를 저가로 공급해 특혜를 줬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정 전 회장은 그 외에도 2010년 해외 공사 경험이 전무한 동양종합건설에 인도 CGL 제철소 공사(850억원 상당)를 수주하도록 지시한 혐의에 대해서도 집중 조사를 받고 있다.

그런데 정 전 회장에 대한 검찰의 소환조사를 앞두고 그동안 드러난 의혹 외에도 새로운 의혹이 제기돼 주목받고 있다. 검찰은 정 전 회장의 소환조사를 불과 이틀 앞둔 지난 9월1일 포스코의 제철소 설비를 보수·관리하는 업체인 티엠테크를 전격적으로 압수수색했다. 경북 포항의 포스코 내에 위치한 티엠테크는 2008년 12월 설립됐다. 티엠테크는 포스코 계열사인 포스코 켐텍과 거래를 하면서 연매출 170억~180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티엠테크의 실소유주 박 아무개씨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의 최측근 인사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박씨는 정 전 회장 취임 4개월 후인 2009년 6월쯤 티엠테크 지분 100%(5만주)를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포스코 수사가 시작된 지 3개월여 만인 지난 6월 지분을 전량 매각해 또 다른 의혹을 낳고 있다.

“티엠테크 실소유주, 이상득 전 의원 최측근”

일각에서는 정 전 회장 소환조사를 앞두고 전격적으로 이뤄진 티엠테크에 대한 압수수색 시점을 주목하고 있다. 박씨가 정 전 회장 재임 기간 중 집권했던 이명박 정부의 핵심 실세인 이상득 전 의원의 최측근이었다는 점에서 사실상 박씨를 정 전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을 풀 결정적인 단서로 보고 있을 개연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결국 정 전 회장에 대한 수사 압박 강도를 높이기 위해, 검찰이 ‘시간차 공격’ 전략을 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이다.

티엠테크 실소유주였던 박씨는 포스코가 소재한 경북 포항 출신으로, 이상득 전 의원과는 동향이다. 박씨는 이 전 의원이 국회의원으로 일하던 당시 포항 남·울릉 지역구의 국회의원 사무소장을 맡았다. 박씨는 이 전 의원의 회계 책임자로 일하면서 이 전 의원의 정치자금 등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지난 2006년 울릉군수에게서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후보 공천을 받을 수 있도록 이상득 의원에게 잘 말해달라”는 취지의 청탁과 함께 2500만원을 받은 전력을 갖고 있다.

지역 정가에서 그는 이 전 의원을 보좌한 인물 중에서도 최측근으로 꼽힌다. 포항 지역 정가에 밝은 한 여권 인사는 “박씨는 이 전 의원을 오랜 기간 보좌하면서 이 전 의원의 측근 중 측근으로 꼽히는 인물”이라면서 “이 전 의원 보좌관 출신인 박영준 전 차관과 맞먹을 정도의 핵심 멤버”라고 말했다.

이 전 의원의 측근으로서 박씨는 지역 정치권과도 밀접하게 교류를 했다. 박씨는 지난 2010년 8월 포항시청에서 포항시장 주최로 열린 ‘포스코 신제강공장 공사 재개 촉구 유관기관 단체 회의’에 참석했다. 포스코 신제강공장 공사 재개가 늦어지면서 포스코의 사업에 차질을 빚자 정부에 신제강공장 공사 재개를 촉구하는 자리였다. 당시 박씨는 이 전 의원을 대신해 참석했다. 당시 회의에는 포항시장과 포항시의회 의장, 포항상공회의소 회장 등 지역을 대표하는 기관장들이 참석했다.

박씨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선 과정에서도 지역에서 선거 관련 직책을 맡으면서 적극적인 활동을 했다. 박씨는 2007년 이 전 대통령의 경선 캠프에서 상황실장으로 일했고, 이후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경북선대위에서는 조정실장으로 일하면서 이 전 대통령의 선거운동을 도왔다.

정준양 압박, 숨겨둔 히든카드 또 있나

검찰은 박씨가 이 전 의원을 배경으로 포스코의 이권에 개입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티엠테크 인수와 특혜 의혹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티엠테크가 특혜를 받으면서 그 과정에서 정치자금이 지역 정치권, 특히 이 전 의원에게 흘러들어갔을 개연성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09년 티엠테크에 지분 참여를 했고 올해 6~7월께 정리했다”면서도 “지분 투자는 지인의 권유에 따른 것이었고 이상득 전 의원의 지시를 받은 게 아니다. 정 전 회장을 만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9월4일 오전 9시 현재 박씨의 휴대전화는 꺼져 있는 상태다.

검찰이 티엠테크를 전격적으로 압수수색한 것은 적극적으로 정·관계 로비 의혹의 실타래를 풀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검찰은 그동안 정·관계 로비 의혹과 관련한 첩보와 증언 등을 다양하게 입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쉽게 풀어놓지 않으면서도 시시때때 ‘결정적인 혐의’가 있다는 말을 되풀이해왔다.

검찰은 정 전 회장의 친인척이 특혜 지원 의혹이 제기된 코스틸의 고문으로 재직하면서 4억원대의 고문료를 받은 경위 등도 집중적으로 조사할 계획이다. 검찰은 정 전 회장에 대한 소환조사를 2~3차례 더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일단 시간을 두고 그동안 모아온 비리 의혹 단서들을 이용해 정 전 회장을 압박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체면 구긴 검찰, 자존심 살릴 수 있을까 

당초 포스코 비리 의혹에 대한 수사가 길어지면서 일각에서는 검찰 수사가 비리 의혹의 핵심인 정·관계 로비 의혹을 규명하는 데까지 이르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많았다.

지난 5월 검찰 수사 개시 두 달 만에 비자금 조성 혐의를 받은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기각되면서 김이 빠졌다. 이어 8월 포스코의 일감 몰아주기 정황이 드러난 배성로 동양종합건설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까지 기각되자 검찰은 아연실색했다.

정·관계 로비 의혹을 규명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고리에서 검찰 수사가 삐걱대는 게 분명해 보였다. 검찰은 특히 배 회장에게 무려 7개에 달하는 혐의를 적용했다.

그만큼 구속 수사에 신경을 썼다는 점이다. 검찰은 “정준양 당시 회장이 설계와 설비 능력이 전무한 동양종합건설에 3000억원대 공사를 몰아주라고 지시했다”는 증언을 확보하고, 세무서 직원이 동양종합건설 관계자에게 검찰 수사 동향을 전달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혐의에도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하자, 검찰 일각에서는 법원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 안팎에서는 정 전 회장이 무혐의를 받거나, 단순 배임 혐의로 기소되는 선에서 수사가 마무리될 경우 후폭풍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부정부패’를 강조하는 청와대 등 정치권의 압박에 떠밀려 요란하게 수사를 시작했다는 의혹이 더욱 짙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