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통신비 상향평준화… “단통법, 누구 위한 법인가”
  • 엄민우 기자 (mw@sisabiz.com)
  • 승인 2015.09.17 08:34
  • 호수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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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에 아줌마 고객 한 명 오면 그날은 소고기로 회식합니다.”

단통법(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 시행되기 전 한 휴대전화 판매점 직원이 했던 말이다. 젊은 층에 비해 휴대전화 정보에 취약한 아줌마 고객들은 보조금을 거의 주지 않아도 물라 비싸게 팔 수 있다는 것이다.

단통법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행됐다. 복잡한 휴대전화 유통구조를 개선해 시장 물정에 어두운 아줌마나 노인도 손해 보지 a않고 통신비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였다.

단통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다. 법 시행 후 휴대전화 사용자의 삶이 얼마나 바뀌었을까.

위 사례처럼 아줌마 고객이 왔다고 대리점이 소고기 회식하는 일은 없어졌다. 단통법 실시 뒤 공시보조금(휴대전화를 사면서 고객이 지원받는 돈)이 공개한 터라 이제 모두가 동일한 보조금을 적용받는다. 이젠 아줌마도 학생도 같은 돈을 내게 됐다.

같은 돈을 지불한다니 얼핏 시장이 투명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너도 나도 같은 돈을 내기가 아니라 통신비를 줄이는 것이 단통법의 핵심이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통신비 부담이 줄었다는 이가 없다.

그 비밀이 최근 공개됐다. 우상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최근 “단통법 실시이후에도 통신3사의 ARPU(가입자당 평균매출)는 증가했다”고 폭로했다.

ARPU는 통신가입자 1인당 통신사의 매출액이다. 이를 소비자 입장에서 다시 표현하면 ‘통신비 부담’이다. 단통법 이후에도 통신비 부담은 늘어난 것이다.

결과적으로 단통법은 눈치 빠른 소비자와 그렇지 못한 소비자의 통신비를 상향평준화 시켰다. 그런데 최근 국감장에 나온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과 최성준 방통위원장은 이런 상황을 “차별이 줄었다”는 어이없는 말로 표현했다.

그 ‘차별’이라는 것도 완벽히 사라진 것 같지 않다. 휴대전화를 더 싸게 사는 사람은 여전히 존재한다. 공시보조금 외 추가보조금이 있기 때문이다.

제조사가 통신사에 휴대전화를 팔 때마자 주는 리베이트로 인해 추가보조금이란 것이 생겼다. 리베이트는 불법이 아니다. 리베이트 중 일부를 소비자에게 주면 그 소비자는 결과적으로 싸게 전화를 구입하는 것이다.

최민희 의원실에 따르면 단통법 시행기간 삼성전자와 LG전자가 휴대전화 판매 대리점에 지급한 리베이트는 8018억 원에 달한다.

이러다 보니 제조사가 통신사에 지급하는 지원금을 분리 공시하자는 말이 나온다. 분리 공시는 휴대전화 원가를 공개하는 터라 자칫 국내 휴대전화 제조사가 해외 판매하는데 지장을 줄 수 있다. 극약처방이지만 오죽하면 이런 말까지 나올까 생각해볼만하다.

단통법은 시행 후 3년이면 자동 폐기되는 일몰법이다. 1년 만에 ‘성공했다’고 자화자찬하고 만족하면 나머지 2년도 불 보듯 뻔하다. 정부는 나머지 2년 동안이라도 통신사와 제조사 모두 단통법 탓에 욕먹지 않고 소비자 부담을 실질적으로 줄일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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