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정말 허리띠 졸라맨 것 맞나
  • 이민우 시사비즈 기자 (woo@sisabiz.com)
  • 승인 2015.09.16 19:52
  • 호수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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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예산안 올해보다 3% 증가한 386조7000억원…복지 예산 늘리고 SOC 예산 줄여

정책은 그래프 속 숫자일 때 무채색이지만, 숨겨진 속살을 담은 리트머스 종이에 대면 다른 색깔을 나타낸다. 386조7000억원. 정부가 나라 살림에 필요하다고 발표한 내년도 예산 규모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경기 부양과 재정 건전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최적의 균형점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정치권에서는 ‘짠물 증액’이라며 재정의 역할을 포기했다는 아쉬움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과연 그럴까. 정부 예산안을 리트머스 종이에 대보자.

정부가 9월11일 국회에 제출한 2016년도 예산안의 총지출 규모는 386조7000억원이다. 올해 375조4000억원보다 11조3000억원(3.0%) 늘어났다. 3.0%라는 지출 증가율은 금융위기 발생 직후인 2010년의 2.8%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언뜻 보면 최경환 경제팀이 이어온 공격적인 확대 재정 정책을 접은 것도, 균형 예산을 편성한 것도 아니다. 정치권에서 짠물 예산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9월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16년도 예산안 사전 브리핑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387조원 예산안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

여기서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여파와 세계적인 경제 회복 지연 등으로 나라 살림이 어렵다며 편성한 올해 추가경정예산이다. 정부는 9조3000억원을 미리 끌어와 쓰고 있다. 이 돈을 포함할 경우 실질적으로 늘어난 내년 예산은 20조6000억원이다. 역대 최대 수준인 셈이다. 정부가 정치권의 확대 재정 정책 주문에 대비해 마련해놓은 논리이기도 하다.

이 같은 계산법은 사회간접자본(SOC) 분야에 고스란히 적용된다. 내년 SOC 예산은 올해보다 6%나 줄었다. 정부가 허리띠를 졸라맸다는 대표적인 분야였다. 그런데 정부는 내년에 써야 할 SOC 예산을 추경을 통해 미리 가져다 썼다. 도로의 경우 몇 년에 걸쳐 공사가 진행되는데 내년에 집행될 예산을 올해 미리 풀었다는 얘기다. 공사 작업 속도에는 한계가 있으니 내년도 예산안과 마찬가지다. 방문규 기획재정부 제2차관도 “내년 SOC 예산안에 올해 추경 예산을 더하면 올해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올해보다 6.2% 늘어났다는 복지 예산에도 함정은 있다. 정부의 설명대로 복지 예산은 역대 최대 규모이자 전체 예산의 3분의 1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한다. 일자리와 보건, 노동을 포함한 복지 예산은 올해 본예산(115조7000억원) 대비 7조2000억원(6.2%) 늘어난 122조9000억원이 책정됐다. 이 때문에 정부는 복지 지출을 늘렸다고 자화자찬했다. 일각에서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복지 예산이 국가 경제를 위협한다며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

복지 예산을 살펴보면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군인·사학연금에서 자연적으로 증가하는 돈만 3조461억원이다.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서 기초연금 예산은 자동으로 3528억원 늘어난다. 큰 정책 변화 없이 자동적으로 늘어나게 돼 있는 자연 증가분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셈이다. 특히 추경을 반영한 올해 예산과 비교하면 증가액은 2조5000억원에 그친다.

게다가 387조원 예산에는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해야 할 재정이 빠져 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기초연금과 영·유아 보육비 지원이 대표 사례다. 지방정부는 기초연금 지급을 위해 내년에만 2조8000억원 가까운 재원을 부담하게 됐다. 기존 기초노령연금에는 매년 1조원 정도만 들었던 것을 감안하면 지자체 부담이 크게 늘어난 셈이다. 정부는 지방교부세를 올해보다 1조원 이상 늘린다고 했지만 올해 감소분을 다시 채워넣는 수준에 불과했다. 특히 정부가 올해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누리과정 예산을 시·도교육청 의무지출경비로 지정하겠다고 예고하자 시·도 교육감들은 “예산 떠넘기기”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늘어가는 나랏빚…균형 재정 약속 포기

이렇게 짜인 예산은 고스란히 국가채무로 이어졌다. 정부는 내년도 국가채무가 올해 595조1000억원에서 내년 645조2000억원으로 50조1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이로 인해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40%를 사상 처음으로 넘게 됐다. 적자 예산을 편성한 데다 지방 부채, 채무에 대한 이자 등이 불어나기 때문이다. 이로써 임기 내 균형 재정을 달성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말은 무색해졌다. 그나마도 내년부터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고 구조 개혁의 성과가 가시화돼 재정 수입이 연평균 4% 증가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럼에도 정부 태도는 안일했다. 오히려 국가채무 증가에 대한 비판을 우려해 별도의 참고자료를 마련했다. 정부는 이 자료에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도 증가했으나, 그 증가 폭은 주요국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또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20개국 모임(G20) 등에서 유연한 재정 정책을 권고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우리나라의 재정 건전성이 무디스·IMD(국제경영개발연구원) 등으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도 별도로 서술했다.

