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밥상에 올려진 잠룡들의 운명
  • 김현일 대기자 (.)
  • 승인 2015.09.22 09:55
  • 호수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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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세론’이냐 ‘대역전극’이냐…대선 2년 전 한가위가 달아오르기는 이례적

김무성, 박원순, 문재인, 안철수, 오세훈, 유승민…. 지금의 차기 대권 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늘 거명되는 익숙한 이름들이다. 한국갤럽이 9월11일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이 각각 15%로 공동 선두를 차지했다. 다음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12%)와 안철수 전 대표(9%), 오세훈 전 서울시장(6%), 유승민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4%) 순이다. 한국갤럽 측은 “김 대표의 1위는 지난해 8월 첫 조사 이후 처음”이라며 “그의 둘째 사위 마약 논란은 조사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말로 다소 변동 여지가 있음을 암시했다.

추석 정국을 맞은 2015년 9월 현재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빅3’를 형성하고 있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왼쪽부터). ⓒ 연합뉴스

현직 대통령에 맞서 대세론 굳힌 YS·박근혜

다른 기관의 조사 결과도 유사하다. 리얼미터는 9월11일 조사 결과를 내놓으면서 김 대표가 22.1%로 11주 연속 1위에 랭크됐다고 밝혔다. 마약 파문으로 2%포인트 떨어졌다는 것이다. 박 시장은 아들 병역 기피 의혹에 적극 대처한 게 주효했는지 소폭 상승한 16.7%를 기록했고, 문 대표는 당 내분으로 인해 0.6%포인트 하락(13.9%)했다. 이 조사 역시 ‘빅3’에 이은 다음 순위에는 5~8% 지지율을 기록한 안철수, 오세훈, 유승민 등의 순으로 이어졌다. 유 전 원내대표는 ‘대구 물갈이설’로 여론의 조명을 받으면서 1.4%포인트 상승해, 10위에서 6위로 껑충 뛰었다.

대통령 선거일이 아직 2년 넘게 남아 있고, 따라서 변동 요인이 무수히 널려 있는 마당에 지금의 여론조사가 무슨 큰 의미를 갖느냐고 반문할지 모르나, 때론 정치 상황을 리드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함축하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바로 그런 측면 때문에 추석을 앞둔 대권 잠룡들과 참모진들의 발걸음이 바쁘다. 이른바 ‘추석 민심’을 사려는 것이다. 추석 민심이라는 게 역대 대선에 결정적이었다는 통계학적 근거가 뚜렷하지 않음에도 그렇다. 더구나 올 추석은 박근혜 대통령 임기가 반환점을 돈 직후 시점이라서 변수가 무궁무진함에도 후끈 달아오른 양상이다.

특히 지금 여권에서는 과거 현직 대통령의 견제와 방해를 뚫고 대권을 거머쥔 14대 김영삼(YS) 대통령과 18대 박근혜 대통령의 사례를 보고 배워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YS와 박 대통령 모두 당시 현직 대통령(노태우·이명박)과 거친 수(手) 싸움 및 세(勢) 싸움을 벌였고, 그 여세를 몰아 더 이상의 청와대 견제를 차단했다. 이른바 ‘대세론’을 확립한 것이다. 특히 여권의 차기 대권 주자 1위를 달리고 있는 김무성 대표는 자신이 한때 주군으로 모셨던 YS와 박 대통령처럼 이번 추석을 대세론 착근의 전환점으로 삼으려는 복안일 게 분명하다. 또한 다른 주자들도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알리는 계기로 삼으려 할 것임은 당연하다. 반대로 청와대와 ‘친박’ 그룹은 차제에 권력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확실히 하려고 한다. 레임덕을 막는 동시에 이후의 주도권 확보도 도모하려는 의지가 물씬 배어난다. 때문에라도 추석 민심을 둘러싼 다툼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의 지난 9월7일 대구 방문 당시 새누리당 소속 지역구 의원 전원의 참석을 배제한 것만 봐도 지금 여당을 바라보는 대통령의 불쾌감을 확인할 수 있는 탓에 이래저래 차기 주자들의 행보는 빨라지고 있다.

