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노사정위 합의 유감
  • 이민우 기자 (woo@sisabiz.com)
  • 승인 2015.09.1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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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언어학자인 레이코프는 사람들이 '사고'보다 '직관'에 우선한다고 했다. 이 때문에 프레임(구도)을 어떻게 형성하느냐에 따라 선거의 결과까지 뒤집을 수 있다고 봤다. 그래서 '정치는 프레임 전쟁'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상대가 짜 놓은 프레임에 대응할수록 그 프레임을 강화하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는 선거 뿐 아니라 특정 정책을 추진할 때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중인 '노동시장 개혁'이 대표 사례다. 프레임 자체가 정부와 여당의 입맛에 맞게 설정됐다. '노동시장'이란 표현 속에는 노동력을 상품으로 보고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는 주류 경제학의 시각이 담겨 있다. 그 속에 '개혁'이라는 긍정적 신호를 덧붙여 '꼭 필요하다'는 직관이 형성되도록 명명(命名)했다. 노동시장 개혁을 통해 얻고자하는 '노동유연성'의 또 다른 이름이 '고용불안정'이라는 시각은 함구한 채 말이다.

지난 13일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노동시장 구조개선에 대한 합의를 이뤘다. 여기에 '대타협'이라는 프레임까지 덧씌웠다. 이날 합의문에는 근로계약 전반에 대한 제도 개선이 담겼다. 이른바 '쉬운 해고'가 가능하도록 관련 규정을 손보겠다는 뜻이다. 노동계에서 강하게 반발해왔던 '임금피크제'와 관련해 단체협약 및 취업규칙을 손보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노동계에서 얻어낸 것은 "정부는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고 충분한 협의를 거친다"는 문구를 덧붙이는 데 불과했다. 궁지에 몰린 한국노총 지도부는 일부 산하 산별노조, 민주노총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합의할 수 밖에 없었던 셈이다. '대타협'이란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대목이다.

애초부터 대타협은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이 노동시장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한 이후 정책 추진을 강하게 몰아부쳤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노조가 쇠파이프를 휘두르지 않았다면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달성했을 것"이라며 반노조 성향을 드러냈다. 노사정 대타협이 안 될 경우 정부와 여당이 주도해서 (노동시장 개편 관련) 입법과 행정지침, 예산 마련 등 개혁조처를 추진할 예정이라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물론 노동 현안에 대한 사회적 대타협은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 과도한 정규직 보호가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근로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게 학계의 분석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해야할 일은 노조를 압박하는 일이 아니다. '쉬운 해고'로 일컬어지는 '노동유연성'을 확보하기에 앞서 실업자의 사회적 정착이 가능하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협상과 타협은 서로 '주고 받을 때'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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