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유명무실한 법무부 상장회사 특례
  • 김병윤 기자 (yoon@sisabiz.com)
  • 승인 2015.09.21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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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지배구조 이슈가 이번 국정감사의 핵심 이슈가 됐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비롯해 최치원 삼성물산 사장, 조대식 SK(주) 대표 등이 국정감사장에 출두했다. 삼성과 SK그룹에 의결권을 행사한 홍완선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도 국감장에 나왔다. 이 자리에서 여야 의원들은 불투명한 기업지배구조를 질타했다.

그런데 그들은 한국 기업지배구조 문제의 이면에 제도적 문제가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일부 기업인이 지배구조에 대해 잘못된 태도를 지니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기업지배구조 문화도 취약한 것도 현실이다.

그렇지만 취약한 구조가 오래도록 개선되지 않는 것은 관리·감독기관이 방치한 책임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힘없는 기업만 공격할 뿐 관리·감독 주체가 누구이며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매년 아시아 기업지배구조 순위를 발표하는 ACGA(Asian Corporate Governance Association)는 지난해 한국을 11개국 가운데 8위로 매겼다. 2012년에도 한국은 8위였다.

이 기관은 한국이 기업지배구조 평가항목 중 제도 도입 및 이행(CG Rules & Practice)이나 집행상황(Enforcement), 기업지배구조 문화(CG Culture) 등에서 평균에 미치지 못했고 지적했다. 대신경제연구소는 정부의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추진력 결여, 지지부진한 지배구조개선 관련 제도 정비, 재벌의 지배구조 문제 등이 한국의 등급을 떨어뜨렸다고 설명했다. 한국 기업지배구조가 취약한 데는 정부 책임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문제가 지난 2009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통합법, 이하 자통법) 제정 때 내재됐다고 지적한다. 당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와 법무부는 증권거래법 중 상장회사 특례조항을 두고 마찰을 빚었다. 이 특례조항은 사외이사 선임, 주요주주 등 이해관계자와의 거래, 상근감사, 감사위원회 등 상장회사 지배구조와 관련된 것들이다.

그때 재정경제부는 상장회사 특례조항은 증권거래법에 속해 있던 조항이므로 자신들 소관이라고 했다. 반면 법무부는 상장법인 특례조항도 상법 중 회사편 규정에 속하므로 법무부 관할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상장회사 특례는 회사법에 편입돼 법무부가 맡게 됐다.

당시 법조계는 이에 우려를 표명했다. 정경영 성균관대 법과대학 교수는 “법무부는 상장법인에 관한 전문 인력이 부족하고 조직 간부가 주로 검사로 구성돼있다”며 “법무부가 기업법제를 전문적으로 담당할 인력을 확보하도록 조직을 대대적인 개편하지 않는다면 상장법인 특례조항이 상법 특례법 또는 상법 개정안에 포함되는 게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맡겨줘도 일을 할 수 없다는 거였다.

실제 그런 상황이 벌어졌다. 인력이 없어서다. 상장회사 특례조항을 담당하는 법무부 상사법무과는 법무관을 포함해 20명 정도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상장회사 특례조항 외에도 많은 업무를 해야 한다. 게다가 상장회사가 2000여사나 되기에 애초 상사법무과가 특례조항 업무를 맡기엔 버거울 수 밖에 없었다.

이는 특례조항과 관련해 상장사를 처벌한 게 전무하다는 데서 잘 나타난다. 기업지배구조 문제가 계속 불거졌는데도 처벌이 전무하다는 것은 담당 부처가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법무부는 이제라도 상장회사 특례조항이 제대로 작동될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해야 한다.

첫 방안은 업무 위탁이다. 현재 금융위원회는 증권선물위원회를 열고 상장사 사업보고서·감사보고서 등에 대해 감리 활동을 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라는 실무 조직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금감원은 조직이나 규모가 상사법무과에 비해 훨씬 크다. 또 상장회사 실무를 잘 파악하고 있기도 하다.

다른 대안은 협회 차원 자율규제에 넘기는 것이다. 회계사협회나 변호사협회 등은 회원을 관리·감독하고 자체적으로 징계까지 하고 있다. 상장회사에 대해서도 정부는 관련 협회에 관리·감독 권하는 이양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능력을 넘어선 업무를 마냥 끌어안고 있는 게 정부에게도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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