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민 학문 공동체 더 공고하게 만드는 건 미국 유학파”
  • 조철│문화칼럼니스트 (.)
  • 승인 2015.09.09 16:53
  • 호수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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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엘리트 지식인 집단의 문제점 파헤친 김종영 교수

고려 충렬왕 때 원나라 유학을 다녀오지 못한 국내파들은 출세를 하지 못하고 큰 설움을 겪는다. 이인화 작가는 소설 <시인의 별>에서 지금의 미국 유학파와 국내파의 처지를 빗댄 것 같은 설정으로 역사를 공부한 독자들의 공감을 샀다. 신라-당나라, 고려-원나라, 조선-명(청)나라, 망국시대-일본, 대한민국-미국으로 이어지는 피지배-지배의 역학관계 속에서 ‘제국’ 유학파들이 국내에서 상당한 우월적 지위를 누렸다는 데 이의가 없었다.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44)가 쓴 <지배받는 지배자 -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은 그 1000년 역사의 비밀을 밝히려는 오랜 연구의 성과물이다. 김 교수는 이 연구를 통해 미국 유학파 엘리트들이 학계와 기업에서 어떻게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그 기득권을 유지하는지를 탐색했다. 미국 유학파 엘리트가 한국과 미국 사이에 어떤 상황과 위치에 놓여 있는지를 분석하고, 그들의 독특한 정체성을 규명했다. 이를 통해 학벌사회의 최상위에 있는 한국 엘리트 지식인 집단이 어떻게 탄생하는지를 밝혔다.

“막스 베버는 합리성이 결여된 자본주의를 ‘천민자본주의’라고 했다. 나는 합리성이 결여된 한국 대학과 학문 공동체를 ‘천민 학문 공동체’라고 본다. 과격한 말이라고 하시는 분도 있지만 학술적 측면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을 이해했으면 한다.”

“학문은 더럽다”고 개탄할 지경

김 교수는 비민주성·폐쇄성·비합리성 등을 국내 학계의 특징으로 지적하며, 상대적으로 민주적이고 개방적이며 합리적인 미국 대학의 연구 분위기가 유학생을 유입하는 강한 힘을 가진다고 설명한다.

“지방대 출신이나 여성 등의 이유는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걸림돌이 된다. 같은 학부 출신 학생을 우선으로 하는 상위권 대학의 대학원들은 이들에게 기회조차 제공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반면 미국의 대학원은 같은 학부 출신인지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 ‘기회의 땅’이 되는 순간이다.”

엘리트가 되기를 꿈꾸는 학생들이 국가 경제와 교육의 경계를 넘어 글로벌화된 세계에서 직업을 갖고 자신의 인생을 펼치고 싶어 하는 이유가 과연 그럴까. 김 교수는 1단계로 1999년부터 2005년까지 미국 유학생 50명을 심층 면접한 데 이어, 2단계로 2011년부터 2014년까지 80명을 인터뷰했다. 그는 한국과 미국 사회에 양다리를 걸치고 중간에 위치하면서 이익을 보는 지식인을 ‘미들맨 소수자 이론’으로 설명한다.

“이런 이론에 기반한 저의 연구 대상은 지식인들이다. 이들이 어떤 특징들을 가지고 있느냐면 미국과 한국 중간에 위치했고, 글로벌 지식과 로컬 지식의 중간에 위치한 지식 매개자 역할을 전담한다는 것이다. 바로 트랜스내셔널 미들맨 지식인이다.”

김 교수는 미들맨 소수자가 식민지적·전근대적 상황에서 출현하듯 트랜스내셔널 미들맨 지식인은 한국 학계의 지적 식민성과 전근대성 속에서 탄생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무엇보다 ‘1급 체제’의 국내 학계 분위기를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런 분위기에서 국내 대학의 교수직을 차지하기 위해서나 직장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기 위해서나 미국 유학을 통한 학위 습득 과정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은 다시 많은 사람이 미국 유학을 결정하도록 만드는 중요한 동기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대학과 한국 대학은 지식 생산 능력에서 큰 격차를 보이는데, 한국인 유학생들은 이 간극에서 트랜스내셔널 기회를 포착한다. 트랜스내셔널 미들맨 지식인은 어떤 의미에서 지식 생산의 경제적 지위를 뜻하며, 지식인의 계급적 질서에서 중간적 위치에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 유학파는 왜 탁월한 연구를 못하나

김 교수는 트랜스내셔널 미들맨 지식인의 주요 생존 전략으로 미국에서 생산된 지식을 빨리 받아들여 한국의 로컬 지식인들에게 판매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위치는 언제나 상대적이어서 한 사회에서 이방인으로 자리하던 사람이 다른 사회로 가 엘리트 지위를 차지하는 일은 늘 일어나며, 이렇게 엘리트 지위를 차지한 사람들은 ‘지배받는’ 지배자가 되어 이방인으로 살며 배운 지식과 가치 등을 이 사회에 전파한다. 그런 과정에서 이들은 또한 자신에게 부여된 엘리트 지위를 폐쇄적으로 사용하고 주변인을 배제함으로써 또 다른 ‘이방인’을 양성한다는 것이다.

보편적 과학주의를 추구한다는 학계에서 사실상 비합리적이고 전근대적인 ‘사회적 폐쇄(social closure)’가 일어난다고 지적하는 김 교수. 그는 이러한 사회적 폐쇄가 한국 학계를 더욱 비민주적이고, 인맥과 가부장적 유교문화, 조직문화 등의 특수주의가 팽배한 비합리적인 집단으로 만든다고 설명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유학파 지식인은 특유의 트랜스내셔널 위치성으로 말미암아 탁월한 연구 성과를 내는 데 한계가 있다고.

“그들은 한국에서 교수직을 유지하며 연구 활동을 하지만, 그들의 학문적 뿌리는 미국에 있다. 유학파의 연구 활동은 트랜스내셔널 구조를 지니는데, 한국과 미국 사이에 끼여 있는 모순적인 상태에서는 연구에 대한 고도의 집중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한국과 미국 사이에 ‘양다리’를 걸쳐야 하는 학문의 트랜스내셔널 상황으로 인해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창의적 연구를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그 밖에도 한국 대학의 연구 자원에 대한 투자 및 연구 인력의 전문성 부족이 한국에서 탁월한 연구가 수행되지 못하는 요인인데, 이것은 아이러니하게 한국 학생들이 미국 유학을 떠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 대학 문화의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은 이루어지지 않고, 미국 유학을 떠나는 것으로 문화자본의 획득과 트랜스내셔널 변신을 기획한다. 이러한 악순환은 한국 학계의 종속성을 지속시키며, 주체적이고 창의적인 연구의 가능성을 봉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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