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 승자는 누구?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5.09.09 16:31
  • 호수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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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면세점 4곳 연말 사업자 선정

올 상반기 시내면세점 사업권을 놓고 치열한 전쟁을 벌였던 재계가 다시 한번 면세점 사업권을 놓고 한판 전쟁을 벌일 전망이다. 1라운드가 신규 허가 면세점 사업권을 놓고 다툼을 벌인 모양새라면, 2라운드는 기존 면세점 사업권을 놓고 지키려는 기업과 빼앗으려는 기업 간 대결 구도여서 다툼이 한층 더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관세청이 지난 5월29일 고지한 ‘서울 지역 시내면세점 특허신청’ 공고에 따르면, 현재 운영 중인 서울·부산 4개(서울 3, 부산 1) 면세점의 영업특허가 오는 11월과 12월 사이 잇따라 끝난다. 과거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면세점 특허가 10년마다 자동 갱신됐으나, 2013년 관세법이 바뀌면서 기존 운영 업체도 5년마다 특허권을 놓고 신규 지원 업체들과 똑같이 경쟁을 벌여야 한다. 면세점별로 특허 기간이 만료되는 날짜와 운영 기업을 보면 SK네트웍스의 워커힐 서울 면세점이 11월16일 만료되고, 신세계의 부산 면세점은 12월15일 특허 기간이 끝난다. 또한 롯데가 소공점과 롯데월드점 등 서울 시내 두 곳에서 운영하는 면세점도 각각 12월22일과 12월31일 만료된다. 관세청은 9월25일 네 곳의 면세점에 대한 특허 입찰 접수를 마감한다. 아직 마감이 완료되지 않았지만 현재까지 참여 의사를 밝힌 기업은 기존 사업자인 롯데와 신세계, SK 그리고 새로 면세점 사업에 뛰어드는 두산그룹 정도다. 1차 면세점 전쟁에 뛰어들었던 현대백화점은 불참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재계의 시각이다.

ⓒ 시사저널 임준선, ⓒ 연합뉴스

면세점 네 곳의 특허권을 놓고 벌이는 전쟁이 흥미로운 이유로는 다음 몇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로 네 곳 중 두 곳을 운영하던 롯데가 최근 경영권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국적 논란으로 인해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롯데면세점은 소공점과 월드타워점의 지난해 매출(2조5000억원)이 전체 매출(3조9500억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그룹 차원에서도 핵심 사업이다. 롯데는 신규 면세점 입찰에 뛰어들었을 때도, 첫 번째 목표는 기존 면세점 특허권 수성(守成)이었고 신규 면세점은 ‘플러스알파’라는 원칙을 내부적으로 세웠다. 신규 면세점 입찰도 라이벌 기업 신세계가 명동 본점을 면세점으로 쓰겠다는 전략을 내세우는 바람에, 인근에 위치한 소공점 방어 차원에서 참가했다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신규 면세점 사업자 선정 후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터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롯데그룹이 한국에서 돈을 벌어 일본으로 가져간다는 식의 논리가 퍼지면서, 정치권에서 롯데에 대한 규제 움직임이 생긴 것. 현재 정치권에서는 이번 국정감사를 통해 정부 특허 사업인 ‘면세점 운영권’을 롯데에 다시 주는 것이 옳은지 여부를 들여다보겠다는 분위기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 연합뉴스

롯데, 국적 논란이 발목

현재 롯데면세점 운영 주체인 호텔롯데 지분의 대부분(99.28%)은 일본 롯데홀딩스와 12개 ‘L제○투자회사’, ㈜패밀리 등 일본 롯데 계열사가 갖고 있다. 롯데는 호텔롯데의 상장을 통해 일본 지분율을 낮추겠다고 밝힌 상태다. 더구나 롯데는 2014년 말 매출 기준으로 면세점 시장 점유율이 53.4%(롯데가 인수한 AK 계열 포함)에 이르기 때문에 독과점 논란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와 관련해 국내 면세점 사업의 독과점을 막기 위해 특정 기업의 매출액 기준 시장 점유율이 30%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법안 제정도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법안이 시행된다면 면세점업계 1위인 롯데면세점이 정부에서 받은 면허의 일부를 반납해야 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보면 롯데로서는 수성이 쉽지 않은 셈이다. 롯데로서는 당분간 신동빈 회장 체제가 지속될 가능성이 큰 만큼 국정감사에서 논란을 키우지 않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면세점 전쟁 2라운드가 흥미로운 이유는 롯데의 ‘영원한 라이벌’ 신세계가 반사이익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신세계는 지난 7월 신규 면세점 입찰에 참가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신세계는 발표 전까지 신라HDC와 더불어 가장 유력한 기업으로 꼽혔다. 이런 기대감 때문에 신세계 주가는 3월 말 16만원대 후반에 머무르던 것이 사업자 발표를 앞둔 7월 초 29만원대까지 올랐다. 입찰에 참여한 업체보다 주가 상승 폭이 훨씬 컸다. 신규 면세점 사업자로 선정된 한화갤러리아의 경우 같은 기간 주가가 5만원대 후반부터 6만원대 초반에서만 오르락내리락했을 뿐이다. 그만큼 시장에서는 신세계의 면세점 사업자 선정 가능성을 크게 봤다는 얘기다. 하지만 관세청은 신라와 한화의 손을 들어줬다.

