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국과 ‘북핵 해결’ 실마리 찾는 게 핵심
  • 고유환 |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통일준비위 위원 (.)
  • 승인 2015.09.16 19:15
  • 호수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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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전략적 도발’ 전망하는 ‘10월 위기설’의 실체

‘8·25 남북 고위급 회담 합의’를 계기로 남북 관계는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합의 이행 여부에 따라 7년 반 동안 단절됐던 남북 관계를 복원하고 새로운 화해·협력 시대를 열 것인지, 아니면 다시 대결 시대로 돌아갈 것인지가 결정될 것이다. 8·25 합의가 만들어짐에 따라 지난 시기 켜켜이 쌓인 갈등 에너지가 무력충돌로 폭발하지 않고 대화 에너지로 전환돼 잠복했다. 지금부터 대화와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갈등 에너지가 다시 돌출하지 않고 남북 관계 발전 에너지로 승화되도록 협상력과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북한과는 합의 이행을 위한 대화와 협상을 진행해야 하고, 국제사회와는 북한의 추가 도발을 억제하고 핵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지금은 한반도 문제를 안정화시키고 남북 관계를 복원할 수 있는 결정적 시기다. 임기 반환점을 돌아선 박근혜 정부로선 남북 관계를 복원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가동하느냐, 아니면 제재와 압력을 지속하면서 임기를 마치느냐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역시 “인민들이 다시는 허리띠를 졸라매는 일은 없게 할 것”이라는 인민생활 향상 공약 실현 여부를 결정할 중요한 시기로 접어들었다. 남북 관계를 복원하고 대외 관계를 확장해야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극단적으로 말하면 북한의 인민생활 향상 공약의 실현 여부는 남북 관계 복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9월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전 70주년(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비롯한 각국 정상들과 톈안먼 성루를 향해 가고 있다. ⓒ EPA 연합

합의 파기 불러올 ‘미사일 발사’ 쉽지 않을 듯

8·25 합의의 첫 단추는 잘 끼웠다. 남과 북은 10월20일부터 26일까지 금강산 면회소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열기로 합의했다. 그동안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남북 합의의 단골 메뉴가 되어 합의 이행의 분위기를 좋게 하기 위한 ‘이벤트성 행사’로 진행돼왔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상봉 정례화 등 인도주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문제는 추후 남북 적십자회담에서 협의하기로 했다. 이번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에서의 주된 관심사는 상봉 시기 문제였다. 남측은 10월10일 조선노동당 창건기념일 이전에 상봉 행사를 갖길 희망했지만, 북측은 행사 준비 등을 이유로 창건기념일 이후로 미루길 주장했다. 결국 북측의 요구가 반영돼 10월20일부터 26일까지 상봉 행사를 갖기로 했다. 북측의 사정을 고려하면 통상 2개월여 동안의 준비 절차가 필요함에도  우리가 한 달 안에 상봉을 추진한 것은 당 창건기념일을 전후한 북한의 이른바 ‘전략적 도발설’, 즉 ‘10월 위기설’ 때문이다.

8·25 합의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당 창건 70주년을 기념해 인공위성을 가장한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가능성을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고, 정부 당국자들도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윤병세 외교부장관은 9월10일 국정감사 답변에서 “김정은 정권의 불확실성에 비춰 ‘8·25 합의’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10월 당 창건기념일 즈음 인공위성을 가장한 장거리(로켓) 발사와 같은 전략적 도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006년 10월9일 당 창건일을 하루 앞두고 북한의 1차 핵실험이 이뤄진 것과, 2012년 2·29 합의 직후인 4월13일 북한이 김일성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광명성 3호 1호기를 발사한 것, 그리고 동창리 장거리 로켓 발사 시설 완공 등을 언급하며 이번에도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8·25 합의가 만들어진 과정을 되짚어보면 어렵게 만든 합의문을 사문화(死文化)할 수밖에 없는 전략적 도발을 북한이 곧바로 감행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물론 북한이 앞뒤가 맞지 않은 행태를 보인 게 한두 번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번 합의문은 북한이 자존심을 버려가며 아주 어렵게 만들어냈고, 최고 지도자가 이행 의지를 강력히 표명하는 것을 볼 때 합의 파기를 불러올 전략적 도발은 쉽지 않을 것이다.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북 의지 확고해 보여

북한은 추가 제재와 압력을 불러올 고강도 도발을 피하고, 지뢰 도발과 포격 도발이라는 저강도 도발을 통해 충격을 주고 벼랑 끝 전술을 펼치며 어렵게 대화 국면을 열었다. 합의 과정에서 남측의 도발 불용 원칙론에 밀려 주체를 명시한 ‘유감’을 표명했다. 가해를 분명히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외교적으로 사과에 해당하는 유감 표시를 남북 합의문에 명문화하면서까지 대화와 협상을 요구한 데는 북측의 다급한 사정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북한은 합의 이후 ‘화(禍)를 복(福)으로 전환시켰다’고 하면서 남북 관계 개선의 분위기 조성과 정세의 안정적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등 이른바 ‘과속론’을 펴기 시작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운명적인 시각에 화를 복으로 전환시킨 이번 합의를 소중히 여기고 풍성한 결실로 가꾸어가야 한다”(8월28일에 진행된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고 하면서 “북과 남은 더 이상 무의미한 언쟁과 별치 않은 문제로 시간과 정력을 헛되이 하지 말아야 하며 북남 관계 역사를 새롭게 써나가야 한다”(로동신문 9월3일자)고 주장했다.