치열함에 관한 한 야권도 못지않다. 더하다면 더하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의 독식 의지를 절감한 안철수 전 대표 등의 ‘분당’ 불사 의지는 의례적 으름장이 아닌 듯하다. 무소속 천정배 의원의 신당은 예정된 수순이고, 박준영 전 전남도지사는 이미 신당 출범을 선포했다. 단순한 호남 패권 쟁투가 아니라 밀리면 끝장이라는 인식이어서 민심 업기 경쟁은 험악할 정도다.

여야 대선 후보 ‘빅3’를 추격하고 있는 안철수 전 새정치연합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왼쪽부터). ⓒ 시사저널 이종현

미래 불확실성에 추석 민심 잡기 경쟁 더 치열

14대 대선의 2년 전인 1990년 당시 추석 풍경은 흥미진진하다. 노태우 정부의 집권 여당인 민정당이 DJ(김대중)의 평민당과 연대 움직임을 보이자 YS가 먼저 민정당과의 합당에 선수를 쳤다. JP의 공화당까지 합세한 3당 합당으로 민자당 창당이 그해 1월 성사됐다. 거대 여당의 대표최고위원이 됐고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자리매김했지만 소수파 수장인 YS는 항상 불안했다. 무엇보다 월계수회라는 전국적 비선 조직을 거느린 ‘황태자’ 박철언 전 장관은 눈엣가시였다. 대통령의 신임에다 노태우 정부 최대 업적으로 꼽히는 북방외교의 주역으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말 그대로 황태자였기 때문이다. 그해 추석 일주일 전(9월30일)엔 소련과의 국교 정상화가 이뤄졌으니 더할 나위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 3당 합당 당시의 내각제 밀약 문서가 터져 나와 YS와 청와대는 그야말로 일전불사 직전까지 갔다. YS는 분당(分黨) 카드로 청와대를 위협해 기어이 박철언을 밀어냈다.

15대 대선의 2년 전인 1995년에는 초반까지만 해도 여권 내에서 차기 주자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았다. 그 자체가 ‘불경(不敬)’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기 3년 차 중반, 대통령 YS의 지지율이 역대 대통령 중반 기준으로는 최하위인 20%대로 곤두박질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그래도 이름은 ‘차기’보다는 완곡하게 들리는 ‘후계자’였다. YS는 그해 봄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후계에 대한 질문에 “여러분이 깜짝 놀랄, 젊은 정치인이 있다”고 운을 뗐다. 그 젊은 정치인은 이인제 당시 경기도지사를 지칭하는 것이었으나 국민들에게 선뜻 와 닿지는 않았다. 당시 민주계(YS계) 실력자였던 최형우 내무부장관, 김덕룡 의원 등에 비해 중량감이 너무 떨어진 탓이었다. 어쨌거나 추석 무렵 나온 “부산 앞바다에 손가락이 둥둥 떠다닌다더라. YS를 (대통령으로) 찍어준 손가락이 미워서”라는 말이 ‘정설’처럼 퍼지고 지지율이 바닥을 헤매자 ‘후계 논의’ 문호를 열었고, 이후 ‘여권 9룡’이 회자될 정도로 9명의 대선 주자가 쏟아졌다.

16대 대선을 2년 앞둔 2000년 추석 무렵에는 그해 6월에 있었던 남북정상회담의 기세도 잠시, 옷로비 사건 등 권력형 비리로 인해 DJ 정부가 어수선했다. 결과적으로 16대 대선의 승자가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0년 4월 총선 때 지역주의의 벽을 넘겠다며 부산 북·강서 을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떨어졌다. 그 후 해양수산부장관으로 임명되면서 재기를 모색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여당인 민주당 내에선 이인제 의원(현 새누리당 의원)이 잠룡 가운데 단연 선두 주자였다. ‘이인제 대세론’이 과장이 아닐 정도였다. 그에 비해 노 전 대통령은 지지율이 10%에도 채 못 미치는 그저 그런 후보에 불과했다. 그야말로 향후 2년 동안 대역전극이 펼쳐진 셈이다.