그런데 신세계가 신규 면세점 입찰에서 탈락했음에도 신세계의 주가는 탈락 이후 19만원대까지 잠깐 하락했을 뿐, 다시금 상승하기 시작해 20만원대 중반을 유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신세계 주가가 다시금 완만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이유로 시내 면세점 사업자 선정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신세계는 (신규 면세점 사업) 탈락 이후에도 후폭풍이 가장 적은 것으로 보인다”며 “신세계 실적을 보면 2014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10% 감소했음에도 여전히 주가가 전년에 비해 높은 수준인 것을 보면 면세점 사업에 대한 기대가 여전히 반영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사실 신세계는 아직까지 시내 면세점에 참가할지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 번 고배를 마실 경우 기업 이미지에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신세계의 면세점 사업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높은 것은 면세점 사업 진출에 대한 정용진 부회장의 의지가 크다는 점 때문이다. 정 부회장은 사실상 포화 시장이라고 볼 수 있는 유통업의 탈출구로 면세점 사업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정 부회장은 이 때문에 신규 면세점 사업을 추진했던 임직원들에 대한 문책 대신 이들이 면세점 사업의 노하우를 쌓았다고 보고 다시 한번 시내 면세점 사업 입찰을 맡긴 것으로 전해졌다. 신세계 측은 이번 입찰에서는 신규 면세점 입찰 때 면세점 입지로 내세웠던 명동 본점 외에 고속터미널에 위치한 신세계 강남점을 염두에 두고 있다.

 시내 면세점 입찰에 관심이 모아지는 또 하나의 이유는 두산이라는 복병의 등장이다. 두산은 ‘유커’들이 많이 찾는 동대문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기업이다. 두산이 본사 건물로 사용하는 ‘두타’에도 유커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두타를 15년 넘게 운영해온 두산은 그만큼 해외 관광객들의 취향을 잘 파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타에는 현재 연간 700만명의 외국인이 방문하고 있다.

두산, 면세점 사업 진출

동대문은 다른 지역에 비해 면세점 무풍지대다. 소공동의 롯데면세점, 광화문의 동화면세점, 강남의 롯데월드, 강동의 워커힐면세점 등 서울 시내 대다수 지역에는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면세점이 위치하고 있지만, 동대문의 경우는 그나마 가장 가까운 면세점이 장충동에 있는 신라면세점이다. 정작 동대문 주변에는 면세점이 없다. 이 때문에 신규 면세점 사업자 입찰 당시에도 여덟 곳의 업체가 동대문에 면세점 유치 계획을 밝히고 격돌한 바 있다. 서울시내 지역 중 동대문에 가장 많은 기업이 몰렸다. 대기업 중에서는 롯데와 SK네트웍스가, 중소기업 중에서는 중원면세점과 키이스트, 그랜드관광호텔, 동대문소상공인연합회, 한국패션협회 컨소시엄, 동대문24면세점이 모두 동대문을 신규 면세점 장소로 내세웠다. SK네트웍스는 면세점을 포함해 동대문 인프라 구축에 최대 3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히며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8개 기업이 모두 물을 먹었다. 이 틈을 타서 동대문의 강자라고 할 수 있는 두산이 참여한 것. 두산 측은 지난 7월 입찰 당시에도 참여를 타진했으나, 불참한 바 있다.

역시 사업 허가 기간이 만료되는 SK의 워커힐면세점도 사업권을 지켜내야 겨우 본전인 만큼 수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지난 7월 입찰 때와 마찬가지로 동대문을 염두에 두고 입찰에 참여할 것이라는 말이 있기는 했지만, 일단은 워커힐면세점 재허가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를 위해 워커힐면세점은 11월 중 리뉴얼 오픈을 앞두고 현재 한창 공사 중이다.

동대문 지역에 인프라와 노하우를 갖춘 두산이 면세점 사업 참여를 결정한 만큼, 시내 면세점 사업자 입찰은 지난번 신규 면세점 사업자 선정 때만큼 뜨거워질 전망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기존 사업장을 지켜내야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또다시 고배를 마실 수 없다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고심 끝에 면세점 사업에 진출하려는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에게는 서로 물러서기 어려운 싸움인 만큼, 지난번 면세점 전쟁 때보다 기업 간 전략 싸움이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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