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CJ 회장 석방 불씨 살아났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5.09.16 19:49
  • 호수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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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고법 판결 파기 환송…석방돼도 한동안 경영 참여 힘들 전망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기사회생할까? 이 회장은 2013년 7월 회삿돈 수천억 원을 횡령·배임·탈세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1심에서 검찰은 공소장 변경을 통해 전체 혐의 금액을 1657억원으로 줄였지만, 재판부는 1342억원만 유죄로 인정했다. 2심에서는 조직적인 부외자금 조성을 통해 603억원을 횡령한 혐의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항소심까지 유죄가 인정된 금액은 최초 기소 금액의 3분의 1 수준인 675억원으로 낮아졌다.

“재벌에 대한 대법 판결 관대해졌다” 지적도

대법원은 9월10일 “309억원의 배임액 산정에도 문제가 있다”며 징역 3년과 벌금 252억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 이 회장은 2007년 자신 소유 회사인 팬 재팬(Pan Japan)을 통해 일본 도쿄의 빌딩 2채를 매입했다. 신한은행에서 39억5000만 엔(한화 309억원)을 대출받는 과정에서 CJ그룹 일본법인(CJ Japan)이 연대보증을 서게 했다. 검찰은 이를 CJ 재팬에 대한 배임행위로 판단했다. 1·2심도 유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대출금 채무 전액을 팬 재팬의 이득액으로 인정해 특경법(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적용한 원심의 판단은 특경법의 이득액 산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며 사건을 다시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1600억원대 횡령·배임·탈세 혐의로 기소된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9월12일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 선고를 받은 후 법정에서 나오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CJ그룹은 “재판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CJ그룹의 한 관계자는 “감염 우려 등으로 아버지의 빈소도 못 지켰을 정도로 (이 회장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며 “주요 유죄 부분이 파기 환송돼 형량 재고의 기회를 얻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대법원의 고무줄 잣대를 지적한다. “재벌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다시 관대해진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 회장을 두고 벌이는 법리 공방은 향후 서울고법의 재심리를 통해 판가름이 날 전망이다. 이 회장에 대한 파기 환송심 재판은 이르면 올 연말, 늦어도 내년 초에는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초 법관 정기인사가 예정돼 있어 그 이전에 결정이 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재계의 관심은 파기 환송심에서 이 회장이 집행유예 선고를 받을 수 있을지 여부에 쏠린다. 언론에서는 이 회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다. 대법원이 특경가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봤기 때문에 검찰은 파기 환송심에서 업무상 배임 혐의를 적용할 가능성이 크다. 배임액수 역시 줄어들게 되면 집행유예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지난해 2월 대법원에서 ‘400여 억원의 배임액을 다시 산정하라’는 판결을 받고 파기 환송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며 “신장이식 수술 후유증으로 이 회장의 건강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 점도 양형에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이 집행유예 선고를 받아도 당장은 경영 참여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 회장의 건강 상태는 현재 악화될 대로 악화된 상태다. 한때 70~80㎏을 오르내리던 몸무게는 40㎏대까지 빠졌다. 2013년 8월 부인 김희재씨로부터 신장을 받아 이식 수술을 한 후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형집행정지 상태에서 면역 억제 치료를 받고 있지만 병세는 좀처럼 호전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구속집행정지 신청이 거절되면서 서울구치소에 재수감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두 차례나 응급 상황이 발생해 병원에 후송되기도 했다. 병원과 구치소를 오가면서 이 회장의 병세는 더욱 악화됐고, 면역 기능이 더 떨어지면서 몸무게가 더욱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이 회장이 풀려나도 현재의 그룹경영위원회 체제는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CJ그룹은 이 회장이 구속되기 직전인 2013년 7월 손경식 회장과 이미경 부회장, 이채욱 CJ대한통운 부회장, 이관훈 ㈜CJ 사장, 김철하 CJ제일제당 사장 등이 이끄는 그룹경영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위원회는 이 회장을 대신할 그룹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다. 2013년 10월 위원회 멤버 중 한 명인 이관훈 사장이 물러나면서 현재는 4인 체제로 운영 중이다.

하지만 위원회가 이 회장의 공백을 메우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룹을 이끄는 구심점이 사라지면서 대규모 투자나 신규 시장 진출 논의가 대부분 중단됐다. 2012년 2조9000억원에 이르던 그룹의 투자 규모는 지난해 1조9000억원으로 축소됐다. 올해는 이마저도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회장이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나면 사정이 달라질 수 있다. 당장은 경영 참여가 힘들겠지만, 그동안 미뤄왔던 대규모 투자나 신규 시장 진출부터 우선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CJ그룹에서 이 회장이 갖는 상징성이 크다고 그룹 안팎에서는 보고 있다.

파기 환송심서 실형 유지되면 경영 더 악화

일각에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게 나온다. 대법원은 현재 배임에 대한 유죄 판단에는 이견이 없는 상태다. 무죄가 아니라 형법상 배임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항소심까지 유지해온 조세 포탈 혐의와 횡령 혐의도 대법원에서 모두 받아들여진 상태다. 때문에 파기 환송심에서도 감형 폭이 크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파기 환송심에서도 이 회장이 실형 선고를 받게 되면 CJ그룹의 경영 상황은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이에 CJ그룹 역시 이 회장이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J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CJ그룹은 매년 1월 중순께 발표했던 투자 및 고용 계획을 올해는 발표조차 하지 못했다”며 “총수 공백이 장기화할 경우 2020년까지 매출 100조원, 영업이익 10조원, 해외 매출 비중 70%를 달성하겠다는 이 회장의 ‘그레이트 CJ’ 구상 역시 실현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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