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과의 대화] 고무통 속에서 발견된 시체 두 구
  • 배상훈│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프로파일러) (.)
  • 승인 2015.09.09 16:30
  • 호수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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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남편·내연남 시체 썩어가는 집에 8살 아들 방치

2014년 7월29일 저녁 9시37분, 경기도 포천시 중앙로에 위치한 빌라 2층에서 여덟 살 난 아이의 비명이 울렸다. 출동한 경찰관들이 베란다 창문을 깨고 집 안으로 진입했다. 집 안은 거의 폐가 수준이었다. 온갖 쓰레기의 악취 속에 아이가 방치돼 있었다. 영양 상태나 정서적인 면에서 문제가 있어 보이는 아이는 긴급 후송됐다. 그런데 집 안을 둘러보던 경찰관은 유독 심하게 악취를 풍기는 고무통을 발견했다. 고무통 안에 있던 비닐 안쪽 이불을 걷어낸 순간 뼈만 앙상한 시체가 드러났다.

조심스럽게 꺼낸 시체의 머리 부위에 비닐 랩이 감겨져 있었고, 목 부위에는 붉은색 스카프가 세 바퀴를 돌린 채 매듭지어져 있었다. 살해된 것이 분명해 보였다. 곧이어 하체 부분에서 남자 성기가 식별됐다. 그런데 시체가 하나만이 아니었다. 시체를 들어낸 고무통 아래에 비닐 장판에 싸인 다른 시체 한 구가 발견된 것이다. 시멘트 덩이에 눌려진 상태였다. 이 역시 남성으로 판별됐다. 다만 시체의 부패 정도가 달라서 서로 다른 시기에 사망해 고무통에 넣어진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해 8월7일 경기도 포천시 빌라 살인 사건 현장. 경찰이 현장검증에 사용한 고무통과 쓰레기로 가득한 거실이 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우선 집 소유주이자 아이의 엄마인 A씨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다. 10여 년 전 남편 M씨와 이혼하고 만난 남자가 아이의 아버지 L씨였다. M씨와의 사이에 출생한 큰아들은 군에서 제대한 후 2~3년 전부터 진주에서 따로 살고 있었다. A씨는 최근 일주일 사이 소재 파악이 안 되고 있었다. 우선 큰아들에게 가정환경에 대한 탐문을 한 결과, 아버지 M씨의 외도로 가정이 파탄 난 후 M씨는 집을 나갔고 자신 역시 집을 나온 후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낸다고 했다. 부검 결과 고무통 하단의 시체가 M씨인 것으로 밝혀졌다. A씨는 통신 수사를 통해 스리랑카인 S씨의 거주지에서 체포됐다. A씨의 진술에 따르면, 고무통 위의 시체는 우연히 만난 외국인이며 살해한 사실을 인정했다. 반면 아래의 시체는 M씨가 맞지만 10년 전 병사해서 고무통에 넣었다고 진술했다.

거짓말탐지기 ‘판단 불가’

A씨는 죽은 외국인의 이름도 국적도 모른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큰아들이 진술을 번복했다. 첫 진술에서는 아버지가 집을 나갔다고 했지만 바뀐 진술에서는 자다가 죽은 아버지 M씨를 어머니 A씨와 같이 고무통 속에 넣었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고무통 상단의 시체에서 발견한 쪽지문 속 지문과 회사에서 A씨와 사귀다가 실종된 B씨의 지문이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결국 A씨는 B씨를 살해한 사실을 인정했다. B씨의 간과 폐, 위에서 신경안정제인 독실아민과 졸피뎀이 검출됐고 같은 성분이 M씨에게서도 검출됐다. 남편 M씨도 A씨가 살해했을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A씨에게 수차례 실시한 거짓말탐지기 판정 결과는 그녀가 ‘특별한 능력’을 가졌을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게 한다. 실제 M씨를 죽였느냐는 질문에 ‘아니요’라는 답변을 했고 진실 반응이 나왔다. 반면 약을 먹였느냐는 질문에도 ‘아니요’라는 답변을 했는데 이번에는 거짓 반응이 나왔다. ‘판단 불가’인 것이다. 해석을 하자면 약을 먹이기는 했으나 죽이려고 먹인 것은 아니라는 게 된다. 하지만 집에서 수거한 유리잔에 말라붙어 있던 결정체를 검사한 결과, 치사량이 훨씬 넘는 독실아민이 발견됐다. 결국 A씨가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가지게 된다. 실제 경찰이 수사하는 과정에서 A씨는 집 안의 쓰레기 등을 통해 일종의 ‘저장 강박’ 증세가 있는 것처럼 보여 동정을 유발하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주변의 평가는 달랐다. 아주 말을 잘하고 밝고 똑똑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본질적으로 A씨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우선 A씨에게 ‘저장 강박’이 있었을까. ‘저장 강박’은 강박 장애의 일종으로 저장 강박 장애, 저장 강박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물건의 사용 여부와 상관없이 계속 모으는데, 그러지 못할 경우에는 불쾌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절약 또는 취미로 물건을 모으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심할 경우 치료가 필요하다. 저장 강박증의 원인은 가치판단 능력과 의사결정 능력 손상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물건의 필요 여부를 판단하지 못해 일단 저장부터 해두는 것이다. 이는 의사결정 능력이나 행동계획 능력 등과 관련된 뇌의 전두엽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증상으로 알려져 있다. 저장 강박증의 치료는 우울증 치료제로 사용되는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로 신경을 안정시킨다. 하지만 다른 강박 장애보다 치료가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장 강박’ 증세와 정반대 생활

