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리더십] 선물과 뇌물의 차이를 아십니까?
  • 김성회 | CEO리더십연구소장 (.)
  • 승인 2015.09.16 20:09
  • 호수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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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아래로 흐르면 선물, 아래에서 위로 흐르면 뇌물

편집자주: 시사저널은 이번 호부터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장의 ‘한자 리더십’을 연재한다. 한자 리더십의 ‘한자’는 한자(漢字)와 한 글자의 한자를 중의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번 호엔 ‘뇌물 뇌(賂)’와 얽힌 이야기를 담는다. 경영학 박사 출신인 김성회 소장은 리더십 스토리텔러로 동양 고전과 현장 사례를 이야기로 풀어내는 강의와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용인술> <강한 리더> <성공하는 CEO의 습관> 등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점심은? 이 질문에 당신은 뭐라고 답하겠는가.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의 26억원짜리 점심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부자들은 안다. 26억원짜리 점심보다 더 비싼 점심은 공짜 점심이란 것을. 세상의 진리를 한 줄로 모아 정리하면 ‘공짜는 없다’라고 하지 않는가. 부자들치고 자신의 돈을 설렁설렁 여기는 법은 없다. 만일 대단찮게 여겼다면 부자가 될 수 없다. 피 같은 돈이란 말은 있어도 물 같은 돈이란 말은 없지 않은가. 부자들은 “목숨 바쳐도 될까 말까 해도, 될까 말까 한 게 돈을 버는 것”이라고 말한다.

ⓒ 일러스트 윤세호

“발 뻗고 자면 선물, 그렇지 않으면 뇌물”

‘주는 사람의 마음’과 받는 사람들의 말은 정반대다. 뇌물 관련으로 법정에 서게 된 사람들은 “대가성이 없다” “평소 형님 아우로 지내 그냥 (공짜로) 줬다”고 말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최근 롯데 사태를 보라. 피가 섞인 형제도 진흙탕에서 싸우는 판이다. 하물며 물로 엮인 타인들이야 어떻겠는가. 목숨 바쳐 번 돈을 공짜로, 아무 대가 없이 주는 부자는 세상에 없다. 그것이 빠른 시일 내에 돌아올지, 좀 더 기일을 두고 지켜볼지, 직접적으로 이용할지, 호가호위 세력 과시용으로 활용할지, 공격용인지 방어용인지는 모르지만 뇌물을 받는 순간, 주도권의 공은 상대에게로 넘어간다.

역사에서 뇌물에 대한 경계는 반복적으로 강조됐다. 나라의 성패, 인재의 판별이 다르지 않았다. 중국 제(齊)나라 시조였던 강태공의 ‘사람 보는 법’엔 ‘미리 재물을 주는 시험을 해봐서 그 사람이 돈에 깨끗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미리 살펴보라’는 것이 끼어 있다. 반대로 상대가 나라이든 개인이든 넘어뜨리고 싶으면 전력 증강보다 서두르는 게 과도한 예물, 즉 뇌물 제공이었다. 오(吳)나라 부차를 패망의 나락에 떨어뜨린 것은 예리한 무기와 군사가 아닌 월왕 구천이 뇌물로 바친 미인 서시였다. 뇌물은 상대를 망하게 하는 ‘트로이의 목마’인 셈이다.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을 런던탑에 갇히게 한 것은 그의 올곧은 사상이 아니라 대법관으로서 뇌물을 받은 ‘순간의 판단 실수’였다.

동서고금 이 같은 뇌물 망신담이 반복됨에도 늘 약발(주는 사람들 입장에서 본)은 나름으로 컸다. 오늘날의 ‘유전무죄 무전유죄’와 마찬가지로 예전에도 ‘천금은 죽지 않고 백금은 벌 받지 않는다’ ‘천금을 가진 부잣집 아들은 저잣거리에서 죽지 않는다’는 식으로 뇌물에 관한 ‘야담과 진실’이 존재했다.

 뇌물의 뇌(賂)는 조개 패(貝)+낱낱의 각(各)자로 구성돼 있다. 조개 패는 일반적으로 재물을 상징하고 각(各)은 이르는 것으로 ‘재화가 이른다’는 해석, 각각 개별적으로 은밀하게 유통되는 화폐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는 설 등이 있다. 그 밖에 貝+路(길 로)가 합쳐진 글자로 보아 자신의 길(路)을 터서 지나가게 해달라고 산적 등에게 통행세처럼 내는(주는) 돈(貝)이나 물건을 뜻한다고 풀이하는 시각도 있다.

분양 대행업체로부터 금품을 챙긴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박기춘 의원은 8월19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 연합뉴스

뇌물은 자신을 망하게 하는 ‘트로이의 목마’

영어로 뇌물을 뜻하는 ‘bribe’는 중세 프랑스어에서 기원한 것으로, 거지에게 주는 빵 한 조각, 구호물자라는 뜻이다. 15세기에 이르러 해를 입지 않으려고 도둑에게 주는 선물을 빙자한 통행세, 여기서 선심을 베푸는 조건으로 강탈자가 요구하는 선물이란 더 적극적인 뜻으로 진화(?)했다. 또 영어 속어로 야자유(palm oil)가 뇌물이란 것 역시 의미심장하다. 아마도 관계에 기름을 쳐준다는 데서 유래했을 것이다. 동서고금 할 것 없이 뇌물에는 ‘강탈과 보호’라는 얽히고설킨 상호 거래 관계가 잠복해 있다.

흔히 선물과 뇌물을 구별하기 힘들다고 한다. 노회한 뇌물일수록 떡밥은 크게 할망정 부채의식과 대가성이란 갈고리는 최대한 숨겨져 있어서다. 표면적 부담은 주지 않는 게 뇌물의 기본 매너이기도 하다. 혹자는 “받거나 주고 나서 발 뻗고 자면 선물, 그렇지 않으면 뇌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필자가 들은 제일 확실한 구분법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면 선물, 아래에서 위로 흐르면 뇌물’이란 것이었다.

 얼마 전 본 영화 <베테랑>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야,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체면)가 없냐? 잘 살지는 못하더라도 쪽팔리게 살지는 말자.” 돈도 ‘가오’도 다 가지려 하는 것은 과욕이다. 돈이 없을망정 가오마저 포기하지는 말자. 이른바 우리 시대의 리더층에게 말해주고 싶다. 백주대낮에 길을 가로막아 통행세를 받는 산적은 되지 말라. 군자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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