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내세울 만한 정신적 지주 없는 불행한 대한민국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5.09.22 09:54
  • 호수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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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 인물 중 멘토로 삼고 싶은 인물’ 1위는 반기문… 지지율 10% 넘긴 인물 없어

국민이 멘토(스승)로 삼는 인물은 누구일까? 시사저널이 각계 전문가 1000명에게 현존하는 인물 가운데 멘토로 여기는 사람을 물었더니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96명으로 가장 많았다. 행정관료·교수·언론인·법조인·정치인·기업인·금융인·문화예술인으로부터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반 사무총장은 사회단체 그룹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뒤졌고, 종교인 그룹에서도 법륜 스님(평화재단 이사장)을 따라가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 반 사무총장의 멘토는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었다. 1944년 충북 음성에서 태어난 그는 학창시절 수필대회에 입상해 미국을 잠시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그때 미국 대통령을 만난 경험이 계기가 돼 외교관의 꿈을 키웠다. 1970년 서울대에서 외교학을 전공한 그는 외무고시에 합격해 외무부에 들어갔다. 1991년 외교부 유엔과장, 2004년에는 외교부장관에 올랐다. 2006년 제8대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됐다. 그는 아시아에 돌아갈 차례였던 당시 유엔 사무총장직을 놓고 인도 출신의 샤시 타루르와 경쟁했다. 최초 한국인 출신이자, 아시아 출신으로서는 두 번째다. 첫 아시아 출신 유엔 사무총장은 1961년부터 1971년까지 재임한 미얀마 출신의 우 탄트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 EPA연합

2위 박원순 서울시장, 3위 법륜 스님

반 사무총장은 2012년부터 두 번째 임기를 수행 중이다. 그는 연임 수락 연설에서 국제사회의 통합을 촉구하는 말을 남겼다. “우리는 통합과 상호 연결의 시대, 어떤 나라도 혼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시대, 모든 나라가 해결책 일부가 되어야만 하는 새로운 시대 속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는 중국과 미국 등 강대국 사이에서 기후 문제 등 민감한 이슈를 노련하게 협상해왔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는 2013년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32위에 오른 바 있다. 그러나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과 비교해 추진력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그의 관리 능력 부족을 지적한 바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 부문에서 전체 응답자의 3.8% 지지를 받아 2위를 기록했다. 그는 1980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조인의 길을 걸었다. 1983년 변호사 활동을 시작하면서 인권 문제에 관심을 보였다. 2001년 아름다운재단을 설립해 시민운동가로 변신했다. 2011년 보궐선거에서 35대 서울시장이 됐고 현재 연임 중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젊은 세대 문제에 관심을 뒀다. 서울시장 후보 시절 ‘반값 등록금’ 공약을 내세웠고, 서울시장이 된 직후인 2012년 서울시립대 고지서에 기재되는 명목등록금을 50% 삭감하는 등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같은 해 서울 강남권 재건축 추진 단지에 대해 60㎡ 이하 소형 주택의 비중을 30% 이상 짓도록 하는 정책을 내세우자 시민들은 큰 집에 살고 싶은 욕구를 무시한 것이라며 반발했다. 그즈음 그의 아들은 병역 기피 의혹 논란에 휩싸였고, 이 문제는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뜨거운 감자가 됐다.

이 분야 3위는 종교인이 차지했다. 법륜 스님이 2.6%의 지지를 받았다. 법륜 스님은 대다수 전문가 그룹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박원순 서울시장보다 한 단계 아래의 지지를 받았으나, 행정관료와 종교인 그룹으로부터는 박 서울시장과 반 사무총장을 뛰어넘는 결과를 얻었다.

그는 1953년 경상남도 울산군 출생으로 1969년 불가에 입문했다. 그러나 조계종의 공식 계단이 아닌 별도 계단으로 득도했기 때문에 조계종 승적에 대한 시비가 계속됐다. 제도권 밖에서 정토회(수행공동체)를 운영하면서 기성 교단으로부터 자유로운 불교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는 환경·사회·구호 운동가로 유명하다. 2002년 구호단체 활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막사이사이상 ‘국제평화와 이해’ 부문을 수상했다. 2010년에는 10위권에 들지 못했던 그는 사회를 향해 입바른 소리를 쏟아내면서 국민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박원순 서울시장, 법륜 스님, 손석희 JTBC 사장 ⓒ 시사저널 이종현 서울시 제공

개그맨보다 낮은 지지 받은 대통령

그 밖에 손석희 JTBC 보도담당 사장은 이 부문 4위를 차지했고, 문재인 의원과 안철수 의원은 각각 5위와 6위에 올라 체면치레를 했다. 지난해 한국을 찾아 소박한 이미지를 보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7위에 올랐다. 박근혜 대통령은 개그맨 유재석(7위)보다 낮은 9위에 그쳤다.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는 10위에 턱걸이했다.

멘토 부문에서의 특징은 지지율 10%를 넘긴 인물이 없다는 점이다. 대부분 2~3%대의 지지율에 머물렀고 6위 이하는 1%대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를 균형 잡힌 눈으로 바라보며 국민을 이끌 ‘정신적 지주’가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 우리가 멘토로 꼽은 인물들은 유명할 뿐, 그들이 과연 국민의 롤 모델일까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며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대통령이 존경의 대상이든 안줏거리든 관심의 인물인데, 대통령에게 무관심할 정도로 우리 사회는 정신적 지주가 없는 불행한 상태”라고 분석했다.

2010년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조사에서는 당시 안철수 카이스트 교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이 상위 그룹을 형성했다. 5년 만에 반 사무총장은 1위로 약진했고 박원순 서울시장도 1계단을 뛰어올랐지만 안철수 의원은 6위, 이건희 회장은 19위, 박근혜 대통령은 9위로 각각 후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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