그런데 필자는 A씨가 본질적인 의미의 저장 강박 증세를 가진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일종의 판단능력 손상 증상이라면 특정한 형태의 물건들을 버리지 못하거나 모아두는 특징을 가지는데, A씨는 그냥 원래의 물건을 돌보지 않은 채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이다. 현장 사진에서도 무엇인가를 가져다 놓거나 특별히 버릴 것을 안 버린 것이 아니라 그냥 방치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보통의 저장 강박증 환자는 일상생활을 하는 데 일정 정도 장애를 느끼는 데 반해, A씨는 그와는 정반대 생활을 했었다. 따라서 A씨는 저장 강박 중세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핵심이자 중요한 단서는 현장 상황이 보여주는 저장 강박 증세가 아니라 그 쓰레기 속에 버려졌던 아이의 존재라고 생각된다. A씨는 이 아이를 이름도 알 수 없는 외국인과의 사이에서 낳았다고 주장했다. 그 말이 사실일까. 이름도 알 수 없는 외국인과 결혼할 것도 아니면서 아이를 낳았다? 이 시점에서 A씨가 고무통 상단의 시체에 대해 한 진술을 상기해보자. ‘이름도 알 수 없는, 송우리 터미널에서 우연히 만난 외국인’이라고 했다. A씨 진술의 맥락을 이해하면 애당초 외국인은 없었던 것이다. 평소에 회사 등에서 자주 마주치는 외국인들을 이용한 것뿐이다. 그렇다면 아이의 아버지는 M씨였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큰아들이 그 사실을 알 수 없었던 이유는 M씨가 바람을 피워 가정이 파탄 나던 즈음 A씨가 임신 상태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나이가 여덟 살이라는 것도 A씨의 주장일 뿐이다. 결국 A씨는 바람을 피워 가정을 풍비박산 나게 만든 데 대한 분노로 남편 M씨를 독살했다. 물론 B씨 시체의 상태, 즉 약을 먹이고 얼굴에 랩이 3회 이상 감기고 스카프로 목을 조른 상태를 봐서는 M씨도 그냥 독살만 했을 가능성은 작을 것이다. 유사하게 약을 먹인 후 다른 방식의 살해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큰아들이 자신의 어머니 A씨가 무서워 집을 나온 후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다는 점을 봐도 추정할 수 있는 사항이다.

A씨는 바람난 남편을 죽여서 고무통 속에 두었고, 어린아이도 쓰레기 속에 가뒀던 것이다. 이런 방식의 처벌은 B씨에게도 유사하게 진행됐다. B씨는 사귀는 동안 A씨에게 월급을 가져다 바쳤고 A씨는 이렇게 받은 돈으로 나름 재미있는 삶을 살았다. 문제는 B씨가 돈을 달라고 집요하게 달려들었다는 점이다. 이전의 다른 남자들은 한두 번 소란을 피우고 말았는데 B씨는 달랐다. 이러다가는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날 것 같았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남편 M씨처럼 B씨도 처리한 것이다. 사실 이 사건은 아이를 고아원에 보냈다면 발각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적당한 시점에 고무통 속 시체들을 밖으로 옮겨 처리하면 됐는데, A씨는 자신에게 고통을 준 그들을 절대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 ‘씨앗’마저도 싫었던 것이다.

2014년 8월1일 경기도 포천시 포천경찰서에서 ‘포천 빌라 살인 사건’ 피의자 A씨가 진술 녹화를 마치고 이동하던 중 취재진에 둘러싸여 있다. ⓒ 연합뉴스

 직장생활 밝게 해 주변 평판 좋아

그렇다면 최소한 두 번의 살인 및 사체 유기를 감행한 A씨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가졌을까. 자신을 비참하게 만든 사람에게 잔혹한 복수를 한다고 모두 사이코패스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잔혹한 복수를 한 A씨가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특히 자신의 아이까지 비참하게 가두고 학대한 행위는 살인 이상의 중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주목할 부분은 그런 행위를 하고도 밖에 나가서는 똑똑하고 밝게 직장생활을 해 주변 평판도 좋았다는 점이다. A씨는 그렇게 살고 싶었을 것이다. 인간은 대부분 고통을 가지고 산다. 그 고통을 극단적으로 표출하고 겉으로는 밝게 산다는 것이 보통의 삶은 아닐 것이다. 만약 A씨가 자신에게 고통을 준 사람들을 정당하게 처벌할 방법이 있었다면 살인을 하지 않았을까. 모를 일이다. 자신이 너무 초라하다는 생각은 했을 것이다. 초라하기에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극단적인 폭력을 사용한 것이다.

 A씨를 동정해야 할까. 그는 다른 방법이 있는데도 잔혹한 복수를 선택했다. 분명 다른 길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극단의 고통을 안겨준 사람에게 잔혹한 복수를 하지는 않는다. A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데는 더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쓰레기 속에서 발견된 그 아이가 과거를 모두 잊고 새로운 삶을 살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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