하지만 국가채무에 공기업이 지고 있는 빚을 합산할 경우 얘기는 달라진다. 국가채무에 비금융 공기업 부채를 포함한 공공부문 부채는 900조원 수준이다. GDP 대비 62.9%에 이르는 규모다. 여기에 금융 공기업의 부채, 공무원·군인연금 등 정부가 미래에 지급해야 할 연금 충당 부채 596조3000억원까지 더하면 국민 부담은 배가될 수밖에 없다. 특히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관련 예산은 급속히 늘어나게 된다. 빼도 박도 못하는 경직성 예산이다.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지만 5년 단위의 국가재정운용계획은 매년 필요에 따라 바뀌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 첫해 마련한 국가재정운용계획(2013~17년)은 ‘균형 재정’(수입과 지출을 같게 운영하는 재정 운용)을 목표로 삼았다. 지난해엔 경기 회복 둔화 등을 이유로 2018년 국가채무 목표를 GDP 대비 35%로 수정했다. 이에 대해 방문규 기획재정부 제2차관은 “지난해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30% 중반대로 관리하겠다고 말했지만 40%를 넘어서게 돼서 재정 당국으로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세계적인 경기 둔화에 대응하기 위해선 재정 확장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확장적 재정 운용 과정에서 국가채무 비율이 상승하는 건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해마다 바뀌는 중기 재정 전망의 신뢰성과 실효성에 대한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수립만 있고 운용은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가재정운용계획은 5년 단위의 재정 관리 방안을 담고 있다. 2004년부터 해마다 정부가 수립해 2007년부터 국회에 보고하고 있다. 정부가 매년 낙관적 전망을 반복하면서 예산과 결산에서 오차가 발생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분석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3년까지 경제성장률 전망 평균치와 실제 평균치는 1.5%포인트 격차를 보였다.

‘잃어버린 20년’의 늪에 빠지기 전 일본의 국가채무는 GDP 대비 40%대였다.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빠져 있는 스페인도 위기 진입 전이던 2007년 36%에 불과했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경제 성장 둔화가 이어지면서 국가채무를 감당하기 버거워진다는 점이다. 세수 감소는 재정적자를 확대시키고 다시 국가채무가 늘어나게 하는 악순환을 만든다. 참여연대는 “이명박 정부 후반기에 10조원대에 머무르던 관리재정적자가 박근혜 정부 임기 첫해 21조원으로 대폭 늘어났고 올해 상반기에는 약 43조원에 달한다”며 “여전히 낙관적인 세입 전망으로 구태를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내년 총선과 예산의 상관관계

최경환 부총리 겸 기재부장관은 “세수 결손을 피하기 위해 경제 전망을 매우 보수적으로 잡았다”며 실질 경제성장률을 3.3%로 잡았다. 3대 신용평가사 중 한 곳인 무디스는 9월8일 내년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치를 3.4%에서 2.4%로, 영국 옥스퍼드 대학 산하 연구기관인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역시 3.4%에서 2.5%로 대폭 낮췄다. 같은 이유로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도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3.2%에서 2.2%로 하향 조정했다. 정부가 말하는 보수적 전망치(3.3%)보다 1%포인트 안팎이나 낮은 수준이다.

정부의 장밋빛 전망은 고스란히 세수 결손으로 이어진다. 세수 결손 규모는 2012년 2조8000억원, 2013년 8조5000억원, 지난해에는 10조9000억원에 달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번 예산안에는 뾰족한 세수 확보 대책도 담겨 있지 않았다. 고집불통처럼 ‘증세는 없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경제가 살아나면 세수도 늘어날 것”이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지난해에도, 올해 추경예산 편성 때도 반복했던 말이다. 법인세를 포함한 증세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여야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증세를 추진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내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있는 점도 국가의 재정 건전성에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의원들이 지역구 개발에 필요한 SOC 예산을 챙기기 위해 동분서주할 가능성이 크다. 새누리당은 이미 예산안 당·정 협의 과정에서부터 ‘과감한 예산 편성’을 주문했다. 매년 재정 건전성 문제를 언급했던 야당은 올해 유독 예산 감액을 주장하지 않고 “재정 역할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예산안을 심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사실상 예산 확대에 동조하고 있다.

다만 국회가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총지출 규모를 늘린 적은 거의 없다. 2009년과 2010년의 경우 정부가 제출한 예산이 국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증액됐지만, 사업 예산으로 구성된 총지출이 증가한 것이 아니라 총수입의 변동 등 ‘특수 상황’ 때문이었다. 기재부 관계자는 “국회가 예산안의 총지출 규모를 증액시켜서는 안 된다는 점은 불문율(不文律)처럼 지켜져왔다”며 “국회가 총지출 규모를 늘린다면 부작용이 심각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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