김 제1위원장이 직접 나서 남북 관계 역사를 새롭게 쓰자고 밝히고 북한의 여러 기관과 매체가 합의 이행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북한의 의지는 비교적 확고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북한의 진정성부터 확인해야 한다’고 하면서 ‘속도 조절론’을 펴고 있다. 저강도 도발로 국면을 전환시킨 북한이 지뢰와 포격 도발을 ‘원인 모를 사건’으로 발뺌하고, ‘유감’이란 “그렇게 당해서 안됐습니다”(9월3일 국방위 정책국 대변인 담화)라는 ‘문병의 표현’에 불과하다고 합의 내용을 왜곡하는 것을 볼 때 북한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입장인 것 같다.

박근혜 정부도 남북 관계 복원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북한이 핵 문제와 관련한 진정성 있는 행동 없이 단지 제재와 압력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남북 관계의 대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수용하기 어렵다는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 8·25 합의에서 “남과 북은 남북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당국 회담을 서울 또는 평양에서 빠른 시일 내에 개최”하기로 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남측은 노동당 창건기념일을 전후한 북한의 인공위성을 가장한 장거리 로켓 발사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당국 회담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과연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를 강행할 수 있느냐 여부일 것이다. 북한이 인공위성 발사를 주권국가의 자주적 권리라고 하면서 당 창건 70주년을 기념하는 ‘축포’로 쏠 경우 부담해야 할 비용은 매우 클 것이다. 이미 광명성 3호 1호기의 발사로 2·29 합의가 파기됐고, 2호기 발사로 유엔 안보리로부터 제재 등을 경험한 북한이 이번에 다시 8·25 합의를 사문화시킬 수밖에 없는 장거리 로켓 발사를 감행한다면 유엔 안보리의 강력한 추가 제재를 불러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장거리 로켓 발사와 같은 ‘전략적 도발 카드’는 남북 관계 복원이 어렵고 제재와 압력이 계속될 때 국면 전환용 후속 카드로 남겨둘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이미 지난 5월27일 전략적 도발에 가까운 잠수함 발사 탄도탄(SLBM) 수중 발사 시험 장면의 동영상을 공개했다. 광명성 3호 2호기의 발사 ‘성공’으로 장거리 로켓 발사 능력을 과시한 바 있어 획기적으로 성능을 개량한 로켓이 아니면 굳이 지금 발사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당 창건기념일 열병식에서 신무기 또는 개량된 장거리 미사일을 등장시켜 무력시위를 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군사적·외교적 과시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일각에서 북한의 10월 로켓 발사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은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 있는 로켓 발사 시설의 증축공사가 최근 완료됐고, 당 창건기념일의 축포가 어떤 식으로든 필요할 것이라는 점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8·25 합의 이후 북한이 “나라의 통일을 위하고 민족의 평화를 위하는 일은 앞당길수록 좋은 것”(9월3일 국방위 정책국 대변인 담화)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볼 때 합의 이행을 가로막을 전략적 도발을 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북한의 전략적 도발 가능성을 부각시키고 우려를 표명하면 북한은 역으로 이를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으므로, 이에 대해서도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9월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전 70주년(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비롯한 각국 정상들과 톈안먼 성루를 향해 가고 있다. ⓒ EPA 연합

7년간 중단된 6자회담 재개 서둘러야

8·25 합의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에서 열린 9·3 전승절 행사에서 열병식을 참관하고 한·중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등 ‘통일외교’를 적극화하고 있다. 지난 9월2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한·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한 중국 측의 협력 약속을 받은 박 대통령은 9월4일 “가능한 조속한 시일 내에 한반도 평화통일을 어떻게 이루어나갈 것인가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북  한은 대외 선전 매체인 ‘우리민족끼리’ 9월8일자 논평에서 “오늘의 조선반도 정세 흐름에 너무도 역행하는 불미스러운 언사가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논평은 “우리 민족끼리를 두고 외부 세력에게 조국통일 문제, 북남 관계 문제를 구차스럽게 청탁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라며 “가시 박힌 말 한마디, 무례한 행동 하나로도 합의가 휴지장이 되고 북남 관계가 또다시 대결의 원점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8·25 합의 이후 박근혜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 사업에 집중하면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9월과 10월 사이에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전은 치열해질 전망이다. 9월25일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주석 사이에 미·중 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이고, 10월16일 한·미 정상회담도 예정돼 있다. 한·중 정상회담에서 언급된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8·25 합의 이행과 남북 관계 복원의 핵심 변수는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한 해법을 어떻게 마련하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북한이 핵보유국의 지위를 보장받으면서 제재를 풀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남북 관계 개선을 추진한다면 관계 복원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북한의 국지 도발 억제에 집중하는 동안에도 북한의 핵능력은 고도화되고 있다. 남북 관계 복원 노력과 함께 7년여 동안 중단된 6자회담 재개를 서둘러야 한다.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반복되고 있는 충돌과 갈등을 근원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불안정한 정전 질서를 평화 질서로 바꾸기 위한 노력도 본격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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