2007년 치러진 17대 대선은 여당(민주당)의 패배가 확실하게 예고된 선거였다. 그만큼 노무현 정부의 인기는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었다. 본선보다 예선(한나라당 경선)이 더 주목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대선을 2년여 앞둔 2005년 당내 선두 주자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다. 탄핵 역풍을 이겨내고 이어진 각종 선거에서 연전연승한 그의 당내 위치는 확고했다. 천막당사, 사학법 저지 원외 강경 투쟁 등은 ‘여성=유약’ 이미지를 단숨에 날려버렸다. 결과적으로 2007년 8월 한나라당 경선에서 박 대표를 꺾은 MB(이명박)도 이즈음엔 그저 일 잘하는 (서울)시장 평가를 받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해 추석을 지낸 이후부터는 부쩍 달라졌다. 추석 밥상에서 MB의 추진력이 화제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청계천 복원공사를 성공리에 끝낸 시장에 대한 덕담은 어느새 차기 주자 논의로 옮겨갔다. 그 구체화는 박 대표가 ‘후보와 당 대표 분리’라는 당헌에 따라 대표직을 내놓기로 하고, 반박(反朴) 그룹의 좌장인 이재오 의원이 MB와 의기투합하면서다.

대선 2년 전의 약세 역전시킨 노무현

당내 경선 때의 지독한 인신공격과 대권이 보장된 후보 자리를 잠시의 방심으로 도둑맞았다는 반감, 이어진 2008년 총선 공천 때 친박계가 대학살을 당했다는 오기 등은 ‘박근혜 전 대표’를 MB 임기 내내 반대편에 서게 만들었다. MB가 혼신의 힘을 기울인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서도 끝끝내 반대를 관철시켰다. MB 측은 30%를 넘는 지지율로 대세론을 굳히려는 박 전 대표 견제를 위해 여러 대항마를 내세웠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정운찬 총리도 전혀 상대가 되지 못했고, 물갈이를 상징하는 ‘젊은 피’ 김태호 경남도지사를 총리로 지명했다가 망신만 자초했다. 이런 게 2010년 가을, MB 임기를 2년 반쯤 남긴 추석 즈음의 사건이다.

역대 집권 3년 차 가을 추석 정국의 상황들이 말해주듯 아직은 그 누구도 대선 결과를 장담키 어렵다. 언제 무슨 사달이 일어나 판을 완전히 뒤엎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퇴진을 강력하게 몰아붙인 박 대통령이 대구 방문 시 관례화된 현지 출신 의원들의 행사장 참석을 막은 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자명하다. 친박 핵심인 윤상현 의원이 9월15일 김무성 대표의 지지도 등을 시비하며 친박 진영에도 대선에 도전할 후보가 있다고 일갈한 배경도 짐작이 간다. 그는 김 대표의 현재 여론조사 지지율을 놓고 “새누리당 지지도의 절반에 머무르는 판에 무슨 ‘김무성 대세론’이냐”고 공개리에 힐문했다. 의원·당원들에게 지레 줄서기를 자제하라는 경고에 다름이 아니다.

친박 그룹은 지난해 1월 차기 대선 후보 논의를 위한 독자적 세미나를 열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영입 가능성을 공공연히 언급한 바 있다. 임기 개시 1년도 안 된 대통령의 친위 세력으로선 ‘레임덕 촉발’ 우려 때문에라도 결코 시도하지 않을 법한 무리를 감행한 셈인데, 그 이유는 빤하다. 아무튼 청와대의 의중이 무엇이고 어떻게 진행될지,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당 관계자들의 대응은 어떨지 두고 볼 일이다. 흥미로만 따지면 2012년 대선 때의 재대결 양상으로 다시 불붙은 ‘문재인-안철수’ 간 쟁투도 여권 못지않을 듯하다. 이래저래 이번 추석 밥상 앞에서도 대선을 둘러싼 논쟁은 무궁무진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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